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 김이설 소설집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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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나쁜 피>를 읽고 너무도 마음에 들어서 요번에 나왔다던 단편집도 읽게 되었다. 좋다. 오랜만에 마음에 든 작가를 만났다. 어딘가 어두우면서도 퇴폐적인, 그런 작가가 오랜만에 내 앞에 나타나서 기분이 좋다. 이 작가의 첫 책인 <나쁜 피>의 분위기와 기본적인 구성은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이렇게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무척이나 놀랍다. 마음에 들었다.


사실 내용은 별달리 볼게 없다. 여덟 편의 단편들이 대부분 비슷한 분위기와 구성, 인물간의 갈등을 가지고 가기 때문이다. 가족과의 갈등. 수컷의 욕망 등등. 사실 <나쁜 피>와 그다지 다를 게 없는 작품들인데, 한 편 한 편 읽다보면 그 느낌이 너무도 달라서 새로움을 느낀다. 계속해서 말하지만 비슷한 작품들인데 한 편 한 편 읽어보면 제각기 다른 빛의 색깔과 맛을 낸다. 그것이 무척이나 놀랍다. 어두운 분위기인데도 어둠에도 농도, 채도 등이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등단적인 <열세 살>과 <순애보> <환상통> <오늘처럼 고요히>이 네 작품이 가장 좋았다. 열세 살은 정말 읽는 내내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의 놀라움을 안겨주었고, 순애보는 마지막 부분이 무척이나 섬뜩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오죽했으면 그 뒤에 이어지는 단편들을 읽는 동안에도 <순애보>의 마지막 부분을 연신 들여다보곤 했을까. <환상통>에서는 텍스트 내에 남편에 대해서 정말 욕을 해주고 싶었다. 결국에는 그렇게 할 거면서, 하면서 말이다. <오늘처럼 고요히>이 작품이 관건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가장 비도덕적인 작품일 수도 있는데, 그 안에 흐르는 분위기나, 인물간의 심리, 결말 등이 인상에 남았다. 그리고 가장 섬뜩하기도 하고 말이다. 뭐랄까. 이 작품들은 하나 같이 일관되어 보이는 데도 읽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정말 좋았던 작품들이다.


여덟 편의 비슷한 구성과 분위기를 가진 소설 중 유독 한 작품만이 달랐는데, 그 작품이 바로 <손>이다. 우유를 가져다주는 문에 난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손에게 집착하는 남성이 주인공인데, 작품집 중에서 유일하게 남성 화자가 등장하는 소설이기도 하면서, 가장 다른 면의 구성과 분위기를 내는 소설이기도 하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나는 이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앞에서 느꼈던 분위기와 달라 적잖이 당황했고, 조금은 지루하게 읽었다. 하지만 읽는 내내 심리를 제대로 묘사했다는 것을 정말 혀를 내두르며 칭찬하며 읽었다. 또 <손>이라는, 단어 자체도 얼마나 섬뜩한가.(만약 다른 작가가 이 제목으로 소설을 냈더라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김이설이기 때문에 <손>이라는 단어가 섬뜩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조금은 지루했지만 나름대로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우유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손을 보며 이런 식의 발상을 해내다니, 김이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은 것들>이라는 제목에서 일괄 되듯, 소설들이 전부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쉬쉬하는 것들, 숨기려 하는 것들을 제대로 포착하여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족사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다. 또 일그러진 남성의 성욕구등도 말이다. 그런 여러 가지를 포함해 이런 제목이 표제로 되어 나온 것도 좋았고, 배경도 좋았다. 심플하면서도 어딘가 섬뜩한, 이 소설과 가장 적합한 표지라고 생각한다. 표지까지 칭찬하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그렇지만 너무 마음에 든다. 이 책 자체가, 소설 한 편 한 편이 너무도 마음에 든다.


내내 소설에 대해 칭찬만 늘어뜨렸는데, 정말 그랬다. 별점을 메기라면 다섯 개를 주고도 몇 개를 더 주고 싶을 정도로 나는 이 소설이 좋았다. 작가도 좋았다. 내가 콩깍지가 씌여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김이설에 대한 내 감정은 호감이다. 마음에 들었다. 다음 작품은 어떤 것이 될지 기대가 된다. 다음에는 이런 식의 분위기를 이어가면서 다른 구성의 작품들을 보여주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이제 장편소설 한 편과, 소설집 한 권이 전부인 작가이지만, 앞으로 어떤 작품들을 보여줄지 기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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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눈동자보다 더 빛나는 것 푸른동산 9
루스 윌리스 브로더 지음, 김정복 옮김 / 동산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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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말 우연히 구한 책이다. 성장소설 같은 느낌이 들어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그동안 기성작가들의 소설만 읽다보니 여러 기술적인 면만 눈에 익힌 듯싶어서, 담백한 소설을 읽어보고 싶었다. 담백한 소설이라면, 당연히 청소년 소설일 테고, 어떤 소설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조금은 어두운 표지와 달리 내용은 비교적 유쾌하게 이끌어 간다. 오빠의 죽음으로 인해 한 가정에 미친 영향이 이정도 일 줄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정도의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일까? 생각해볼 일이다.


소설은 주인공의 오빠가 죽은 다음부터 시작한다. 엄마는 부쩍 기력이 쇠약해졌고, 나도 그런 엄마를 보며 힘들어 한다. 아빠도 마찬가지이다. 엄마는 이미 죽어버린 오빠에 대해 생각하느라, 나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 급기야 이모가 지내는 곳으로 가 일을 돕겠다고 하고, 엄마는 그곳으로 떠나게 된다. 나는 달리기 선수가 된다. 이런 식의 조금은 엉뚱한 내용이지만, 청소년 소설이기에 용서되는 한이다. 모든 청소년 소설들이 그렇진 않지만, 조금은 유치하게 흘러가지 않는가. 이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조금은 유치하게 흘러가는데, 그 안에 청소년 소설적인 요소들이 빠짐없이 들어가 있다. 한 아이가 바라보는 자신의 가족들 모습과, 그런 가족들 곁에서 지내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정확히 말해서 엄마의 모습을, 나는 침착하게 바라본다. 물론 마지막부분에 자신의 진실을 밝히는 부분에서는 감정이 흐트러지지만, 그 부분이 그 나이 때에 비하여 유치하다거나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읽힌다. 다른 소설에서 보면 이런 부분에는 조금은 과장시켜 유치하다는 느낌을 주는 소설이 많은데, 이 소설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현실적이고, 감정 이입을 시켜 이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독자들에게 심어준다. 작가가 대단한 것 같다.


사실 이런 인물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지랖 넓은 캐릭터들 말이다. 그런데 이 주인공은 참 마음에 든다. 가족들에 대해 고민하고, 가족들에게 미움받을까봐 진실을 목격했지만 그것을 숨길 수밖에 없는. 이런 캐릭터가 얼마나 현실적인가. 우리는 진실을 알면서도 미움을 받을까봐 그것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작가는 주인공 화자를 통해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정말 현실적이고, 리얼하게 말이다. 청소년 소설에서는 유치한 부분도 무난히 여겨지는 부분이 간혹 있다. 그것은 기성작가들에게는 용납되지 않는 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청소년 소설의 맛이 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은 한 아이의 말 그대로의 성장소설이다. 가족들의 슬픔을 이겨내고 달리기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성장소설이란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이 인물을 통해 사건을 바라보고, 이 인물이 되어 감정을 이입시킨다. 기성작가들 작품에서는 조금 힘든 일이지만 말이다.


사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걱정 반, 설렘 반이었다. 이렇게 초장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면, 나중에는 무슨 내용으로 어떻게 이어갈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걱정이 따랐고, 무슨 내용을 들려줄까 싶어 기대감도 있었다. 소설을 다 읽고 난 지금. 그때의 감정을 작가는 배반하지 않았다. 충족한 느낌이 든다. 가벼운 느낌도 없지 않아 있지만,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적당히 무난하고, 적당히 감동도 준다. 물론 섬세한 심리묘사는 없었지만, 이정도면 잘했다고 느껴진다.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간혹 문장들이 이어지는 부분들이 어색한 감도 없지 않았지만, 그것마저도 용서가 될 정도로 작가는 이야기를 십분 잘 들려주었다. 깔끔하게 소설을 이어가고 끝냈단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그동안 읽었던 성장소설들과는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내가 가지고 있던 성장소설은 재미없고, 유치하고, 섬세한 심리묘사도 없으며, 문장도 어색하고, 사건이나 스토리는 한 가닥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소설은 그러한 부정적인 생각들을 모조리 날려주었다. 나에겐 여러모로 유용했던 책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렇게 초장부터 스토리를 끌고 가면 나중에는 어떻게 이어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작가들은 그 스토리에 맞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끌어다 와 소설을 완성시키지만, 나는 그러는 게 너무 힘들다. 작가들이 다시 한 번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스토리텔링 능력이 무척이나 대단하다고 느꼈다. 공짜로 얻은 책치곤 무척이나 많은 의미를 안겨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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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돌아왔다 - 2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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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책을 읽는다. 잠깐의 슬럼프와 비슷한 시기를 거치면서, 한동안은 책을 읽지 않겠어, 하고 다짐했었다. 그렇게 거의 이주 가량 지나고 나니, 할 일이 없다. 책을 읽어야 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다. 이주라는 공백을 거치고 나서 내가 선택한 책은 너무도 유명한 김영하의 <오빠가 돌아왔다>이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와 마찬가지로 김영하의 대표작으로 불리우며 많은 독자들이 좋아하는 책이다. 최근에 연극으로도 만들어져 화제가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오랜만에 읽어본 김영하의 책은, 뭐랄까 상당히 복잡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보니, 여러 스타일의 단편들을 만나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소설들 모두 김영하가 쓴 거라고 확신이 가는 소설들이다. 어딘가 가벼운 듯하면서도, 진지한. 그런 소설들이다 보니 여러 가지 맛을 보는 것과 동시에, 한 가지 맛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다른 작품들을 말하기보다는 표제작인 <오빠가 돌아왔다>를 얘기하려 한다. 신선한 소재는 아니다. 물론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당시에는 신선한 소재였겠지만, 지금은 21세기이고 이러한 가족의 형태는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한다. 알코올중독자이면서도 신고를 밥 먹듯이 하는 아버지, 아버지와 이혼한 채 밖에서 국밥집을 하고 있는 엄마, 20세의 집나갔다 돌아온 오빠, 이제 열일곱 가량의 여자 아이. 그리고 그러한 가족들을 바라보는 나. 이런 콩가루 집안이 어디 있을까. 대충 설명만 들어도 얼마나 콩가루인지 느낌이 오는 가족구성원들이다. 그런 구성원들이 소설 텍스트 안에서 벌이는 사건사고들을 보면, 정말 이런 콩가루 집안이 또 있을 성 싶다.


<오빠가 돌아왔다>는 참 잘 쓴 듯하면서도 어딘가 엉성한 작품이다. 물론 그 작품만 가지고 하는 이야기이다. 어딘가 체계성을 띈 채 쓰인 것 같은데도 마지막 부분을 보면 너무 엉성하게 끝낸 것 같다는 인상이 든다. 갑자기 화자가 그런 말을 왜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무슨 상징인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싶다가도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다. 김영하는 왜 이렇게 마무리를 한 것일까. 심지어 처음에는 이 작품이 초고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부분이 유독 튀었고, 유독 계속 이어져 왔던 스토리와는 상반되었기 때문이다.


김영하의 비유는 조금은 저속한 편이다. 성적인 부분도 상당히 나올뿐더러, 보다가 인상이 찡그려지고, 소설가라는 사람이 이 정도 비유밖에 못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데도 그가 한국문학의 한 기둥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가볍지만, 그 안에 내포된 진지한 문제의식? 아니면 스토리를 강하게 끌어갈 수 있는 서사력? 여러 가지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중에서 이것을 뽑고 싶다. 바로 대중의 눈을 정확히 읽어낼 줄 아는 능력. 이 능력은 어떻게 보면 안 좋은 능력일 수도 있다. 대중작가라는 이미지가 강한 김영하한테는 오히려 좋지 않은 능력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나는 이 능력을 김영하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캐치하여 그것을 문장으로 풀어내는 능력. 소설이란 것이 물론 문학적 가치와 무게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에게 읽혀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문학적 가치니 무게니 하는 것들도 논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 외에 단편들은 이렇다 할 이미지를 남겨주지 못했다. <오빠가 돌아왔다>의 영향이 강해서 일수도 있고, 내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책을 덮고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지금, 머릿속에는 표제작만 떠오른다. 그런데 나는 이 표제작이 어쩌면, 김영하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영하의 대부분의 소설들은 조금은 성적인 매력으로 이끌어져 가는데, 이 작품과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는 그런 부분이 많이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김영하가 야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두 작품은 김영하의 원래 스타일과는 조금 벗어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생각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것은 그것대로 느낌이 있다. 김영하는 정말 천재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정반대의 스타일을 이정도로 이끌어내 자신의 대표작으로 만들어내니 말이다. 정말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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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가라 -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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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신작이 나왔다. 소식을 듣자마자 읽고 싶었는데, 이제야 읽는다. 한강 특유의 분위기랄까. 그런 게 많이 없어진 것 같다. 물론 다른 작품들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나, 내가 가지고 있던 한강 특유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뭐랄까, 굉장히 차분하면서도 힘 있게 서사를 끌어나간다. 미술의 대해 관심이 많다고 하던데, 이 책이 바로 그 정점인 것 같다. 미술과 조각 천제 등. 한강의 관심사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인 것 같다. 새까만 도화지에 노란색 선이 그어져 있는 작품 같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이미지가 떠올랐다. 내용은 아직은 내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재미있게 읽혔다.


이야기가 굉장히 복잡하게 이어진다. 자칫했다가는 놓치기 십상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개운함보다는 머리가 조금 아팠다. 무엇을 얘기하려는지 알겠으나, 문단 중간 중간 나누어진 부분들이 무언가를 말하려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소화하지 못했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무언가 굉장히 예술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가 한강이 예술을 좋아하고, 또 깊이 생각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 이 소설이 보다 조금은 높은 차원의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만큼의 아쉬운 점도 있다. 너무 예술적인 분위기를 풍기다보니, 자연스레 재기발랄함은 없다. 지금까지 한강 작품들도 재기발랄함과는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이 소설은 특히 그렇다. 조금은 어렵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조금은 쉽게 이야기를 끌어갔으면, 대중적인 호평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인물들 간의 대립도 개인적으로 좋았다. 인주와 강석원, 그리고 정희. 이 주요 세 인물들이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강석원은 인주를 좋아했고, 인주는 정희에 대해 친구라는 감정보다 조금은 더 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물론 결말에서는 이 감정들이 이상하게 흘러가버려 조금은 충격적으로, 조금은 허무적으로 다가오지만, 이 감정들이 소설을 끌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인주의 죽음을 추적해가는 정희와, 그런 정희를 말리는 강석원. 사실 기본 여타 소설의 대립관계와 비슷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유독 그 대립관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앞에서 말했듯이, 재기발랄함이 없어 조금은 지루했다는 점과, 인물들 간의 이야기들. 그리고 행간들. 마지막으로 결말 부분이었다. 개인적으로 권선징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식의 결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딘가 뒤에 계속 이어질 것만 같은데, 이런 식으로 끝내버리니 내심 아쉬웠다. 열린 결말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조금 무리가 따를 것 같다. 정적 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서 열린 결말로 끝내야 하는데, 이 소설은 그러기에는 앞에서 이야기를 너무 강력하게 끌어왔기에 정적 지점에서 이야기를 풀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행간들. 한강의 작품 중에서 이런 식으로 행간과, 문장을 나눈 소설은 이것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조금은 박민규 스러운 문장구성이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한강 특유의 문장구성으로 계속 이어나갔으면 보다 박진감 있었을 것 같은데, 아쉬웠다.


이 작품을 통해 한강을 온전히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많이 달라졌기에 조금은 한강스럽지 않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이 작품이 좋았다. 이 책이 막 서점에 풀렸을 때, 한강이 한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 이 소설을 1000매 정도 가량 쓰다가 중간에 버리려 했다고 한다. 그러다 계속 끌고 가기로 하고 계속해서 썼다는데, 그런 것들이 고스란히 텍스트 안에 녹아 있었다. 추리소설 형식 비슷하게 흘러가는 서사구성과, 독특한 문장구성, 천제학과 미술, 조각 등. 독자들에게 조금은 어렵게 다가올 수 있는 소재들을 이 안에 녹여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사실 한강 작품에 주로 나오는 직업들이 미술에 관련된 직업들이다. 그래서 아, 이 사람 미술 좋아하는 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러니 왠지 모르게 반갑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한강의 작품은 조금은 선정적인 부분이 많았는데, 이 텍스트 안에서는 그런 부분이 많이 자제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위에서 말했듯이 평소의 한강의 작품과는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재미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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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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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다. 두께도 꽤 되는데, 이렇게 단숨에 읽어버린 책은 말이다. 처음에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땐, 뭔가 이상하고 칙칙하면서, 냄새도 조금 나고, 어딘가 땀내에 푹 찌든 것 같은 책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내 생각이 달랐다고 생각한다. 물론 처음 예상이 맞는 부분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완벽히 빗겨나간 것 같다. 적당히 쿨하고, 적당히 무거우며, 적당한 즐거움을 주는 책. 이정도가 이 책에 대한 가장 적절한 수식일 듯싶다.


쉰 중반의 나이로 영화감독이었지만 이제는 거의 백수나 다름없는, 거기다가 알코올 중독자에다가 이혼남인 나. 백 킬로그램이 넘는 뚱뚱한 체격에 전과 5범인 오한모.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혼녀인 막내 동생 미연, 거기다 싹수없는 조카까지. 참 어쩜 이리 콩가루 집안이 있을 수 있나 싶다. 이런 이들을 한 집에서 먹여 살리는 엄마까지. 너무도 막장이고 콩가루라 소설에서는 보기 힘든 캐릭터들이 여기 다 모인 것 같다. 그런데 어딘가 하나씩 모자란 캐릭터들이 이 책 한권에 모이니 왠지 모를 시너지 효과를 낸다. 부족한 부분을 더 많이 보여주면서도 가득 채워가는, 그런 느낌이 든다. 어쩌면 현재 우리 가정의 모습이 이 보다 더한 것은 아닐까. 이렇게 막장가족이라 불릴만한 가족구성원들 보다, 어쩌면 지금 우리들 가정이 더한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보게 만들었다.


스토리 면에서도 무척이나 흥미를 끌었다. 전체적인 스토리라인도 탄탄했고, 에피소드들이 강하고 단단했다. 그래서 그런지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읽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이야기들이 너무도 쉽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후반부의 한모의 에피소드는 너무 쉽게 해결한 듯한 느낌이 든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과연 그러한 절차들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걸까. 문장들을 이어 문단으로 그 모든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데, 처음에는 그럴 수 있겠지, 하고 넘어갔었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니 왠지 허술하게 느껴진다. 세상에 그런 절차를 그리 쉽게 한다면 세상 사람들 모두 사기를 치고서 외국으로 나가 살지 않을까. 너무 자연스럽고 물 흐르듯이, 쉽게 이어지다보니 뭔가 허술함이 엿보였다. 그리고 앞부분 내용과 뒤 부분 내용 사이에 작은 틈이 보인다. 그래서, 분명히 같은 인물들이 끌어나가는 이야기인데도, 앞부분과 뒤 부분이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들이 튀어나오다 보니 조금 의아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리고 인물들이 너무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약장수의 경우, 나를 그렇게 구타를 하면서 나중에는 친절히 옷까지 입혀서 저수지에 던져주는 이야기가 나는 개인적으로 이상하게 느껴졌다. 물론 나가 무척이나 감동적인 대사를 날려주었다고 하더라도, ‘약장수’캐릭터 자체로 보면 그런 말로 쉽게 동화되지 않을 캐릭터이다. 그런데 너무 친절한 행동 들을 보여줘서, 나가 주인공이라는 것을 티내는 것만 같았다. 어쨌든 주인공은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그래야 이야기가 전개되니 말이다. 물론 그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거기에도 앞에서 말했듯이 허술함이 있어서, 조금 캐릭터 면에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힘이 있고 강렬한 에피소드들이 많은 소설인데, 그런 디테일적인 부분에서 독자들을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독자들이 충분히 납득하고 이해할 만하게, 물론 전부 설명하거나 보여줄 필요는 없지만, 어느 적정선은 보여줘야 했다고 생각한다.


천명관. 이 작가를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 거의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고래>의 평들을 들어보면 대부분 재미있다는 말과 함께 잘 썼다는 말들이 들려온다. 아직 읽어보지 않았는데,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사실 나도 천명관이라 하면 <고래>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처음 접하게 된 책이 <고령화 가족>이라니. 조금 아이러니 하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서 <고령화 가족>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칭찬을 마지않는 <고래>의 버금가는 재미를 안겨줬으니 말이다. 무척이나 감각적인 작가라고 생각 한다. 쉽고 재미있게 잘 쓰는 작가이다. 어려운 얘기를 하면서도 재미있고 유쾌하게 그려나간다. 그리고 소설 중간 중간 나오는 헤밍웨이의 대한 지식들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재미있고 유쾌했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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