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늑대 파랑
윤이형 지음 / 창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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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형 작가에 대해선 조금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상 문학상에 실렸던 <완전한 항해>가 도입부터 읽기 힘들었던 점이 있어서 왠지 판타지 성향이 짙은 작가라는 인식이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 잡혀 있었다. 그래서 그 뒤로 발표되는 작품들을 어지간해서 보지 않았고, 윤이형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 요번에 새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고, 왠지 모르게 혹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이 <큰 늑대 파랑>을 읽게 되었다. 읽어보니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에 실린 7편의 단편들은 모두 판타지와 상상력을 기반으로 두고 있다. 그것은 내가 전에 가지고 있던 말도 안 되는 인식에 얼추 맞는 것 같지만, 읽어보니 정말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닌, 설득력을 가진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내가 왜 그런 생각에 시달렸지?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만족스러운 작가였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은 7편 모두가 그렇지만, <큰 늑대 파랑>과 <로즈 가든 라이팅 머신>이었다. 표제작이자 가장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큰 늑대 파랑>. 이 책에서는 좀비가 나온다. 사람들이 좀비에게 점령당하고, 인터넷 프로그램에서 만들어진 파랑이 현실로 뛰어들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어떻게 보면 무척이나 쌩뚱 맞고 어이없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으나, 텍스트를 맞대고 보면 정말 설득력 있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단편은 정말 처음부터 중간, 끝까지 모두 마음에 들었다. 표제작 값을 톡톡히 하는 단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로즈 가든 라이팅 머신>은 정말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감 기한에 닥쳤지만 마땅한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는 작가들에게 얼마나 간절한 프로그램일까. 물론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긴 하겠지만 말이다. 문장을 입력하면 자체적적으로 소설 아닌 소설을 써주는 기계. 정말 가지고 싶은 기계가 아닐 수 없다. 이 두 편의 소설 말고도 다섯 편의 소설 모두 각각의 매력이 있었다. 신기한 것은 7편의 단편들의 분위기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는 점이었다. 독특하지만 각각의 감동을 이끌어 내고 그렇기까지의 과정을 충분히 보여주는 7편의 단편들이 모두 수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에서 자신과 자신에게서 분리되어 나온 분리체와의 결투를 다룬 <결투>와 행방불명된 엄마를 찾아다니는 <맘>,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계가 핵전쟁으로 인해 멸망하고 새로운 세계가 생겨났다는 가정 하에 이야기가 진행되는 <스카이워커>, 그리고 이상 문학상집에서 봤을 때와는 달리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 <완전한 항해>, 스팸폿이 등장하는 <이스투아 공원에서의 점심>까지. 각각의 작품들이 가진 매력들이 너무도 다양해서 한 편 한 편이 마음에 들 정도였다.


윤이형 작가의 작품은 절대 논리적으로 따지고 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말했듯이 판타지와 상상력을 기반으로 두었기에 논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모든 소설에서 개연성을 찾는데, 이 단편들은 거기서 조금은 자유로워도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만큼 설득력과 리얼리티가 살아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읽으면서 요즘 우리 문학계에 트렌드가 리얼리티에서 상상력으로 옮겨간다는, 나름대로의 추측도 해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들어 상상력을 기반으로 둔 작품들이 많이 나오는데 대부분 너무도 터무니없거나 부가설명 없이 곧장 본론으로 뛰어들어 이야기를 진행시키기에 조금은 언짢은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그것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들에게 이렇게 되기까지의 최소한의 기본적인 사실들은 알려주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의 나오는 상상력을 기분으로 한 소설들이 최소한의 기본 정보도 주지 않고, 무작정 상상력만을 펼치는 것은 독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앞서 말했듯이 작품들이 모두 터무니없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설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점이 바로 윤이형 작가가 요즘 상상력만 난무하는 작품들을 써내는 작가들과 다른 점이라고 생각한다. 상상력을 기반으로 두고 현실적이면서도 감동도 주는 작가가 어디 흔한가. 작품들의 수준도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이고 말이다. 앞으로 이 작가의 작품들이 기대가 된다. 부디 이번만큼만 해주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진주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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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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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작가의 새 책이 나왔다. 작년 유월에 출간되자마자 선물 받은 책인데, 한 번 읽다가 중간에 포기했었다. 그때의 나는 이 내용을 도저히 따라 갈 수가 없었다. 내가 시위를 한 세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청춘의 시기를 보낸 나이도 아니기에 나에게 있어 이 책은 이해하기, 받아들이기 힘든 책이었다. 그러다 겨울을 맞아 새로운 각오로 읽기 시작했는데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잘 받아들였다. 처음 읽었을 때에 놓쳤던 부분들도 세세히 눈에 들어왔고 읽는 내내 조금은 무거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신경숙 작가의 전작인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적잖이 실망을 맛봤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도 혹시 그러면 어쩌나 싶었다. 그런데 그런 내 생각과 달리 생각하게 해보고, 다 읽고 난 뒤에도 인물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샛노란 표지를 보고서 처음에는 굉장히 산뜻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읽어내려 갈수록 산뜻함 보다는 조금은 우울한 그런 분위기의 소설이었다.


이 책은 80년대를 주 무대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내가 그 세대가 아니다보니, 자연스레 듣기만 해왔던 그 세대, 대모와 시위 등등의 당시 시대상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대충 이러했겠구나, 싶었다. 시대 바뀌어서 그런지, 읽으면서 조금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봤자 20~30년 밖에 되지 않은 시대일 텐데, 왜 이렇게 낯설게만 느껴졌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처음 이 책을 중도에 포기한 것도 그러한 시대상 때문이었다. 어딘지 무겁고, 가라앉은 분위기의 시대를 나는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조차도 어딘지 가라앉은 우울한 분위기를 뽐냈다. 그래서 자연스레 그 시대에는 모든 것이 이렇게 가라앉고 침울했을까 싶었다.


이 책, 텍스트 안에서는 죽음들이 존재한다. 읽는 내내 죽음이라는 것이 조금은 슬프게 느껴졌다. 각각의 인물들이 맞는 죽음은, 그 주체가 다르듯이 매번 다른 느낌으로 전해졌지만, 그 아래에는 슬프다는 감정이 깔려 있어서인지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어딘지 아련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주로 이 책을 읽은 시간대에 밤이라는 점도 이유가 될 테지만, 이 책을 다 읽은 날, 윤에 대해, 명서에 대해, 미루에 대해, 단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인물들이었다. 앞에서 시대의 분위기 때문인지 인물들이 모두 전체적으로 조금은 가라앉고 차분함, 그러면서도 우울한 분위기를 뽐내는데, 그러한 점들이 마음에 들었다. 인물 각각이 지니고 있는 결핍, 그 결핍을 통해 청춘을 드러내는 모습들이 색다르면서도 아름답게, 아련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그러한 점들은 윤에 사촌 언니와 같은 조연이라고 보기보다는 엑스트라라고 보는 편이 더 맞을 법한 인물들에게서도 나타난다. 그래서 소설집 자체가 차분하게 느껴지는데, 그러한 점들이 매력적으로 비춰졌다. 그리고 인물들 중에서 가장 안쓰럽게 느껴졌던 인물이 있는데, 바로 미루다. 자신이 먹은 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미루. 그리고 거기에 따른 사연 등등이 읽는 내내 안쓰럽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단이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처음 단이의 등장을 보고 앞으로 단이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고 또 스토리상으로 이런 식으로 전개가 되겠구나 예상이 되었다. 모든 인물들이 가진 비슷한 분위기 속에서 이 둘의 분위기가 가장 두드러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아직 청춘의 시기를 잘 모른다. 나이가 어려서 일거라고 생각하는데, 만약 이 소설에서 나오는 청춘을 보낸다면 지금 나와는 달리 많은 부분이 바뀔 거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다 읽고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지금도 이 책을 한참 읽고 있을 때가 떠오른다. 인물들에 대해 생각하고 공감하고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하던 시간이었다. 행복했다.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실존 인물일수도, 허구의 인물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인물들이 있기에 많은 감정들을 느끼게 되었다. 읽으면서 말 그대로 아련하다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만큼 읽는 내내 가슴 한 구석이 절절하면서도 안타까움이 자리 잡았다가도 아쉬움이 드는, 그런 감정들이 계속 되었다. 연애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조금은 특별한 연애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연애소설이라고 보기보다는 성장소설이라고 보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신경숙 작가의 전작에 대해 가졌던 아쉬움이 이번 책에서는 말끔히 해소되어 만족감으로 다가왔다. 아련함과 함께 인물들에 대해 공감하고 생각해볼 수 있었던, 좋은 독서 경험이었다. 청춘의 시기, 나도 빨리 맞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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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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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 작가의 첫 작품집, <바늘>을 이제야 읽는다. 예전에 한 번 읽었다가 작품집 앞에 실린 두 편의 단편 <바늘>과 <숨>만 읽고 덮어버렸던 전적이 있기에 이번에는 완독을 하리라 마음을 먹고 읽기 시작했다. 천운영 작가의 이름을 들으면 무엇보다도 ‘그로테스크’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기괴함. 아마도 등단작이자 이 작품집의 표제작인 <바늘>때문이 아닌가 싶다. 독특하면서도 어딘가 침울한, 기괴한 매력을 지닌 작품을 쓰는 작가. 이런 식으로 내 머릿속에 인식되어 있는 천운영 작가의 작품집을 읽을 때, 그리고 읽고 나서 역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조금은 천운영 작가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이 작가가 꼭 기괴함만을 지니고 있진 않구나,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제일 앞에 실린 <바늘>은 그동안 다섯 번은 읽어 본 것 같다. 그만큼 마음에 들었고 인상적이었다. 특히 결말 부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문신사인 추한 외모의 나, 그리고 그런 나와 반대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801호 사내. 이 두 인물이 이 작품을 읽고 난 뒤로도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이외에도 좋았던 점은 디테일이 무척이나 세세하다는 점이었다. 문신 과정을 마치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세세하고 자세히 그려내는 부분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문장들을 읽어나가는데 마치 내가 문신이라도 하는 것처럼 따끔거리고 서늘한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아쉬웠던 점도 있다. 나와 801호 남자의 연결고리가 조금은 부자연스럽다는 점이다. 갑자기 집에 찾아와서 반말을 하며, 자신의 과거를 줄줄이 읊는 모습은 조금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던 부분이다. 그렇지만 다른 장점들이 이 아쉬움을 가려주어서 훌륭한 단편 한 편을 읽은 느낌이 들었다. 결말 부분에서는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으니 말이다. <바늘>말고도 전체적으로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을 재미있게 읽었다. 밀도 있게 그려나가다 보니 조금은 버거운 것도 사실이었지만, 전반적으로 탄탄한 구성을 바탕으로 색다른 이야기를 풀어나가 인상 깊었다. <바늘>이외에도 <당신의 바다>나 <숨>, <월경>, <부라보콘>등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이야기들이 모두 어두운 분위기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나름대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들이 있어 텍스트에서 손을 놓지 않게 만든다. 정말 천운영 작가의 역량이 묻어나는 단편들이었다.


이 단편집은 천운영 작가가 등단하고서 일 년 동안 발표한 작품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읽어보면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읽어보면 굉장히 탄탄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문장도 비교적 깔끔한 편이고 구성도 치밀하게 짜여 있다. 문장에서도 가끔씩 비약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빠르게 읽히는 문장을 구사하면서 어느 정도의 감정 선을 유지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천운영 작가의 이 <바늘>에서는 예쁜 여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모두 어딘가 결핍이 되어 있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텍스트 안에 등장하는 어디 한군데가 결핍된 인물을 통해서 위안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나는 이 <바늘> 단편집을 통해 위안을 받았다. 모두 다 결핍이 되어 있는 인물들을 통해 위안을 얻는 다는 게 어떻게 보면 이상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단편집에 가장 큰 특징은 전반적으로 캐릭터와 서사, 사건 등이 적절하게 들어가 하나만 튀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체적으로 인물 위주로 이야기를 끌어가거나, 서사 위주로, 또는 사건 위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에 반해 이 작품집 안에 실린 단편들은 어디 한군데에 초점을 맞춰 독자를 끌어 들이는 것이 아니라, 적절히 조화된 하나의 단편 텍스트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고 생각한다.


천운영 작가의 불멸의 작품집을 이제야 다 읽었고, 날짜를 헤아려보니 일 년 동안 내가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저번에 이 책을 중간에 덮었을 때에는 도저히 못 읽겠다, 흡입력이 없다,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 당시 내 생각이 짧았던 것 같다. 흡입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밀도가 강하기 때문에 그때의 내가 읽기 벅찼던 것 같다. 그럴 정도로 이 책은 무척이나 밀도가 강하다. 쉽게 읽히는 듯 하면서도 자세히 뜯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시간을 두고 한 편 한 편 제대로 읽는 것이 이 책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에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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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이야 (양장)
전아리 지음, 안태영 그림 / 노블마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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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랜만에 전아리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고 해서 관심이 갔다. 예전부터 그의 이력에 눈이 갔고, 그 이후로 발표한 작품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었기에 전아리 소설이라면 한 편 정도 빼놓곤 모두 읽곤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라는 말을 듣게 되어 어떤 식으로 다른지 궁금했고, 또 전아리 라는 작가에게 신뢰도 비슷한 감정이 있었기에 무척이나 기대하면서 읽었다. 읽고 나서의 소감은, 우선 캐릭터가 전과 같이, 아니 어쩌면 보다 더 구체적으로 그려졌다는 점이었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우리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정운이라는 여자를 완벽하게 캐릭터화 시켜서 소설 속에 투입시킨 점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그 외에 인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우연이나 형민이라는 두 남자의 캐릭터들도 정운이라는 인물이 갈팡질팡하는 것을 독자에게 이해시킬 수 있도록 완벽한 형상을 이루었다. 주인공들과 조연, 심지어 엑스트라인 인물들도 상세히 그려놓아 읽는 내내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이로써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이라는 공식이 완벽히 입증 된 것은 아닌가 싶다. 소설을 덮고 난 뒤에 이 소설에 대해 가장 선명히 떠오르는 것은 바로 인물, 캐릭터였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전아리는 인물을 구체화 시키는 데에 엄청난 내공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캐릭터화 시킨 점이 장점이라면, 단점도 있었다. 무엇보다 전아리 작가의 전작들에 비해 소설 전반적인 분위기가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전에는 분위기는 가벼운 축에 속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이라던가, 인물이 겪고 있는 사건들이 제법 무게가 있어 마냥 즐겁게 읽을 수 없었는데, 이번 소설은 그저 하나의 성장소설이자 연애소설로만 읽히게 되었다. 물론 내가 전아리 작가의 책을 모두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책을 읽었기에 이번 소설이 그동안 발표했던 소설들에 비해 많이 가볍게 느껴졌다. 물론 가벼운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내가 평소 전아리 작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에 비해 너무 약하게만 느껴졌고 조금은 왜 이렇게 변했지? 하는 마음도 내심 있었다. 물론 이 소설로 인해 전아리 작가에 대한 편견 아닌 편견이 조금 깨져, 앞으로는 이 작가가 어떤 분위기의 소설을 발표해도 그 나름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겠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조금 아쉬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도 아쉬움이 주인공 인물들과 마주하자 많이 사그라지긴 했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아주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주인공인 ‘정운’의 성장기이면서 사랑 이야기이다. 이 말보다 더욱 더 간단하게 이 소설을 정의내릴 수 있는 말은 없을 것 같다. 대부분 전아리 소설은 성장소설이 대부분인데, 그런 코드는 지금까지 발표해 온 <시계탑>, <구슬 똥을 누는 사나이>, <직녀의 일기장>에 이어 언제나 이어져 온다. 전아리는 성장소설이라는 분류 안에 각각이 다른 이야기와 인물들을 배치해서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구축해 나간다. 그 때마다 상황도 달라지고, 그 인물이 겪는 고통과 심리적 상황도 가지각색으로 변화한다. 내가 전아리 작가를 좋아하는 점이 바로 이 점이다. ‘성장기’라는 어떻게 보면 문학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소재를 인물의 나이를 따지지 않고, 십대에서 삼십대까지의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를 하는 점. 그리고 그 이야기 안에서 그 나이 또래의 우리들이 겪는 고민이나 고통 등을 다루어 준다는 점. 이러한 점들이 전아리 작가의 작품을 매번 찾아 읽게 만드는 힘인 것 같다.


어떤 기사에서 보니 이 <팬이야>를 칙릿 소설로 구분해 놓았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이 소설이 ‘연애담’을 다루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그러한 문학 분류로 정해놓은 것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소설은 칙릿 소설이 아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성장소설이 더 맞는 표현일 것 같다. 만약 이 <팬이야>가 칙릿 소설로 들어간다면, 좀 더 무게 있는 칙릿 소설로 구분해야 되지 않을까. 가볍긴 하지만, 주인공 나름의 고충이 있고, 그 고충을 우리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이 소설은 칙릿 소설로 구분하기에는 너무도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비록 조금 실망감과 아쉬움을 가지긴 했지만, 책장을 덮고 난 뒤엔, 역시 전아리,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역시 어떤 장르더라도 완벽히 소화 시켜내는 전아리가 부럽기만 하다.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물론 이 작품을 겪었으니, 그 다음에 어떤 분위기의 소설을 발표하더라도 전혀 실망하거나 그러진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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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6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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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변에서 한참 이 책을 읽고 추천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이 책이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물론 ‘베이커리’라는 소재가 마음에 들긴 했지만, 어딘지 거부감이 드는 소설 중에 하나였다. 그러던 내가 언젠가부터 청소년 소설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그 때마다 이 책을 읽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매번 이 책의 구입 시기는 늦춰졌고, 만년 위시리스트에만 들어갈 처지에 놓였을 무렵, 이번에 안사면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냉큼 구입해 읽었다. 읽다보니 내가 왜 이 책을 그토록 멀리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읽는 속도도 빨랐고, 내용이 흥미진진했다. 주변에서 왜 그리 이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으라고 추천했는지 알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청소년 소설에 그다지 호의적인 감정이 없었는데, 이 책은 조금 달랐다. 환상소설 같기도 하면서 적절히 청소년 성장소설에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소설은 자신의 새엄마인 배 선생과 그의 딸이 들어오면서 주인공이 조금씩 벼랑으로 내몰리는 것을 시작으로(텍스트의 시작이 아닌, 전체 소설의 시작) 화자가 동생의 피 묻은 속옷을 발견하고, 동생이 여러 용의자를 지목하다가 결국 화자를 지목하면서, 화자는 집을 뛰쳐나온다는 얘기로 전체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는 심한 말더듬이에다가 거의 사회에서 낙오자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정도로 주위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캐릭터인데, 동생에게 거의 벼락을 맞으면서 집 밖으로 내몰리는 것이 조금 안타깝게 느껴졌다. 아무튼 그 후에 수상한 베이커리 집으로 숨어들어 당분간 지내게 되는데, 그야 말로 수상한 베이커리점이다. 요상한 기능의 빵과 쿠키들. 소설을 읽으면서 정말 이런 가게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오컬트 적인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자주 이용할 만한 가게. 왠지 흥미로웠다. 아무튼 이런 식의 내용으로 시작되고, 중간 중간 챕터별로 그 외의 이야기들이 벌어지는데, 적재적소에 이야기들이다 보니, 읽는 동안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다. ‘몽마’라는 존재를 등장시키는 점도 그렇고, ‘타임 리와인더’ 등등. 독특하면서도 저건 뭘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만드는 소재들을 잘 머무려 놓은 소설이었다.


이 책은 정말 여러 가지 장르를 내포하고 있다. 청소년 소설이면서도 호러도 가미되었고, 판타지도 있다. 다양한 분야의 요소들이 모이니 눈요기는 물론이고 탄탄하게 내용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래서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만드는데, 정말 그 중독성이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구병모 작가는 도대체 어디서 이런 내용의 소설을 만들어낼 생각을 했는지 정말 궁금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결말이 두 가지 버전이었다는 점이다. 리와인더를 사용했을 때와, 사용하지 않았을 때. 물론 그것이 결말인지 아닌지, 읽는 이의 마음이지만, 나는 두 가지 결말 모두 마음에 들었다. 끝을 내면서 끝내는 것도 아니고, 단지 독자들의 상상에만 맡기는 게 아닌, 작가가 두 가지 모습을 모두 보여줌으로 써 좀 더 이 <위저드 베이커리>에 몰입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사실 여기서 열린 결말로 끝내버렸다면(떨어진 리와인더를 줍는 부분에서) 오히려 더욱 짜증이 났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 오히려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신선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청소년 소설에 왠지 모를 거부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이 <위저드 베이커리>는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텍스트가 되었다. 사실 어쩔 수 없이 읽어야만 했던 청소년 소설 중에 <위저드 베이커리>를 만난 건 정말 단비와 같았다고 생각한다. 십 대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다양한 계층의 모습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우리나라 청소년 소설 중에서 이정도의 이야기를 끌어낸 소설은, 내가 읽은 것 중에서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 <위저드 베이커리>를 시작으로 그러한 소설들이 많이 출간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러면 정말 기쁜 마음으로, 평소 별로 내켜하지 않았던 청소년 소설들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오히려 너무 늦게 만나 버린 것 같아 아쉬웠던 작품이었다. 다음부터는 주위에서 재미있다고 추천하거나 하면, 곧바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심어준 작품이었다. 구병모 작가의 다음 작품이 무척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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