후진타오 이야기 - 겸손의 미덕으로 미래를 바꾼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 (명진출판사) 8
박근형 지음 / 명진출판사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2008년말에 터진 세계금융위기는 1930년대의 대공황이후 최악의 경제위기였다.
시발이된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 중남미 아시아를 거대한 태풍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금융위기의 여파로 2009년 세계경제는 당연히 심각한 마이너스 성장율이 예상되었고 천문학적인 자산감소가 불가피했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유일하게 8%대의 성장을 해낸곳이 작은 나라도 아닌 중국이다.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세계1위이며, GDP는 2,3위인 일본,독일과 맞먹고 있고 머지않아 미국을 제치고 1위가 될것이라는게 세계인의 시각이다. 명실공히 G2의 시대가 도래한것이다.
그렇기에 중국을 이끌고 있는 지도자는 자연스레 세계에서 영향력있는 인물 2위에 오를수 밖에없는 위치이며 이 지도자가 어떻게 중국의 리더가 될수 있었는지 알아보는것은 성장하는 청소년이나 기성세대들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큰 의미가 있다 할것이다.

후진타오는 1942년생 양쯔강 아래 강소성 태주에서 1남2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조상들은 수완이 좋은 상인이었고 부친은 교편을 잡다가 상인으로 변모한 지식인이었다.
1955년경에 부친이 경영하던 상점이 공산당에의해 국유화되고 부친은 태주에 있는 회사에 회계원으로 직장분배를 받게되면서 어머니를 7살의 나이에 여윈 후진타오는 힘든 가정속에서 생활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머리가 총명해서 공부를 잘했고 항상 남을 위하는 온화한 성격이라 주위에 친구가 많이 모였다.  특히 수학을 잘했고 과학에 흥미를 가졌으며 탁구를 잘쳤다고 한다. 문학적인 부분에서도 관심이 있어 책도 많이 읽었다고 한다.
주위에 친구들이 많이 모였기에 그 점을 인정받아 초등학교때는 반장을 한다.

고등학교 2학년 15살때 공산주의청년단에 입단해서 처음으로 정치적인일에 접했으며 1959년에 베이징에 있는 청화대학 수리과에 입학을 했는데 당시 인문쪽에서는 북경대학이, 이과쪽에서는 청화대학이 명문이었다고 한다.
대학교2학년(22살)에 공산당원에 정식 입당하고 모범적이고 우수한 학생임을 인정받아 대학 정치보도원으로 선임되어 본격적인 조직관리의 역량을 쌓기 시작했다.
이시기에 같은 대학을 다니는 부인을 만나 교내에서의 교제금지라는 교칙을 어기고 사랑에 빠졌는데 부인은 미인이 아니고 오히려 못생긴 축에 들었으나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특히 의리가 좋아서 였다고 한다.

대학생활을 만끽하고 희망에 부풀은 후진타오가 졸업하기 직전 1966년에 등소평이 주도한 문화대혁명이발생했다. 행동대격인 대학생을 위주로한 홍위병들의 거친 광풍속에 조용히 독서에만 빠져있었다. 광풍이 잠잠해지고 대학을 졸업한뒤 68년에 지방변두리에 있는 시골 댐공사 현장의 막노동꾼으로 직장분배를 받아 1년여동안 토굴에서 생활하며 엘리트로서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현장노동자들과 격의 없는 대화와 생각을 나누며 신망을 얻었기에 상부에서 인정을 받아 비로소 행정관리의 길을 시작했다 한다.

탄탄한 기초학문의 실력을 바탕으로 상하동료들을 대할때 항상 성심으로 대했고 현장을 발로뛰는 성실함이 그를 지방에있는 성 건설위원회의 부주임으로 승승장구하게 만들었다.
이때 나이 38세 중앙당은 그를 미래중국을 이끌 인재로 선발하고 중앙당교에 특별교육을 받게했으며 수료후 간쑤성 공산주의청년단 서기로 임명했다.
이때부터 후진타오는 중앙당의 시선에 노출되기 시작했는데 1984년(42세) 3천명의 일본방문단을 적절한 임기응변과 신속한 대처능력으로 좋은 인상을 대내외에 심어주어 중앙당의 중앙조직부 부부장으로 발탁되었으나 보수파인 태자당의 견제등으로 다시 지방 성의 서기로 밀려났다.
비록 지방성으로 밀려났으나 특유의 성실함과 겸손함으로 주위의 신뢰와 호응을 받아 빈곤타파와 경제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후 차세대 리더로서 성장할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티벳트지역으로의 서기 발령이었다.
사자가 새끼를 단련시키는 과정과 같다고 봐야 할지는 모르나 후진타오 개인의 성격과 가치관 리더쉽을 최종 테스트한 시기였다고 보아진다.  티베트와 중국관계는 한마디로 물과 기름이라고 할수 있는 관계였다.
티베트는 구리,철,아연,석탄,마그네슘등 천연자원이 풍부했고 히말라야산맥을 경계로 인도와 군사적인 경계지역이였으며, 티베트의 독립을 인정했을경우 주변의 위구르등 소수민족의 독립요구가 이어질것을 우려해서 중국으로서는 절대적으로 양보할수 없는 민감한 지역이었던것이다.

티베트에는 우리가 알고있는 달라이라마와 판첸라마라는 두명의 종교지도자가 이끌고 있다고 한다.  한쪽의 라마가 어리면 다른쪽에서 대신 지도하고 지원하는 형태로 되어있다 한다.
후진타오가 부임당시에는 달라이라마는 인도에 망명정부를 세워 저항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판첸라마가 베이징에서의 오랜 연금에서 풀려나 티베트에 복귀하는 시점이었다고 한다.
다시 티베트는 저항했고 후진타오는 과감하게 계엄령을 선포하며 무력진압으로 단호하게 맞서서 중국의 보수파에게 지도자로서의 신뢰를 얻었다고 한다.  이후 중앙당에 복귀한 후진타오는 등소평의 지원아래 차세대 지도자로서의 길을 걷게되고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중앙당교교장,군사위원회부주석,2002년에 국가주석,그리고 2005년에 군사위원회 주석자리를 맡아 중국의 완전한 지도자가 되었다.

 이 책을 읽어면서 관심을 둔것은 중국과 티베트의 관계, 후진타오의 티베트에서의 행적, 그리고 중국 공산당의 역사였다. 후진타오가 취한 티베트에서의 행적은 구체적으로 나와있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지만 몰라서 궁금했던 상당부분의 갈증들을 이야기 형식으로 아주 재미있고 쉽게 해소해주었던것 같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처음에 나는 신문지상에 오르는 원자바오총리와 후진타오주석 중 누가 중국의 실질적인 지도자인지도 몰랐다. 중국의 지도자는 어떻게 선출되는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공산주의는 모두 북한과 같은 시스템을 가졌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만 했다.

민주주의에 의한 지도자 선출과 중국식 공산주의에 의한 지도자 선출중 어느게 더 우월하느냐에 있어 우열을 판가름하기 힘들지 않느냐고 생각할정도로 나름의 합리적인 방식과 장단점이 있는것도 사실인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고 싶은대로 기본적인 수학능력만을 가지고서는 이세상을 조화롭고 행복한 세계로 변화시킬수 없다는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남을 먼저생각하고 이해하며 자만과 이기심을 배제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실히 인생을 살아간다면 지도자로서의 자질은 물론이고 세상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수 있다는 것 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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