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곳에서 만나요
이유리 지음 / 안온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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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개의 소설에서 아홉 번의 생을 사는 고양이를 제외하고 사람인 화자들은 모두 죽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하고 싶은 것이 남았기 때문이다. 나의 죽음 이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모습을 목격한 뒤 소멸한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좋은 곳으로 가세요.’라고 한다. 죽은 사람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좋은 곳에 있기를 바란다. 사랑이란 감정은 이 책에서 이기적이기보다 이타적이다. 그래서 좋았다.

_P.25
“거기 너랑 내 얘기는 하나도 없었어. 믿어지니, 그게?”
『오리배』

_P.97
나는 심지어 가끔은, 내가 죽은 것이 더할 수 없이 온당하게 느껴져 고소하기까지 해요. 죽어 마땅하지요. 장례식에 찾아와 눈물 한 방울 흘려줄 사람이 없는 것이, 육개장 한 그릇 먹어줄 이가 없는 것이 당연하지요. 마땅히 마주해야 하는 것들을 마주하지 않았으니까요. 비겁하게 도망만 쳤으니까요.
『심야의 질주』

_P.152
매일이 그런 날들이었다.
모든 것이 좋아질 듯 좋아지지 않았고 다만 혜수가 좋았던 날들.
외롭지 않은 건 아니었다. 혜수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다만 혜수가 있어서 조금 덜 외로웠다.
그거면 됐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세상의 끝』

_P.176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사랑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내 시간은 로즈의 집에 있을 때 외에는 낭비였고 내 언어는 그 애와 대화를 나눌 때가 아니면 무의미했다. 그 애의 기둥 주위로 몸을 둥글게 말고 내 가슬가슬한 혀로 기둥을 쓰다듬을 때, 나는 그 애의 가시에 찔릴까 두려워하기보다는 내가 그 애의 가시를 다치게 할까 봐 걱정했다. 나는 또 그 애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뿌리와 단면을 보고 싶었고 사막의 모래와 태양이, 밤이면 그 애의 머리 위로 쏟아졌을 은하수가 궁금했다. 나는 먹이를 조르는 새끼 고양이처럼 그 애에게 들러붙어 그것들을 말해달라고 했고 같은 이야기를 수백 번 들었지만 매번 새로웠다.
『아홉 번의 생』

_P.251
정민아, 뛰어.
『영원의 소녀』

_P.289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가고 싶던 곳에 가고, 하고 싶은 말을 끝내 하고. 아무튼 원하는 건 거의 비슷한데, 거기까지 다다르는 과정이 또 얼마나 다양한지 몰라. 결코 길지 않은 삶을 살면서 어쩜 그렇게들 끈질기게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지. 맘대로 안 되는데도 어떻게든 저들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애쓰는 게 굉장하기도 하고.“
『이 세계의 개발자』

✦ 안온북스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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