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 이응
김멜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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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멜라표 이상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화자가 디지털 잡귀고 배꼽에서 나오는 빛이 보이고 복지 서비스가 된 바이브레이터 기계라니. 그러나 이런 이상한 이야기임에도 김멜라가 쓰는 사랑은 자신보다 사랑하는 이를 더 위하기에 나를 울게 한다

P.29
"같이 시루떡 먹을래? 같이 긴 밤 지새울래? 우리 같이 쭉정이 연대 만들래? 너랑 나랑 바위처럼 살지 않을래?"
「지하철은 왜 샛별인가」

P.87
그대로 멈춰 있어도, 아무리 붙잡고 싶어도 우리는 별과 별처럼 멀어질 테지만 사람은 외떨어진 점만은 아니라는 걸. 선은 점이 이동한 경로이니 잘만 찾으면 너와 내가 만나는 외나무다리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좀비 손금」

P.132
〇〇아, 나는 너와 나의 이름을 가리거나 지우지 않을 거야. 너의 빛은 나에게 쏟아져 다시금 세상에 되비칠 거야. 그게 내 빛이 될 거야. 나는 네가 빛날 수 있게 고요히 어두워질게. 그래, 나는 너에게만은 쉬운 사람, 누가 보든 말든 실컷 웃어대는 등대야. 웃는 게 빛나는 거니까. 배꼽에서 빛이 나오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뜨거우니까. 돌아오는 수요일, 나는 일찌감치 자리에 앉아 너를 기다릴 거야. 그날도 우리는 우리 사이의 팔걸이를 비워두겠지만, 그 후로 우리 는 어떤 공연장에 가든 가운데 팔걸이 아래로 손을 맞잡을 거야. 있잖아, 나는 그런 걸 기억해. 아직 오지 않은 우리의 미래를 기억해. 하지만 내가 꿈꾸는 대로 우리가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의 마음을 어떤 물질로 증명하지? 내가 느끼는 이 일렁임을 어떻게 너에게 전할까.
「젖은 눈과 무적의 배꼽」

P.139
찬나야, 너는...... 너는 고작 불멸이구나. 나는 이렇게 부지런히 늙어 한쪽 유방도 보내고 동맥에 반짝이는 스텐트도 심었는데.
P.173
무엇을 채우든 삶이란 나날이 금이 번져 종국엔 그릇 터지는 파열음만 남을 뿐이었다. 그 종지음을 꾸밀 수 있나? 기교를 부릴 수 있어?
「드그다 읏따읏따」

P.204
제발 그만둬, 이 번잡스러운 개야. 나한테 침 묻히고 털 묻히고 정 묻히지 말라고. 신조는 배송이가 펼쳐보는 자신의 내면이 못 견디게 거북하면서도 한편으론 배송이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꼼꼼히 읽어주길 바랐다. 스스로는 차마 드러낼 수 없어 덮어둔 페이지를 너라도 펼쳐봐주길.
「아무래짜」

P.232
"그 짓이 맞나 틀리나 긴가민가할 땐 똑같은 짓을 한 번 더 해봐."
P.254
성욕은 단지 식욕이나 수면욕처럼 바이오리듬에 따라 채워줘야 하는 신체적 욕구일 뿐이었다. 이응은 욕구 해소를 위해 설치된 편의 시설이자 국가가 보장하는 복지 서비스였다.
「이응 이응」

P.300
필라카, 네 말이 맞았어. 몸이 사라져도 기억은 남아서 나와 함께 흐르고 있어. 머리를 잃어도, 손발이 사라져도 너와 보낸 기억은 몸보다 깊은데 새겨져 여전히 내 앞에 아른거려, 언제나 고요하게 감긴 너의 한쪽 눈, 그 눈꺼풀을 가로지르는 붉은 선과 무늬. 그 상처는 네가 아이였을 때 오소리를 피해 달아나다 참나무 가지에 찔려 생긴 거였지. 나는 그 흉터를 오래 바라봤어. 그 안에서 오직 나만이 거니는 좁은 길을 발견했으니까. 나는 조용히 깨달았어. 내가 평생 그 길을 헤맬 거라는 걸. 필라카, 너는 별 보듯 서로의 눈을 보자고 했지만 네가 말한 별은 눈동자가 아니었어. 닫힌 눈꺼풀이, 네가 감은 눈으로 보던 더 깊은 어둠이 내가 바라봐야 할 별이었지.
「물먹은 편지」

P.332
나는 자연스럽지 않은 아이였다. 나이는 여덟 살이지만 마음은 백한 살이었으니까. 왜 이렇게 됐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가출을 많이 해서 그럴까. 아니면 이런 아이라 가출할 수밖에 없는 걸까.
「메께라 께라」

✦ 문학과지성사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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