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 윤대녕 산문집
윤대녕 지음 / 푸르메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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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을 읽는다. 주식이 소설인 나에게 산문집은 어딘가 불편하고 어려운 존재였다. 꾸며진 얘기, 어떻게 보면 거짓이라고 볼 수 있는 소설과, 진실성과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을 보여주는 산문은 그 의미와 분야와 마찬가지로 나에겐 동떨어진 존재들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동안 읽은 책 목록을 보면 산문집은 한두 권 될까 말까 할 정도로 극소수였다. 편식은 멀리하자면서도, 손이 먼저 가는 게 소설이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 같다. 아무튼 그런 와중에 정말 오랜만에 산문집 한 권을 읽게 되었다. 윤대녕 작가님의 산문집. 사실 윤대녕 작가님의 책을 그리 많이 본 것은 아니라서 산문집과 소설이 어떻게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단지 윤대녕 작가님의 프리미엄, 이름값 때문에 읽었다고 해도, 솔직히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음에도, 왠지 믿음이 가는 작가라고나 할까. 그래서 윤대녕 작가님의 산문집을, 정말 어렵사리 손에 쥐게 되었다.


산문집은 불편하다. 이 산문집을 읽으면서도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작가님의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어떻게 살아오셨는지에 대해 알게 된 점은 좋았지만, 그 외에 것들, 산문이라는 장르 안에 갇혀 짧게 쓰인 글들을 보면, 언제나 그렇듯 불편함이 끼쳤다. 그러면서도 손에서 놓지 않을 수 없어서 꾸역꾸역, 사실 초반부는 억지로 읽어나갔다. 하지만 중반부를 지나쳐 후반부로 갈수록 재미있어졌다. 사실 처음 얼마 정도를 읽어나가면 속도가 붙는 편인지라, 그런 점에서도 이 책을 끝까지 읽어갈 수 있었지 않은가 싶은 생각도 든다.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작가님의 그대로의 모습, 어머니에 대한 모습, 작가가 된 이후의 모습들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 내가 그쪽에 관련되어 있다 보니 자연스레 그런 쪽으로 눈이 가는 것 같다. 아직도 산문집이 낯설고 어렵긴 매한가지이지만, 이 윤대녕 작가님의 산문집을 통해, 내 독서 편식도 조금은 눈을 돌리고, 산문집이라는 책에 대해 좀 더 애정을 갖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부정적이었던 생각과 마음이, 후반부를 지나고 책을 덮게 된 이 시점에서는 재미있고 유쾌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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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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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강의 소설을 읽는다. 이유 없이 좋아진 작가이다. 그녀의 다른 작품을 읽어 본 적도 없는데, 제목만 듣고 이 작가가 좋아졌다. 그리고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채식주의자>를 오랫동안 읽어보고 싶었는데, 번번이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이제야 이 책을 읽는다.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만족감을 주기도 했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조금의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너무 기대를 하고 읽어서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책을 읽고 지금 이렇게 글을 남긴다. 내가 오랫동안 읽어보고 싶었던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에서 말이다.


한강의 작품은 대부분 식물성을 띤다고 한다.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지 못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만으로도 한강은 식물성을 극대화 시켜 보여주었다. 이 안에 들어있는 세 편의 중편 중에서 두 번째에 해당하는 <몽고반점>은, 어린 아이 때 모두 사라진다는 몽고반점을 가지고 있는 처제에게 이끌려 금기를 넘어서는 ‘나’의 이야기이다. 첫 번째 <채식주의자>는 꿈 때문에 채식주의를 하게 되는 아내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나무 불꽃>은 모든 사건을 겪고 난 뒤, 그래도 현실에서 살아가야하는 인혜의 시점으로 풀어나간다. 이 책은 그야말로 식물성 만연한 책이다.


한강의 작품은 특히 식물성과, 욕망 등의 이야기가 강하다고 느꼈다. 이 책만을 읽어서 일수도 있지만, 대개 그런 느낌이 든다. 한강하면 식물성과 욕망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작가, 하고 말이다. 이 세편의 중편들은 제각기 분위기나 느낌이 다르다. 그러면서도 하나로 보면 모두 일맥상통하게 서사와 분위기가 흐른다. 이런 일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짜인 구조를 보면서 나는 몇 번이나 의아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식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을 지 말이다. 한강의 특징은, 큰 사건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서사를 통해 분위기와 감정을 서서히 정점으로 끌어낸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언뜻 보면 커다란 서사나 자극적인 에피소드들이 많이 있는 것 같지만, 실제 뚜껑을 열어보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너무도 담담해서 그 느낌이 서늘함으로 다가온다. 채식주의라는 것을 이런 식으로 풀어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한강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인물들이 나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영혜와 인혜 자매도 그렇고, 그 들의 남편들과 가족들 모두. 허지만 걸리는 인물이 몇 있었는데, 그건 바로 자매의 남동생 내외였다. 이들은 왜 이 작품에 들어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무언가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땅히 한 역할도 없이 나중에는 자매들과 연을 끊는다는 문장을 보고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사실 이 작품 속에서 이 둘만 제외하고는 모두 제각각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부모들조차도 말이다. 그런데 마땅히 있을 필요도 없는 이 인물들을 한강은 왜 집어넣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중편이다 보니 자연스레 단편보다는 인물들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거겠지만,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그저 조금은 풍성해 보이게 하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만 해볼 뿐이다.


나는 한강의 분위기가 너무나 좋다. 지금까지 읽어본 그녀의 작품은 <바람이 분다, 가라>외에 이 <채식주의자>가 전부이지만, 그 두 작품으로 나는 한강이라는 소설가에게 빠져들었다. 서사적인 면에서 약하게 밀어붙이지만, 마지막에는 커다란 무언가로 둔갑해 내 뒤통수를 때리는 듯한, 그런 그녀의 분위기와 작품 성향이 마음에 든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마음에 들었다. 물론 조금은 의아해졌던 부분도 있고, 조금은 실망했던 부분도 있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앞의 두 중편이 너무도 재미있었고, 내 요구치를 채워준 것 같았다. 마지막 <나무 불꽃>만이 조금은 작품과 따로 노는 것 같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앞의 두 편과는 조금 분위기 면에서도 다르고, 조금은 문제에 대해서 어렵게 다가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편이 빠져버린다면 이 이야기들이 모두 제 갈 길을 잃을 것 같다. 그 편이 있었기에 다른 중편들이 떠받들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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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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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불멸의 책을 이제야 읽는다. 사실 작년에 한 번 읽었던 책인데, 그때는 읽었다고 말하기가 무색할 정도로 그저 글자만을 눈으로 따라가 본 게 전부였으므로,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주인공 이름도 자세히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지식만이 남아 있었는데, 이제야 제대로 책을 읽어본다. 사실 처음에 그렇게 읽었던 이유는 이 책이 명성만큼 나에게는 재밌지 않아서였는데, 일 년이 지나 다시 손에 들어보니,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다. 물론 여전히 의문점이 남아 있는 구석도 많이 있지만, 적어도 그 때 보다는 훨씬 이 책에 대해 신뢰감이랄까 그런 게 생긴 것 같다. 내용은 여전히 조금은 지루하고, 엑스트라로 취급되는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 게 조금은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작년에 내가 왜 이 책을 재미없게 느꼈는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사실 이 책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을 때, 제목만 보고는 아, 농사꾼 이야기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읽어보니 이게 웬걸? 방황하는 십대 청소년이 주인공이고, 농사꾼은커녕, 밭에 대해 거의 언급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 당시에는 그게 조금 어리둥절했다. 제목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보이는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뉴욕이라는 최상층의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도시가 주 무대라는 것도 조금은 의아했다. 너무도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읽다보니 이 제목의 뜻을 조금은, 제대로는 아니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다. 호밀밭에 대한 글귀는 본문에서 그다지 많이 나오지 않지만 말이다.


주인공 인물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감정이 너무 들쑥날쑥하고, 앞 문장과 뒷문장이 매치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물관에서 마주친 두 아이가 미이라 전시관에 대해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하는데, 아이들은 겁을 먹고 도망간다. 이 ‘재미’와 ‘겁을 먹고 도망치다’라는 한 단어와 한 문장이 서로 상용하지 않을뿐더러 어딘가 어색하고 걸리게 느껴졌다. 이 외에도 많았는데, 번역의 차이인지, 아니면 작가가 원래 의도를 그렇게 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조금 헷갈린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인물이 나는 너무도 헷갈렸다. 처음에 읽었을 때에는 큰 역할을 맡지도 않은 엑스트라 급의 인물들의 너무도 많이 나오는 것만 같았다. 한 가지를 설명하려고 기어코 다른 인물을 데려오는 작가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너무 필요 없는 인물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 번째, 아주 재미있게 읽은 지금도 그 생각은 그다지 변함이 없다. 다만 처음에 읽었을 때보다 불필요하다고 느꼈던 사람의 수가 조금 줄어든 것뿐이다. 도대체 시시콜콜한 주인공의 생각과, 성격을 드러내려고 왜 이렇게까지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그리고 꽤 비중 있게 앞에서 그려진 인물이 뒤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아 조금 황당하기도 했다. 이 인물이 무언가를 해낼 것만 같았는데 그러지 않아 조금은 아쉬웠다고나 할까. 대표적으로 스펜서 선생님이 그렇다. 나는 이 스펜서 선생님이라는 인물이 뒤에서 다시 한 번 나와 무슨 일을 해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국 앞부분에서 끝나고 말아 너무도 아쉬웠다.


전체적인 느낌은 뭐랄까, 재미있었다. 이 책이 왜 아직도 여전히 불멸의 작품이라고 불리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지 조금은 느끼게 되었다. 백 프로라고 장담은 못하겠다. 왜냐면 아직도 이 책을 읽고 난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받아들여 수용하지 않은 부분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체적인 느낌은 아주 좋았다. 주인공 인물이 조금은 재수 없고, 조금은 짜증나긴 했지만, 나름대로 이해가 갔다. 마지막에는 조금 동정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오락가락하는 생각과 사고, 말투는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사랑하는 동생 피비에게 ‘저 애는 가끔씩 저렇게 미칠 때가 있다’라고 표현하는 장면은 조금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 인물이 그렇게 까지 좋아하고 사랑한 동생을 저렇게 표현할 수 있는 걸까, 싶었다. 친구가 이 책이 읽을 만하다고 했는데, 나에게는 썩 좋았던 책이다.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은 지금, 이 책, 아니 텍스트의 느낌은 아주 나이스하다. 재미있다. 사실 고전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런 식의 스토리와 구성, 인물이라면 환영이다. 물론 오락가락 하는 부분이 없어야겠지만 말이다. 마음에 들었다. 나도 <호밀밭의 파수꾼>을 좋아하고, 이 이야기를 찬양하는 사람이 될 것만 같다.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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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 개정판 문지 푸른 문학
최시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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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권유로 읽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이 책을 얼마나 칭찬을 하시던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반 학생들이라면 모두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본 책일 것이다. 일학년 후배들도 이 책을 가지고 있더라. 사실 나는 청소년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성인 작가가 쓴 소설이라지만, 나는 청소년 소설보다는 기성작가들의 소설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언제나 글을 쓰면 조금은 글이 기성작가 스러워져, 어쩌면 내가 수상의 길로 가지 않는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청소년 소설이 조금은 유치하고 재미가 없다. 제 감정하나 컨트롤 하지 못해 이리저리 사고를 치고, 눈물콧물 짜내며, 방황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물론 그 나이 때의 가장 중요한 일이자 누구나 한 번 쯤은 겪은 일이지만, 소설에서 조차 그런 것을 보기란 너무 힘들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내가 쓰는 소설이 너무 어렵다고, 너무 기성작가 분위기로 흘러간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수상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선생님에게 청소년 소설을 추천받았다. 언제나 청소년 소설을 예찬하는 선생님이셨기에 당연히 좋은 소설을 추천해 주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추천받은 책이 바로 이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이라는 책이다.


소설은 선재라는 주인공 인물의 일기 형식으로 이어진다. 날짜가 나오고 일기 식으로 그 밑으로 사건을 서술해 나가는 것이다. 누나와 자형이 나오고, 친구들이 나온다. 작가는 마지막 챕터에서 이 인물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독자들이 어렴풋하게나마 추측해보는 정도로 사건을 바라보고 서술해 나간다. 그래서 사실 조금은 짜증이 났다. 나는 어떤 것이나 분명하게 드러나는, 말해주는 소설이 좋지만(물론 적당히 말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내가 무엇을 했기에 그렇게 되었는지 설명이 필요 했다고 느꼈다. 어쩌면 나왔는데 내가 눈치 못 챘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런 식의 소설도 나쁘지 않았다. 아마도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이라는 텍스트의 이름값 때문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읽는 내내 공감했던 말들이 있다. 여기에 적기엔 너무도 많아서 모두 통합해서 말해야겠다. 청소년기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품는 그런 생각들을 어른인 작가가 너무도 자세히, 극명하게 드러내 주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명문장이 나오는 것처럼, 이 소설에는 너무도 좋은 대목이 많다. 그동안 많은 책을 읽으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내가 책에 빠져 이렇게 소설을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이 책이 나를 사로잡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선생님이 왜 그렇게 이 소설을 적극 추천했는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이 소설은 정말 십 대 청소년기에만 느껴볼 수 있는,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감성들과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어디 한군데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냉철하게 보여준다. 조금은 담담한 성격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선재라는 인물의 입을 빌어서 말이다. 그게 가장 좋았다. 이 인물에 대해 조금 더 애정을 가지고 텍스트 안으로 빠져들었다. 그러기도 쉽지 않은데, 정말 푹 빠져 소설을 단숨에 읽어 나갔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책 자체가 두껍지 않고 비교적 얇은 편이어서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들이 뒤로 갈수록 퍼즐이 맞춰지듯 선명해지고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단숨에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조금 아쉬웠던 점은, 누나라는 캐릭터를 조금 더 극명하게 나타내 주었으면 하는 거였다. 너무 두루뭉술하게 풀어내버려, 조금 아쉬웠다. 그리고 이야기들이 전부 하나로 이어지는 연작소설 형태의 장편소설인데, 그것도 마음에 들었다. 중간에 다른 인물이 화자인가? 싶어서 머리를 굴려가며 읽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화자는 선재 한 명뿐이다. 이 인물이 사건을 바라보고 관찰해나가며 서술하는데, 이런 식이라면 내가 쓰는 글도 조금은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다 읽고 난 뒤, 왜 선생님이 그렇게 이 책을 추천했는지 알 것 같다. 청소년이기에 읽어야하는 책이 아닐까 싶다. 청소년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책 덕분에 조금은 좋아졌다. 우리, ‘청소년’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들어준 책이다. 좋았다. 다음은 마찬가지로 선생님이 이 책과 같이 추천해준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볼 생각이다. 그 책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 책만큼 좋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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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뮤직 러버스 온리 민음사 모던 클래식 18
야마다 에이미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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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본소설을 오랜만에 손에 들었다. 일본의 유명한 작가라고는 하지만 나에게는 별다른 지식이 없는 작가였다. 그나마 내가 야마다 에이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와 함께 일본의 3대 여류 작가라는 것과, 여자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평가받는 다는 정도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작가들과 함께 3대 여류작가라 불린다는 것을 듣고 이 작가에게 관심이 생겼다. 어딘가 퇴폐적이면서도 어딘가 섹시한 느낌이 흐르는 사진을 보고 나서는 조금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작가라면 당연히 작품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생각 하에 이 책을 읽어 나갔다. 다 읽고 지금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지금 기분이 조금 묘하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여덟 편의 단편은 대부분 어른들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리고 작가의 국적인 일본이 아닌, 미국을 상대로 흘러간다. 인물들의 거의 전부가 미국인으로 묘사되고, 흑인들도 비교적 많이 나온다. 처음 그것을 눈치 챘을 때, 이 책이 왠지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처럼 흘러갈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차츰 차츰 한 편씩 읽어나가면서 내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는 책이다. 단지 그 사랑이 풋풋한 청소년의 사랑이 아닌, 어딘가 위험한, 또는 어딘가 부족한, 어른들의 사랑이야기이다. 그렇다보니 내가 이해하기에 조금 무리가 따르는 부분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것은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라는 단편이었다. 화가인 여자주인공이 그림을 완성시킬 때까지 그 여자를 안지 않는 연하의 남자가 있다. 그 둘은 우연히 바닷가에서 만나게 되었고, 남자가 여자를 만나러 뉴욕으로 왔다. 대충 보면 삼류스러운 구성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읽다보면 그것을 뛰어넘는, 일류로 분류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다. 개인적으로 윌리 로이라는 인물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단지 육체적 관계의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고 욕구를 참는 데에 재미를 느끼는 것도 그렇고, 어딘가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작가가 참 이 인물을 유쾌하고 귀엽게 그려낸 것 같다. 만약 이 인물이 이런 식의 태도를 가지지 않고 오히려 여자를 함부로 대한다거나 육체적 쾌락만을 추구한다면 이 소설은 말 그대로 불륜의 소설로 치닫게 될 것이다. 이유는 주인공 여자에게는 이미 ‘마이크’라는 남자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닫지 않고 오히려 조금은 섬세한 감성의 (주인공 여자의 스커트가 어떤 식으로 휘날리고 있는지를 묘사할 정도로) 주인공으로 그려져 있어 이 소설이 더욱 더 완성미를 갖추게 되고 일류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를 포함해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들이 모두 쉽게 읽혔다. 어렵지도 않고 지나치게 시간을 끌며 스토리를 이어붙이지도 않는다. 그저 본론만 딱 말한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사랑. 간결해서 좋았다. 일본소설 특유의 템포가 빠른 문장들은 물론, 나에게 맞진 않았지만, 그런대도 좋았다. 일본소설가에게서 우리 소설의 긴 문장이나 문단을 기대하기란 조금은 억지가 아닌가. 그러니 만족한다.


이틀 만에 소설을 다 읽었다. 내가 한 권의 책을 읽어치울 때는 거의 삼일 정도가 걸리는데, 집에서 빈둥거리며 단편 두 편을 읽었고, 서울에 갔다 오는 차 안에서 모두 읽어 치웠다. 그만큼 흡입력 있게 빠르게 읽어나간 것 같다. 처음 이 작가를 만나보는데, 괜찮았다. 물론 미국이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서 이 작가의 타 작품들도 그런 건 아닌가, 싶지만 지금까지는 좋았다.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다. 오랜만에 읽어보는 일본소설이라 그런지 읽는 내내 머리 아프지 않고 잘 읽어갔다.


여덟 편들이 대부분 비슷한 분위기로 흘러가지만, 각각의 극명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서 재미있었다. 마치 각각의 과자들이 들어있는 과자 선물세트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제각각 모양이나 맛은 다르지만 ‘과자’라는 기본적인 사실은 공통적인 그런 거 말이다. 달달한 사랑도 있었고 가슴 아픈 사랑도 들어있는 그런 사랑 선물세트를 받아본 것 같아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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