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면서 주어진 가족과 이름, 종교를 벗어나 '신이인'이라는 이름과 스스로 선택한 집, 가족을 갖게 된 시인의 이야기가 재밌다. 그런데 왜 자신의 집을 '뒤주'라고 부를까. 시인의 유머이려나. 반려 도마뱀들의 이름을 인파(인류 파괴)와 인재(인류 재건)라고 부른 건 시인의 욕망을 반영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시인은 그렇게 기존의 것을 부수고 자신만의 세상을 갖고 싶었던 거라고. 그게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고.P.15태어났을 때부터 신춘문예에 당선되기 직전까지 나는 예은으로 불렸다. 예은은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다. 예수님의 은혜.P.26내가 선택한 전략은 '외계인 되기'였다. 저는 이상한 사람이 맞으니까 받아들이세요. 대신 재미있기도 할 겁니다. 예쁘게 봐주세요. 양해해주시고 남는 자리 하나만 주십시오. 시인이 된 건 그런 외계인 라이선스를 따낸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사람들은 내가 그들이 판단하기에 부자연스러운 언행을 해도 '예술가잖아', '외계인이잖아' 하고 넘어가준다P.40어느덧 주문은 내 목소리로 들린다. 설령 세상 사람들이 전부 나를 싫어한다 해도 나까지 나를 싫어할 수는 없지. 어쩔 수 없지. 이 또한 무리에서 벗어난 존재의 생존 본능이다. 나를 보호하는 건 내 마음이다.P.47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 맞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 집에서 독립은 상상할 수도 없는 사건이었다. 내 인생엔 늘 그런 사건에 뛰어가 몸을 부딪쳐야 하는 때가 있었다. 교회 안 가기. 학원 안 가기. 몰래 연애하기. 담임 선생님이 학부모 호출하는 상황 만들기. 부모님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허파에 바람들기. 아르바이트하기. 통금 어기기. 외박하기. 정신과 가기. 멀쩡한 직장 때려치기. 언니에게 없고 나에게만 있는 순간들. 그때마다 나는 어떻게 했더라? 언니가 부딪치지 않아 더욱 굳건해진 장벽을 어떻게 뚫어야만 했던가.P.64나는 인파의 펑키함이 귀여웠다. 업자들의 판단 기준을 거스르는 것도 모자라 혹까지 달고 있는데 성격도 말괄량이라니, 그렇지만 아주 건강하다니. 이 모든 사실이 사랑스러웠다. 그런 도마뱀과 가족이 되는 일은 내 적성에 잘 맞았다.P.119오랫동안 곁을 지켜주었으면 하는 사랑의 모습을 이곳에 적어 희망해본다. 유순했으면 좋겠다. 산책, 아니 탐험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견문을 넓힐 수 있도록. 밤길을 안내해주었으면 좋겠다. 두려움을 덜어주었으면 좋겠다. 같이 춤을 출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수명이 길었으면 좋겠다. 나를 보호하되 내가 더 강해지는 동기가 되었으면 좋겠다.P.175퇴사를 하고 시를 쓰기 시작하자 직장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달라 보였다. 속도 없다고 생각했던 동료는 씩씩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잔소리를 하던 선배는 남을 챙겨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첨하거나 모욕감을 주던 관리자는 안쓰러운 사람이었다. 나는 부끄러워졌고, 궤도 바깥에 남아 세상으로부터 이탈되는 가치를 주운 다음 띄워 올려야 할 의무를 느꼈다.✦ 위즈덤하우스에서 책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