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요슈 선집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사이토 모키치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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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요슈 선집(万葉集選集)

사이토 모키치(斉藤茂吉), AK커뮤니테이션즈


일본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일본이 연호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연호는 '공간'에 질서를 부여하는 법체계와 함께 '시간의 지배'를 상징하기 위해 도입되었다는 연구가 지배적이다. 2019년 5월 1일부터 사용하고 있는 '레이와(令和)'는,  248번째로 선정된 연호로,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 고전에서 인용되었다. 


만요슈(万葉集)는 약 1200년 전에 편찬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가집(歌集)으로, 텐노나 황족, 귀족 만이 아니라 사키모리(防人,옛날 관동지방에서 파견되어 요지를 수비하던 병사로 3년마다 교대), 농민들에게 이르기 까기 폭넓은 계층의 사람들이 읊은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무려 4,500여 수가 되기 때문에 현대인이 읽기가 쉽지 않다.  


작가 사이토 모키치(斉藤茂吉, 1882~1953)는 만인을 위한 작품집을 지향하기 위해 사람들이 꼭 알아두었으면 하는 것을 이 책에 최대한 담았다고 한다. 따라서 수록된 단가(短歌)는 감상이 핵심이므로 비평과 주석은 두번째 문제이니, 감상에 방점을 두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기를 요청했다. 저자는 정신의학 전공으로 정신과 의사이자 가인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적광』, 『아라타마』, 『한운』, 『하얀 산』, 『동마만어』, 『가키노모토노 히토마로』, 『사이토 모키치 전집』(전36권) 등이 있다.


/책속에서

P. 39 기이국의 산 넘어서 가다 보면

나의 임께서 일찍이 서 계셨다던 신성한 나무숲길

P. 140 왠지 쓸쓸한 생각 가눌 길 없네

드넓은 하늘 늦가을의 소나기 하염없이 내리니

P. 213 하늘의 해는 밝게도 빛나건만

칠흑과 같은 밤하늘 떠가는 달 숨는 것 아쉬워라

P. 435 고개를 들어 초승달 바라보니

언뜻 보았던 그 임의 가는 눈썹 저절로 떠오르네

P. 475 마키무쿠의 산 주위를 울리며 흐르는 물의

물거품과도 같네 이 세상의 우리는(알라딘)/ 




도대체 어디에 머물지 알 수가 없다


어느 나루에 배를 대고 있을까

아레(安礼)의  곶을 노 저어 들어간 널 없는 작은 배( p117)


いづくにか船泊すらむ安礼埼こぎ回み行きし棚なし小舟


다케치노 구토히토(高市黒人)의 노래다. 널 없는 작은배(棚なし小舟)에서 널'의 뜻은 배의 좌우의 현에 걸쳐 덮어 놓은 나무판을 널(덕판)이라고 한다. 전체적인 의미는 '지금, 미카와의 아레 곶 부근을 노 저어가고 있는, 바로 저 널 없는 작은 배는 도대체 어디에 머물지 알 수가 없다.'이다. 이 노래는 여행 중에 부른 노래이기 때문에 쓸쓸한 심정과 고향(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교차되어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 단가의 해석을 달리해보았다. 유랑객은 지금 널도 없는 작은 배를 노 저어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에 머물지 알 수가 없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비유가 가능하다. 인간은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 걸어가고 있으나 도착점인 '장소'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존재'조차도 확인이 불가능하다.


번역자의 고민과 선택


만요슈의 번역 작업은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역자는 번역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부분은 정형시의 음수율, '말의 음악'에 대한 번역이었다고 한다. 등가성과 가독성 확보가 매우 중요하지만, 정형시의 번역이라는 특성상 음수율은 시의 생명과도 직결된다고 파악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 고전 운문의 틀(5 ·7· 5· 7· 7)에 맞춰 번역에 임했으나, 불가능함을 깨닫고 '말 묶음', '소리때림(?)' 등 리듬을 재현해보고자 노력했다고 역자 후기에 적었다. 가집(歌集)의 특성을 살리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천천히 음미하는 책


일본 아마존에 만요슈를 검색해보면 많은 책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자 후기에서 '이 책은 1938년 이와나미신서 라인업 20권 중 하나'라고 했는데, 같은 제목의 책은 없어서 정확히 언제 발행된 책을 번역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일본 문화에 관심이 없다면 단어가 생소하여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 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는 이해에 도움이 된다. 


저자가 권유한 것처럼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아쉬운 점은 다른 서적에 비해 책의 크기와 글자 크기가 작다. 특히 일본어로 표기된 단가(短歌)는 더 작게 인쇄되어 있어서 읽기가 힘들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온라인이 일상화되어 있다 보니 논이 혹사되어서 더 불편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쓸모도 없는 고민만 하지 말고

한잔 가득히 따라 준 흐린 술을 마시는 게 나으리

p306~310, 오토모노 다비토, 만요수


<이 책은 출판사의 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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