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미영 팬클럽 흥망사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5
박지영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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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미영이 은조와 그때 타인이 뱉은 침을 같이 맞았다면 어땠을까. 뱉지 못하고 삼킨 침이 내면에 쌓여 복미영을 찌른다. 그래서 이제 복미영은 침을 뱉어내기로 한다. 40년간 타인을 덕질하던 그가 자신의 팬이 되기로 결심한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부정하는 한 글자만 제외해도 많은 것이 달라진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마법의 주문이 될지도.

_P.37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한때의 팬에게 분노하는 심장을 가진 멍든 하늘 같은 팬을 둔 W가. 최애가 하나를 잘하면 백을 잘했다고 말해주는 팬들, 최애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든 그럴 수밖에 없었을 이유를 찾으려고 자신의 도덕적 기준까지 바꿔버리는 팬들, 최애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밤새워 투표를 하고 공폰을 돌려가며 스트리밍하는 팬들, 최애가 더 많이 사랑받도록 밤새 영상을 편집하고 연기력 논란이 있을 때는 비평이론까지 공부하며 악플러들과 싸우기 위해 법적인 조언까지 받는 팬들, 그런 팬들을 가진다는 건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나 같은 건, 나 같은 건 평생 알 수 없는 거겠지.
_P.39
복미영은 생각했다. 만들자, 복미영 팬클럽. 내가 복미영의 팬이 되어주자. 까짓것, 팬질 경력만 40년이 넘었다. 그동안 안 해본 팬질이 없었다. 나까짓 것의 팬이라고 못할 게 없었다. 나까짓 것에서 나만 빼면 까짓것이 된다는 것도 좋았다. 까짓것, 나도 팬클럽 하나 가져보자. 그 생각을 하자 갑자기 움츠러든 어깨가 활짝 펴지는 기분이었다.
_P.88
줄곧 통상적 복미영을 억압해왔던 말, ’안‘을 버리고 나니 남는 것은 ’나는 아마 될 거야‘라는 문장뿐이었다. 단지 한 글자만 버리면 되는 것을 왜 그리 붙들고 있었을까. 어쩌면 통상적 복미영과 관념적 복미영의 차이는 자신을 구속하는 한 글자를 버리느냐, 버리지 못하느냐의 차이인지도 몰랐다.
_P.201
사실 인생의 총합은 결정적이고 의미 있는 사건들, 기승전결이 분명하고 또렷한 플롯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어떤 식으로 회수될지 모를 알 수 없는 수많은 떡밥들, 기미와 징조와 암시만 남기고 소멸되는 크고 작은 헛다리 짚기로 이루어질 뿐인지도 몰랐다.
_P.243
”절망의 속도보다 아직은 낙관의 속도가 조금 빠른가 봐요.“
김지은이 자신도 확신이 없는지 작은 소리로 웃으며 대답했다.
확신할 수 없는 말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지만 믿고 싶은 말에 대해서, 조금 더 소리 내어 말하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 현대문학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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