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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의 책상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배수아 작가 하면, 거의 재미없는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그녀의 작품을 단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데도, 왠지 어려우면서, 까다롭고 재미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매번 들었다. 사실 내가 배수아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요번 년도 이상 문학상 때문이었다. 이상 문학상에 수록된 <무종>이라는 작품을 통해 배수아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작품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약력을 보니 제법 많은 책들을 냈고, 또 어딘가 독특해 보이는 소설 분위기 때문인지 관심이 갔다. 그러던 중 여름에 케이블 티브이에서 방영하던 배수아 작가의 낭독 회를 보게 되었고, <에세이스트의 책상>이라는 작품을 알게 되었다. 처음 읽어본 배수아 작가의 작품은,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생각, 재미없다는 생각을 어느 부분에서는 인정, 또 어느 부분에서는 부정하게 했다. 커다란 사건 없이, 들쑥날쑥한 전개,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씁쓸하면서도 또 담담한, 한 편의 연애소설과 성장소설을 동시에 보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뭔가 새로운 느낌의 소설이었다. 조금 난해했던 부분은 있었지만 그런대로 잘 풀리면서 읽혔는데, 읽는 내내 새로운 느낌이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되었다. 어딘지 모르게 안정감 있으면서 조곤조곤하게 말하는 분위기를 주는 문체가 아무래도 그런 느낌을 주게 한 것은 아닌가 싶다. 읽으면서 마치 소설의 무대인 외국에 내가 와 있는 느낌도 갖게 해주었다. 사실 음악에 대한 묘사가 많이 나오는데, 그 부분이 도입부분에도 나오기 때문에, 처음 배수아 작가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채로 읽을 때는 정말 재미없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그 음악에 대한 부분이 지나고 뒷부분으로 흘러가자, 뚜렷한 사건이 없는데도 마치 홀리듯 이야기를 읽어 내려갔다.
읽으면서 내가 가장 난해했던 것은, M의 존재였다. 나는 아직도 이 M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히 남성에 대한 묘사인데, 뒷부분에는 스커트를 입었다는 식의 표현이 나와 여자였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난해했다. 하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인물은 바로 이 M이다. 요아힘이라는 인물이 물론 주인공 인물이 아니고, 이 M이 주인공 인물이지만, 이렇게 존재감이 희미한 주인공 인물도 없을 것이다. 언어학을 전공하였고, 책이나 음악을 좋아해 그것들을 구입할 때엔 돈을 아끼지 않는 인물. 어딘지 내가 닮고 싶은 캐릭터였다. 나도 저렇게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M이 나오는 매부분마다 하게 되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와 M이 헤어지는 부분을 제외하곤, 내내 M은 물과 같이 조용한 남자일 것 같았다. 한마디로 이 <에세이스트의 책상>에 분위기와 완벽히 호응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이 소설을 보고 단순히 제목만 보고는 에세이집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보니까 장편소설이었고, 읽는 내내 색다른 소설을 읽은 기분이었다. 평에서 그렇듯, 이 소설은 소설이면서도 에세이의 경계에 있는 소설이다. 그렇다보니 소설을 읽는 동시에 에세이를 읽는 기분을 맛보게 해준다. 그래서 일까, 여타 책들보다 조금은 충족감 있게 읽었던 것 같다. 재미없다는, 배수아 작가의 편견을 깨면서 이렇게 이 <에세이스트의 책상>을 읽게 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방송에서 해준 배수아 작가의 낭독 회를 보지 않았다면, 또 봐놓고서도 그 중에서 한 독자가 <에세이스트의 책상>을 언급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 책을 읽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요인물은 나와 요아힘, M이지만, 그 세 인물에 대한 갈등이 뚜렷한 사건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나오는데 내가 잘 잡아내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우선 독서를 마친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조금은 무난하면서도 큰 갈등이 없는 평탄한 소설이라고 말이다. 물론 지금은 이런 식의 소설이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렇게 조용하면서도 차분한 소설을, 스펙터클한 작품들의 지쳤을 때 한 번씩 읽어주는 것도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전체적인 내용을 압축하기가 무척이나 난해하면서도, 시제가 계속 왔다갔다 하다 보니 조금 헷갈리는 부분이 많은 소설이었지만, 배수아 작가를 처음 만나는 것으로는 매우 만족했다. 다음 작품은 무슨 작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식이라면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에세이스트의 책상>은 간만에 조용히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