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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가라 -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평점 :
한강의 신작이 나왔다. 소식을 듣자마자 읽고 싶었는데, 이제야 읽는다. 한강 특유의 분위기랄까. 그런 게 많이 없어진 것 같다. 물론 다른 작품들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나, 내가 가지고 있던 한강 특유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뭐랄까, 굉장히 차분하면서도 힘 있게 서사를 끌어나간다. 미술의 대해 관심이 많다고 하던데, 이 책이 바로 그 정점인 것 같다. 미술과 조각 천제 등. 한강의 관심사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인 것 같다. 새까만 도화지에 노란색 선이 그어져 있는 작품 같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이미지가 떠올랐다. 내용은 아직은 내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재미있게 읽혔다.
이야기가 굉장히 복잡하게 이어진다. 자칫했다가는 놓치기 십상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개운함보다는 머리가 조금 아팠다. 무엇을 얘기하려는지 알겠으나, 문단 중간 중간 나누어진 부분들이 무언가를 말하려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소화하지 못했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무언가 굉장히 예술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가 한강이 예술을 좋아하고, 또 깊이 생각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 이 소설이 보다 조금은 높은 차원의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만큼의 아쉬운 점도 있다. 너무 예술적인 분위기를 풍기다보니, 자연스레 재기발랄함은 없다. 지금까지 한강 작품들도 재기발랄함과는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이 소설은 특히 그렇다. 조금은 어렵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조금은 쉽게 이야기를 끌어갔으면, 대중적인 호평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인물들 간의 대립도 개인적으로 좋았다. 인주와 강석원, 그리고 정희. 이 주요 세 인물들이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강석원은 인주를 좋아했고, 인주는 정희에 대해 친구라는 감정보다 조금은 더 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물론 결말에서는 이 감정들이 이상하게 흘러가버려 조금은 충격적으로, 조금은 허무적으로 다가오지만, 이 감정들이 소설을 끌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인주의 죽음을 추적해가는 정희와, 그런 정희를 말리는 강석원. 사실 기본 여타 소설의 대립관계와 비슷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유독 그 대립관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앞에서 말했듯이, 재기발랄함이 없어 조금은 지루했다는 점과, 인물들 간의 이야기들. 그리고 행간들. 마지막으로 결말 부분이었다. 개인적으로 권선징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식의 결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딘가 뒤에 계속 이어질 것만 같은데, 이런 식으로 끝내버리니 내심 아쉬웠다. 열린 결말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조금 무리가 따를 것 같다. 정적 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서 열린 결말로 끝내야 하는데, 이 소설은 그러기에는 앞에서 이야기를 너무 강력하게 끌어왔기에 정적 지점에서 이야기를 풀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행간들. 한강의 작품 중에서 이런 식으로 행간과, 문장을 나눈 소설은 이것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조금은 박민규 스러운 문장구성이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한강 특유의 문장구성으로 계속 이어나갔으면 보다 박진감 있었을 것 같은데, 아쉬웠다.
이 작품을 통해 한강을 온전히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많이 달라졌기에 조금은 한강스럽지 않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이 작품이 좋았다. 이 책이 막 서점에 풀렸을 때, 한강이 한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 이 소설을 1000매 정도 가량 쓰다가 중간에 버리려 했다고 한다. 그러다 계속 끌고 가기로 하고 계속해서 썼다는데, 그런 것들이 고스란히 텍스트 안에 녹아 있었다. 추리소설 형식 비슷하게 흘러가는 서사구성과, 독특한 문장구성, 천제학과 미술, 조각 등. 독자들에게 조금은 어렵게 다가올 수 있는 소재들을 이 안에 녹여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사실 한강 작품에 주로 나오는 직업들이 미술에 관련된 직업들이다. 그래서 아, 이 사람 미술 좋아하는 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러니 왠지 모르게 반갑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한강의 작품은 조금은 선정적인 부분이 많았는데, 이 텍스트 안에서는 그런 부분이 많이 자제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위에서 말했듯이 평소의 한강의 작품과는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재미를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