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의 사랑 거장의 클래식 6
딩옌 지음, 오지영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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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다르게 자꾸만 눈길을 끄는 이에게 다가가고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여운이 남는다. 서정적이지만 담고 있는 것은 파격적이라 작년에 읽은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이 생각났다. 딩옌은 이슬람교를 믿는 중국의 소수민족 출신이다. 각 소설에는 이슬람교의 문화가 나오고 티베트를 배경으로 한다. 그렇게 작가는 자신의 씨앗을 소설 면면에 드러낸다.

_P.49
”다른 건 둘째 치고 매일 네가 절 올리는 이 석가모니가 스물아홉 전까지 뭘 했는지 아니? 보통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고 배설하면서 살았어. 결혼해서 애도 낳고 겪을 일은 다 겪었단 말이야. 그런데 넌 뭐니? 석가모니가 은둔하고 나서 시작한 고행의 삶으로 건너뛰겠다는 거잖아. 석가모니는 평범한 삶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었어. 너는 뭘로 깨달음을 얻을 건데? 부처에게 절 올리면 되는 거니? 아니면 무지하고 무미건조한 네 삶에서 깨달음을 얻을 거야? 세상엔 반드시 경험하고 나서야 그걸 취할 건지 버릴 건지 결정할 권리가 생기는 일도 있어. 그런데 넌 뭘 하고 있는 거야? 중간 과정은 전부 생략하고 곧장 출가해서 비구니가 되겠다니. 대체 그렇게 살아서 뭐 하니? 차라리 그냥 죽는 게 낫겠다. 어차피 사람은 결국 다 죽을 거잖아.“
<속세의 괴로움>

_P.118
마전은 그들을 이해하면서도 무의식중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저들과 ‘우리’의 차이는 과연 뭘까? ‘우리‘는 저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대부분 ”매일매일의 시간을 한사코 저런 데다 쓰다니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라는 말을 내뱉을 것이다. 설령 말을 내뱉지는 않더라도 속으론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설산의 사랑>

_P.181
”아프리카봉선화를 많이 키워서?“
”키우기 쉬워서. 줄기 하나를 잘라 물에 며칠만 꽂아두면 수염뿌리가 생겨서 어디에 심어도 잘 살거든. 꼭 그 여자랑 비슷하잖아.“
<아프리카봉선화>

_P.235
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사람이 각자 병을 앓고 있는 환자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거리를 스쳐 지나가는 정상인처럼 보이는 행인도 어쩌면 볼품없는 중독자일 수 있고 불치병에 걸린 가여운 사람일 수도 있으며 편협하지만 부유한 편집증 환자일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서로 알지 못하는 데다 바삐 지나치느라 알아차릴 새가 없을 뿐인지도 모른다.
<UFO가 온다>

_P.314
이 쓸쓸한 세상에서 이 한 번의 만남도 충분히 사치스러운데 무엇을 더 탐낸단 말인가.
<잿물>

_P.322
우리 사이에 벌어지는 모든 일에는 처음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묘한 묵계가 있었다. 꼭 내 앞으로 배달된 낡은 편지 한 통을 열고 누렇게 바랜 편지지에 붓끝이 남긴 넘실거리는 봄볕과 부드러운 탄식을 따라 걸어온 것 같았다. 그 걸음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지내는 동안 가볍고 무거운 문제들이 나타났고 채 해결하지 못했다. 그것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했다.
<늦둥이>

_P.384
”아빠가 살아 계셨을 때 그 사람들이 오면 난 빌붙으러 온 줄 알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대했어. 지금은 그 생각이 얼마나 천박했는지 알 것 같아.“
”그러게. 사람은 어떤 사건을 겪고 나서야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 같아.“
<자카트>

✦ 글항아리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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