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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불멸의 책을 이제야 읽는다. 사실 작년에 한 번 읽었던 책인데, 그때는 읽었다고 말하기가 무색할 정도로 그저 글자만을 눈으로 따라가 본 게 전부였으므로,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주인공 이름도 자세히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지식만이 남아 있었는데, 이제야 제대로 책을 읽어본다. 사실 처음에 그렇게 읽었던 이유는 이 책이 명성만큼 나에게는 재밌지 않아서였는데, 일 년이 지나 다시 손에 들어보니,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다. 물론 여전히 의문점이 남아 있는 구석도 많이 있지만, 적어도 그 때 보다는 훨씬 이 책에 대해 신뢰감이랄까 그런 게 생긴 것 같다. 내용은 여전히 조금은 지루하고, 엑스트라로 취급되는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 게 조금은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작년에 내가 왜 이 책을 재미없게 느꼈는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사실 이 책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을 때, 제목만 보고는 아, 농사꾼 이야기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읽어보니 이게 웬걸? 방황하는 십대 청소년이 주인공이고, 농사꾼은커녕, 밭에 대해 거의 언급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 당시에는 그게 조금 어리둥절했다. 제목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보이는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뉴욕이라는 최상층의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도시가 주 무대라는 것도 조금은 의아했다. 너무도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읽다보니 이 제목의 뜻을 조금은, 제대로는 아니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다. 호밀밭에 대한 글귀는 본문에서 그다지 많이 나오지 않지만 말이다.
주인공 인물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감정이 너무 들쑥날쑥하고, 앞 문장과 뒷문장이 매치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물관에서 마주친 두 아이가 미이라 전시관에 대해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하는데, 아이들은 겁을 먹고 도망간다. 이 ‘재미’와 ‘겁을 먹고 도망치다’라는 한 단어와 한 문장이 서로 상용하지 않을뿐더러 어딘가 어색하고 걸리게 느껴졌다. 이 외에도 많았는데, 번역의 차이인지, 아니면 작가가 원래 의도를 그렇게 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조금 헷갈린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인물이 나는 너무도 헷갈렸다. 처음에 읽었을 때에는 큰 역할을 맡지도 않은 엑스트라 급의 인물들의 너무도 많이 나오는 것만 같았다. 한 가지를 설명하려고 기어코 다른 인물을 데려오는 작가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너무 필요 없는 인물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 번째, 아주 재미있게 읽은 지금도 그 생각은 그다지 변함이 없다. 다만 처음에 읽었을 때보다 불필요하다고 느꼈던 사람의 수가 조금 줄어든 것뿐이다. 도대체 시시콜콜한 주인공의 생각과, 성격을 드러내려고 왜 이렇게까지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그리고 꽤 비중 있게 앞에서 그려진 인물이 뒤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아 조금 황당하기도 했다. 이 인물이 무언가를 해낼 것만 같았는데 그러지 않아 조금은 아쉬웠다고나 할까. 대표적으로 스펜서 선생님이 그렇다. 나는 이 스펜서 선생님이라는 인물이 뒤에서 다시 한 번 나와 무슨 일을 해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국 앞부분에서 끝나고 말아 너무도 아쉬웠다.
전체적인 느낌은 뭐랄까, 재미있었다. 이 책이 왜 아직도 여전히 불멸의 작품이라고 불리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지 조금은 느끼게 되었다. 백 프로라고 장담은 못하겠다. 왜냐면 아직도 이 책을 읽고 난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받아들여 수용하지 않은 부분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체적인 느낌은 아주 좋았다. 주인공 인물이 조금은 재수 없고, 조금은 짜증나긴 했지만, 나름대로 이해가 갔다. 마지막에는 조금 동정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오락가락하는 생각과 사고, 말투는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사랑하는 동생 피비에게 ‘저 애는 가끔씩 저렇게 미칠 때가 있다’라고 표현하는 장면은 조금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 인물이 그렇게 까지 좋아하고 사랑한 동생을 저렇게 표현할 수 있는 걸까, 싶었다. 친구가 이 책이 읽을 만하다고 했는데, 나에게는 썩 좋았던 책이다.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은 지금, 이 책, 아니 텍스트의 느낌은 아주 나이스하다. 재미있다. 사실 고전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런 식의 스토리와 구성, 인물이라면 환영이다. 물론 오락가락 하는 부분이 없어야겠지만 말이다. 마음에 들었다. 나도 <호밀밭의 파수꾼>을 좋아하고, 이 이야기를 찬양하는 사람이 될 것만 같다. 좋은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