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유튜버, 그래서 돈은 얼마나 버냐, 너무 많이 변했다, 교수가 하지 말라는 것만 하네, 돌아가며 조롱을 했다. 재희는 나갈 수도 없는, 그야말로 붙들린 인질처럼 단톡방에 갇혀버렸다. 그들은 단순히 유희와 화젯거리가 필요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성을 잃어버린 재희는 사악니로 변신해 입에 담지 못할 험악한 욕설을 날렸다. 다시 한번 초대하면 그땐 정말 다 사지육신을 찢어 죽이겠다고 말했다. 나가기 버튼을 눌렀다. 다행히 더 이상 초대는 없었다.
p.53
재희는 수리의 의심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자신이 경찰이라면, 가장 먼저 현장 근처에 있던 자신을 의심할 것이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째다.(중략)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외줄타기를 하는 초보 곡예사처럼 위태로운 상태였다. 까딱하다간 아득한 계곡으로 떨어질 위기였다. 다시 누가 목을 죄는 듯 숨이 막혀왔다. 재희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심장이 벌컥거리며 뛰어댔다. 후우, 후우, 연거푸 심호흡을 했지만, 호흡이 가라앉지 않았다.
p.114~115
더 이상 숨길 것도 없었다. 이제는 세상 사람들 전부가 재희를 아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악니, 150만 명 구독자를 가진 대형 유튜버, 실상은 히키코모리와 마찬가지였고 그 스트레스를 남을 헐뜯는 것으로 푸는 쓰레기.
"김재희 씨·····?"
p.117
크고 신비로운 눈동자에 스며든 한기. 그 속에서 침착하게 가라앉은 비통이 느껴졌다. 재희는 그 순간 수리라는 여자에게 호기심과 함께 무섬증이 일었다. 그녀의 바위 같은 본질, 자신과 똑같이 생긴 핏줄의 죽음을 잊지 않고자 하는 의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복수심. 재희는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 얼얼했다. 인간 같지 않은 그녀를 보느니 바탕화면을 보는 편이 나았다.
p.133
종잡을 수 없는 감정들이 한데로 모여 분노라는 이름으로 팽창했다. 한 번의 화나 욕설로 표출될 수 없는 것들, 증오, 혐오, 살의라고 부르는 감정의 전이였다. 재희는 단번에 수리를 이해했다. 언니의 죽음을 전시해놓은 그녀의 노트북 배경 화면은, 그 시간을 절대 잊지 않으리라는 스스로의 다진이자 맹세였다.
p.214
존엄은 파괴되었다. 재희는 엄마를 흔들어 깨웠다. 정말 영혼이 빠져날갈까 봐 엄마를 붙잡았다. 금방 잠에 빠져든 엄마가 눈을 떴고, 자신의 상체를 잡고 울부짖는 재희를 보며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당장 나가세요, (중략) 재희의 새된 울음은 아무도 돌봐주지 않았다. 기어코 엄마는 무언가를 게워냈다.
p.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