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꿈 외 지만지 희곡선집
욘 포세 지음, 정민영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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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욘 포세의 희곡에서 인물들 사이에는 상반된 정서가 흐른다. <어느 여름날>에서는 즐거움과 불안이 흐르고 <가을날의 꿈>에서는 사랑과 죽음, <겨울>에선 떠남과 머무름(또는 가능과 불가능)’이 흐른다. 감정이 한 인물한테 고정되지 않고 이리저리 흔들리니 삶은 유한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영원한 즐거움도 없고 영원한 불안도 없으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삶이 아이러니하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 희곡에서 상반된 감정들은 붙어 있는 듯, 한 뿌리에서 나온 듯 너무 가까이 있었다.

 

희곡에서 욘 포세는 인물에 특정한 이름과 직업을 부여하지 않았다. 인물들은 단지 남자여자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남자와 여자의 성별특징이 부각된 것도 아니었다. 희곡의 대사에는 말과 말 사이에 (사이), (짧은 사이) 처럼 쉼이 많았다. 이렇게 인물의 외형과 말을 꽉 채우지 않을 때, 즉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을 때 여백이 생긴다. 여백은 대상의 구체적인 형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내면에 담고 있는 내용을 나타낸다. 희곡에서 인물들 간 감정이 크게 차지하고 있는데다 감정은 내면의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이 희곡의 중요한 장치는 여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희곡을 무대에 올리면 참 재밌을 것 같다. 여백을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할지 궁금하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이 사실은 많은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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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씨책] 이름 / 기타맨
욘 포세 지음, 정민영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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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 포세의 두 희곡. <이름>에서 아이 아버지인 남자에게 여자의 가족들은 이름을 묻지 않고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남자는 아이의 이름을 장난스럽게 지어주고 여자와 남자는 아이 이름을 정하지 못한다. <기타>에서 남자는 기타를 치며 생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결국은 기타를 포기한다.

 

이름을 불러서 기억되고 존재하는 것이니 <이름>에서 이름이 불리지 않고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는 것은 존재가 부정된다는 뜻일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존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타를 치는 것은 존재한다는 의미이면서 존재에 대한 어려움을 말할 것이다. 희곡에서 슬픔과 불안이 느껴졌는데 그것을 드러내는 장치로서 <이름>에서 어둠, 이름을 정하지 못하는 것, 남자에게 이름과 직업을 묻는 사람이 없어 남자가 투명인간 취급되는 것, 남자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과 <기타>에서 비, 추위, 땅에 떨어진 동전 몇 닢, 남자가 기타줄을 스스로 끊는 것, 아내를 화장한 사람이 남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이 괜찮았다.

 

친구가 들려줬던 얘기가 생각난다. 친구는 시급이 다른 곳보다 2배는 더 비싼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일한지 일주일만에 그만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 일이 힘들었나? 하니. 친구는, 힘들다기 보다는, 그래. 힘들었지. 거기는 이름을 안 부르거든. 직원들이 전부 나를 알바. 라고 부르더라고. 친구는 이름이 특이해서 학교 다닐 때 놀림을 받곤 했다. 그때마다 친구의 얼굴이 벌겋게 되었던 것이 기억나는데 이름 안 불렸다고 그만 두었다니 의외였다. 그러며 친구는, 놀리더라도 이름을 불러 주었더라면. 놀림을 당하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놀림조차 당하지 않는 것이거든...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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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세상의 끝 지만지 드라마 이론
장뤼크 라가르스 지음, 임혜경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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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뤼크 라가르스의 희곡 <단지 세상의 끝>. 자비에 돌란 감독 영화의 원작이다. 희곡은 ’루이의 귀환-가족과의 불통-루이의 떠남.’ 라는 구조인데 희곡에서 장소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배우는 몸으로 연기하지 않고 말로 다 한다. 대사는 시 같아서 리듬이 느껴진다. 배우가 무대에서 어떻게 연기할지 궁금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아들과 가족은 대화를 하지만 그 대화가 화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각자의 말을 쏟아낼 뿐이라서 대화가 독백이나 차이가 없어 보였다. 불통. 귀환과 다시 떠남 사이에 불통이 있다. 회귀하는 연어가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면 연어가 갈 곳은 어디인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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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트라 - 마이 웨이, 내 방식대로 현대 예술의 거장
앤서니 서머스.로빈 스완 지음, 서정협.정은미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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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작업실이 탤런트 김혜자씨 집 앞에 있었을 때 봉준호 감독은 김혜자씨가 담배를 피는 것을 자주 봤다고 했다. 국민 엄마가 담배를 피는 것이 놀라워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엄마라는 이미지와 모순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영화 <마더>를 구상했고, 김혜자씨를 캐스팅 했다고 했다. 십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사회에는 여성이 담배를 피는 것에 대한 통념이 있었다. 통념에 따르면 할머니는 담배를 펴도 되지만 엄마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 술집 여자는 담배를 피지만 일반 여자는 담배를 피지 않는다. 그러므로 봉준호 감독의 작업실 앞에, 전원일기 할머니인 탤런트 정애란씨 집이 있었고, 정애란씨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봉준호 감독이 봤다면 영화 <마더>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김혜자씨는 지금은 딸의 기도로 담배를 끊었다고 하지만 한창 담배를 필 때 스트레스 많이 받았을 것 같다. 밖에서 마음 놓고 담배도 못 피우고, 누가 담배 피우냐고 물어보면 거짓말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참말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김혜자씨가 담배를 피웠다는 것을 대중이 몰랐던 것은 기자들이 김혜자씨의 그런 마음을 알고 일부러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는지. 담배 따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 김혜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는지.


스타를 보는 것은 당대 사회를 보는 것과 같다. 스타는 대중에 의해 만들어진다. 스타는 대중이 보고 싶어 하는 것(화려함, 가정적임, 정치적 올바름, 용기, 희망 등)을 보여주고 대중에게 거짓말(, 몸무게, 나이, 출신, 학력, 성적취향 등)을 한다. 스타는 허상이다. 허상과 실상 사이 간격이 멀어질수록 또는 실상을 숨기지 못할수록 스타는 추락한다.


시나트라는 1947년에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 열렬한 대중적 지지를 구했고, 가족이 지닌 가치를 전했으며, 논쟁이 될 만한 정치적인 명분을 옹호함과 동시에 바람을 피웠고, 악명 높은 범죄자들과 어울렸으며, 깡패처럼 행동했다. 기자들을 물리적으로 공격하고 위협하면서 그는 화를 자초하고 있었다. p304”


프랭크 시나트라는 이런 말을 했을 것 같다. 스타는 괴로워. 프랭크 시나트라의 팬은 이런 말을 했을 것 같다. 스타를 존경해. 스타한테 실망했어...


프랭크 시나트라의 파티, 마피아와의 관계, 여성편력, 병역미필, 폭력 스캔들, 빚투는 지금으로 치면 연예계 은퇴를 해야 할 판이다. 반면 자유에 대한 숭상, 흑인차별을 반대한 인권운동, 호방함은 연예인의 표준으로 숭상될 법하다. 누군가는 프랭크 시나트라 평전을 읽고 추잡한 속살을 봤다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허상과 실상 사이에서 살아야 했던 스타의 비애를 봤다. 스타가 마지막 무대에서 흘린 눈물에는 무대를 내려가는 슬픔만 있는 게 아니라 자유인으로 살게 될 설레임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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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코그니토 GD 시리즈
닉 페인 지음, 성수정 옮김, 구현성 / 알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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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페인의 희곡 <인코그니토>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로 모여 있다. 인물들은 기억 때문에 특정한 행동에 갇혀 있다. 속이고, 살인하고, 집착하고, 반복한다. 갇혀 있는 행동은 나의 삶을 만드는데 행동을 촉발하는 타인이 있으므로, 내 삶이 만들어질 때 타인의 삶도 같이 만들어진다. 나의 삶과 타인의 삶. 개별적인 듯 보이지만 연관이 되어 있는 삶. 그러므로 내 삶은 하나의 삶이면서 모든 삶이기도 하다. <인코그니토>는 일차적으로 기억에 대한 연극이면서 나아가 하나의 삶과 모든 삶이라는, 공간에 대한 연극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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