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 - 모든 것이 왜곡되어 보이는 아이들의 놀라운 실상
미야구치 코지 지음, 부윤아 옮김, 박찬선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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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을 저지르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아동정신과 의사 미야구치 코지 박사는 법무성 미야카와 의료소년원에서 법무기관 자격으로 폭행 및 상해죄로 입소한 비행청소년들을 치료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의료소년원은 발달장애 아동, 학대 피해 아동, 등교 거부 아동, 지적장애를 가진 소년들을 수용하는 곳이다. 


의료소년원 아이들은 종이에 그린 원을 똑같이 3등분 하지 못했다. 간단한 셈을 못하거나 글자를 제대로 읽지 못했고, 짧은 문장도 외우기 힘들어했다. 간단한 그림을 따라 그리지 못하는 데다 상대방의 행동을 보고 따라 하는 것도 어려워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힘이 부족한 아이들도 많았다. 


아이들은 그동안 외부정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왜곡해서 받아들였기 때문에 부적절한 언행을 반복한 것이다. '다루기 힘든 아이', '문제아'로 불리는 아이들은 인지 기능의 문제로 인해 잘못된 판단을 하였고, 어떤 행동과 말이 사회의 문제가 되는지도 모른 체 비행을 저질렀다. 


보는 힘, 듣는 힘, 상상력이 부족한 아이들


우리 주변에 인지 기능이 약해서 학교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서 비행을 저지르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된 미야구치 박사는 2020년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을 펴냈고, 출간 즉시 일본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라 5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이 책은 주로 저자가 의료소년원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되었다. 일본에는 현재 약 50개의 소년원이 있는데, 모든 시설에 발달장애나 인지 장애를 가진 비행 청소년이 수용된 것은 아니다. 저자는 다른 소년원의 정보를 종합해 본 결과 이와 같은 결과는 의료소년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이 발간되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을 때 마침 일본에 있었다. 들리는 서점마다 잘 보이는 곳에 이 책을 진열해 놓고 있어서 눈에 금방 띄었다. 교육과 관련된 책이라 구입을 했는데, 지인들도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책에 대해 이야기도 나눴다.


경계선 지능과 지적장애 판단 기준


'경계선 지능'은 지능지수가(IQ)가 70~84로 생활과 학습 등에 어려움이 있어 관심을 갖고 살펴봐야 하는 대상을 말한다. 공식 명칭은 '경계선 지적 기능'이다. IQ 55~69에 해당하는 '경도 지적 장애'와 달리 장애로 인정하지 않는다. 


경계선 지능에 대한 관심 및 연구는 미국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1960년대 미국지적장애협회(American Association on Mental Retardartion)에서는 IQ가 70~85에 속하는 사람을 정신 지체(현 지적 장애)가 있는 것으로 진단했다. 하지만 교사와 학부모를 중심으로  IQ가 70~85에 속하는 사람을 지적 장애인에 포함시키는 것은 과도하다며 이의를 제기하였다. 1970년대 초반 정신 지체 진단 체제가 수정되어, 경계선 지적 기능을 가진 사람들은 장애 진단을 받지 않게 되었다. 


한국의 경계선 지능 구분은 미국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의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Disorders)의 기준을 따르고 있고, 현재 다섯 번째 개정판이 발간되었다.


1952년에 발간된 1판에서는 평균 이하의 지능을 가진 사람을 정신 지체라고 정의했다. 1968년 발간된 판에서는 IQ 68~83에 해당하는 사람을 '경계선 정신 지체'라고 불렀고, 1980년 3판에서는 IQ 71~84사이를 '경계선 지적 기능'이라고 정의했다. 2013년 5판에서는 이전과 달리 IQ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증상의 나열로만 구분했는데, 적용에 어려움이 있어 의견이 분분하다. 참고로 현재 쓰이고 있는 '지적 장애'라는 용어는 DSM-5의 기준에 따른 것이며, 지금은  IQ 70 미만을 지적장애라고 한다. 


DSM-5에서는 지적 장애를 지적 능력 및 심리적·사회적 적응 정도에 따라 경도, 중등도, 중도(중증), 최중도로 나누고 있다. 경도는 IQ 55~55부터 70까지로 전체 지적 장애 중 가장 많은 비중 약 85%를 차지하고 있다. 중등도는 IQ 35~40부터 55~55까지를 말하며, 전체의 약 10%를 차지한다. 중도는 IQ 20~25QNXJ 35~40까지이며 약 4%, 최중도는 IQ 20~24 미만으로 약 1%를 차지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표준화된 지능 검사에서 최하 규준을 적용해도 측정하기는 어렵다. 


경계선 지능 5가지 특징


1. 인지 기능이 약하다. 

2. 감정 제어 능력이 약하다.

3. 융통성이 없다. 

4. 자기 평가가 부적절하다.

5.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이 약하다.

6. 신체 운동 기능이 떨어진다.


경계선 지능 파악이 어려운 이유


IQ 만으로 경계선 지능을 전단하지 않는다. 우울증이나 조현병 등이 있으면, 인지 기능이 일시적으로 저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습 부진, 신체 운동 협응 및 조절의 어려움, 언어 발달 지연 등이 동반되는 증상이 있을 때 비로소 경계선 지능으로 진단한다.


경계선 지능은 유아기일 때는 알아차리기 어렵고, 보통 학령기에 발견된다. 경계선 지능 아동은 또래와 집단으로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노는 경우가 많다. 개별적인 관심을 받지 못하면 소외되고 무기력을 느끼게 된다. 일반 아동과 같이 인정욕구, 새로운 경험 그리고 주도적인 행동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발달에 도움이 된다.


겉으로는 별문제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학부모와 교사가 성격이나 가정의 교육 때문이라고 판단, 잘못된 방식으로 접근하기 쉽다. 버릇을 고치겠다며 엄하게 다스리는 것은 문제를 악화시킬 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계선 지능 및 경도 지적 장애의 경우는 관심과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인지 훈련을 하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인지 장애, 발달 장애, 자폐 범주성 장애


큰 범주에서 보면 경계선 지능도 일종의 인지장애로 볼 수 있다. 인지 장애는 기억력, 언어 능력, 시공간 파악 능력과 같은 발달 장애나 지적 장애뿐 아니라 사고 등으로 뇌 손상을 입은 경우, 치매나 뇌졸중으로 인지적 손상을 입은 상태를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즉 인지 기능은 나이가 든 어른도 낮아질 수 있다.


참고로 발달 장애는 신체 및 정신이 해당 나이에 맞게 발달하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 말로, 이전에는 자폐 범주성 장애를 지칭했으나, 현재는 발달 장애 안에 자폐 범주성 장애와 지적 장애를 모두 포함한다. 자폐 범주성 장애는 관심사와 활동 범위가 한정되어 있고, 특정한 행동을 반복적으로 함, 타인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 


지적 장애는 자폐적 증상 없이 인지 장애를 가진 것을 뜻한다. ADHD는 인지 기능이 높낮이와 상관없이 유전적·신경학적·사회심리학적으로 영향을 받아 주의 산만, 과잉 행동, 충동성을 나타나는 경향을 뜻한다. 


지적 장애 아동 현황


한국의 경계선 지능에 있는 아동 및 청소년은 한 학급 당 20명이라고 했을 때 3명꼴로 전체 학생 수의 약 14% 정도로 추정된다. 일본과 비슷한 수치다. 지적 학생은 약 1%로 추정된다. 한국은 지적 장애를 3등급으로 구분하며, 판정 기준은 다음과 같다. 1급은 IQ 35 미만으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의 적응이 현저히 곤란해 타인의 보호가 필요한 사람이다. 2급은 IQ 35~49로 일상생활에서 단순한 행동을 훈련시킬 수 있고, 어느 정도 감독 및 도움을 받으면 복잡하고 특수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 3급은 IQ 50~69로 교육을 통해 사회적·직업적 재활이 가능한 사람이다. 


현재 한국의 지적 장애인은 약 21만 명(2019년 기준)이다. 5년 전인 2014년에는 약 18만 명으로 약 3만 명이 증가했다. 이 수치는 지적 장애인 숫자가 급격히 증가한 일본과 차이가 있는데, 인식과 관심도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한다. 


근래 들어 한국에서는 경계선 지능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다양한 노력과 시도를 하고 있다. 2016년 초·중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이 통과되어 경계선 지능 아동 지원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등 제도가 개선되고 있다.  전남교육청은 '천천히 배우는 학습자 지원 조례'를 제정했고, 이후 각 시도 교육청이 관련 조례를 연이어 제정하고 있는 추세이다. 각 지자체와 교육지원청에서도 지역 특성에 맞는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맞춤형 지도를 실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2020년부터는 아동권리보장원이 주관하고 전국 지역아동센터에 다니고 있는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 적응 프로그램이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2020년부터 발달 장애 아동 및 경계선 지능 아동을 위한 '느린 학습자를 위한 시끄러운 도서관' 시범 사업을 진행 중인데, 발달 장애 및 경계선 지능 아동 특성상 눈치를 보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했고, 이외에도 다양한 지원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소년원 등 교정 시설에 있는 지적장애 및 경계선 지능 청소년을 위한 지원책은 미흡한 편이다. 2010년 연구에 따르면 82명의 성폭력 가해 청소년 지능을 검사한 결과 26.5%에 해당하는 19명이 지적 장애(IQ 69 이하 4명)이거나, 경계선 지능(IQ 70~79에 해당하는 15명)에 해당하는 지적 수준을 보였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된 자료에 의하면 2016년 3월을 기준으로 전국 10개 소년원에 있는 총 1,018명의 보호소년 중 정신질환, 품행장애 등으로 정신건강 치료가 필요한 청소년은 230명으로 전체 인원 대비 22.6%를 차지하는데, 이 중 37%가 지적장애 및 경계선 지능에 해당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교육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은 교사에게 다양한 신호를 보내며, 보통 초등학교 2학년 무렵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한 학급을 35명 정도로 보면 이중 하위 5명가 해당한다. 그러나 보호자조차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사회에서도 알기 어렵다. 


이 유형의 아이들은 병원의 심리치료 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학습의 토대가 되는 인지 기능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고 또 도움이 된다. 일반적으로 병원에서는 WISC 검사를 실시해서 판단 기준을 삼는다. 저자도 언급했지만 나는 WISC 검사만으로 아이를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학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효율이라는 명목하에 방과후에 한 교실에 몰아넣고 시간만 보내게 하는 것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한 학급에 5명은 적은 숫자가 아니다. 아이들 개인에게 적합한 맞춤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인지 기능에 중점을 둔 치료 


비뚤어진 사고를 바로잡아 부적절한 행동·사고·감정은 줄이고, 적절한 행동·사고·김정을 늘리면서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한 사회적 기술 개선 등을 도모하는 치료법 중 하나이다. 심리 치료 분야에서 효과가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비행청소년이 변하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는 가족의 고마움과 괴로움을 알게 되었을 때, 피해자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장래 목표가 생겼을 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다른 사람과 대화할 자신이 생겼을 때, 공부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중요한 역할을 만났을 때, 집중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보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집단생활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깨달았을 때였다고 한다. 


나도 할 수 있어요


아이들에게는 학습적인 면, 신체적인 면, 사회적인 면 세 가지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자기 이해'와 '자기평가의 향상'이 효과가 있는데, 아이들 입에서 '나도 할 수 있어요."라는 말이 나오면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믿어도 좋다. 그동안의 학습클리닉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얻은 확신이다. 


저자는 인지 기능을 향상시키는 코그니션 트레이닝(Cognition Training)을 제안한다. 인지 기능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기억, 지각, 주의력, 언어 이해, 판단 및 추론)에 대응하는 '묘사하기, 기억하기, 찾아내기, 상상하기, 숫자 세기'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하루 5분이면 충분하므로, 조회나 종례 시간을 이용하라고 말한다. 인지 기능 트레이닝은 범죄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흉악 범죄 중에는 생활환경이나 성격 문제 외에도 뇌 기능 장애와 연관된 사건도 있기 때문이다. 


「다루기 힘든 아이 문제는 따로 있다」를 읽다가 이 책이 생각났다. 예전에 읽었지만 서평을 쓰지 않았었기 때문에 이참에 정리하면서 '경계선 지적 기능' 아이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교육 일선에 있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답답함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교육부와 학교는 학습에 어려움을 안고 있는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기초학력에 무작정 예산을 들이붓는다고 해서 기초학력이 향상되지는 않는다. 지원 대상자를 무시한 서비스 제공은 서비스강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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