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앤드루 릴런드는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유전적 원인으로 생기는 안과 질환인데 어린 시절에는 약한 야맹증으로 증상이 나타나다가 점점 낮에도 시야가 좁아지고 마침내는 뜨거운 물 속에서 얼음이 서서히 녹아가듯이 시력이 사라진다고 한다. 저자는 사춘기 무렵부터 어머니에게 밤에는 눈이 잘 안 보인다고 호소하는데, 어머니는 캄캄하니까 잘 안 보이는 게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다가 밤하늘에 ‘별이 안 보인다‘고 말하자, 그제야 아들을 병원에 데려간다. 내 경우는 책의 글씨가 흐릿하게 보이고, 밤 운전이 힘들어지면서 늙어가는 것을 실감했다. 눈의 기능이 꽤 중요한 직업이라, 점점 보이지 않게 되는 게 늘 두려웠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저자는 갑작스러운 실명이 아니라 점점 시야가 어두워지는 경험을 한다. 조금 전까지 도마 위에 놓여 있던 칼이 사라진다든가 방금 탁자 위에 내려놓은 컵을 더듬더듬 찾아야 하는 일이다. 법적으로는 맹인이지만, 완전한 실명보다 일상에서 더 힘든 면들이 있다. 책의 내용은 대체로 그런 측면에 맞춰져 있다. 당연히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것이라 믿었던 아내나 친구들이 무심코 드러내는 ‘비장애인 중심’적 태도 같은 것이다. “처음 지팡이를 꺼내던 날은 릴리에게는 그저 평소와 다름없이 브루클린으로 놀러 나간 밤 중 하나였으며, 그때까지 아내는 나를 진짜 실명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릴리는 그날 일을 마치 우리 삶에서 실명이 갑작스레 분출해 나온 것처럼 받아들였다. 세월이 흐른 뒤 릴리는 그날 내가 너무나도 취약해 보인 나머지 누가 우리에게 날치기라도 시도할까봐 겁이 난다고 했다. 릴리에게는 눈멂이 취약함과 동의어였다.” 저자는 시력을 잃어가면서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 마주 보며 짓는 미소, 섬세한 눈빛 같은 것을 다시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결국 눈이 안 보인다는 것이 자기 삶의 가장 큰 문제이거나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 아니라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시력을 상실할 때 사람은 정말로 하나의 세계 전체를 잃고, 행성 하나를 차지할 만큼의 이미지와 그 모든 디오라마가 어둠에 잠식되고 만다. 그럼에도 눈멂 이후에 남아 있는 감각 속에, 상상력 속에, 그리고 시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깊은 감정 속에, 잃어버린 것을 넉넉히 뛰어넘는 수많은 세계가 지속된다.” 책을 읽으면서 알게된 새로운 사실 두 가지. 1. 맹인이 캄캄한 어둠 속에 사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여러 강도의 빛을 감지할 수 있다. 게다가 뇌가 만드는 시각적 이미지 때문에 완벽한 어둠을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2. 호메로스나 보르헤스에 대한 이야기는 얼핏 들었으나, 존 밀턴이나 제임스 조이스가 말년에 시력을 잃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글을 쓸 수 있군. 늙어간다는 것도 일종의 장애를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책을 읽어가면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늙어가는 과정의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느낌도 들었다. 퓰리처상 최종 후보작이라더니, 과연 재밌고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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