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13
존 맥그리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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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13』은 저수지가 13개 있는 동네의 13년을 다룬다. 소설은 여자아이 실종사건으로 시작해서 독자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실종된 여자아이의 이름은 리베카, 베키, 혹은 멕스였다.”는 문장만 소설 곳곳에 유령처럼 떠돌 뿐,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실종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건 아니다. 여우가 새끼를 낳고, 양이 죽고, 누군가 이사를 오고, 누군가 죽는다. 누가 누구의 집에 들락거리고 데이트를 하는 모습이 목격된다. 실종사건에서 한걸음 물러나 바라보면 마을에선 매일매일 사건이 생겨나는 셈이다.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들이라 독자에게 사건 취급을 못 받을 뿐이지. 


첫 페이지를 읽을 때부터 서술방식에 대해 꼭 언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을 사람들의 행적을 정말 ‘서술’만 하기 때문. 묘사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문장? 그런 거 없다. 자꾸 영화 <도그빌>이 떠올라서 혼자 소름 돋았음. 


완독하고 나니 실종사건은 맥거핀이 아니었을까 싶더라. 『저수지13』은 소설이라기보단 관찰일기에 가까운 느낌. 읽으면서 신기했던 건 사실 기록의 나열인데도, 그 문장들이 모여 서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는 것. 특별한 묘사가 없는데도 읽는 내내 한기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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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미드나이트
릴리 브룩스돌턴 지음, 이수영 옮김 / 시공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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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하얀 눈 속에서 종말을 맞이하는 것과 칠흑같은 우주에서 종말을 맞이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끔찍할까. 『굿모닝 미드나이트』를 읽은 지금, 질문의 답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있다. 『굿모닝 미드나이트』의 주 무대는 ‘눈부시게 하얀 눈’과 ‘칠흑같이 어두운 우주’다. 북극에서 별을 연구하던 어거스틴과 우주에서 통신을 담당하던 설리번. 소설은 두 무대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종국에는 어거스틴과 설리번의 부녀지간이라는 게 밝혀지지만 극적인 건 없다. 까맣고 바쁘게 돌아가는 우주만큼 조용하고 또 아득하다.


이 소설은 일종의 종말을 그리고 있지만, 박진감 넘치는 에피소드는 없다. 설리번의 동료인 데비의 죽음도 흘러가듯 진행되니 말이다. 그보다는 고립된 개인의 심리 상태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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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다정한 마야
멀린 페르손 지올리토 지음, 황소연 옮김 / 검은숲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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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이라는 수식어도 타인에 의해 획득할 수 있다. ‘다정한 마야’ 역시 타인이 생각하는 마야의 모습일 뿐이다. 마야는 사람들이 자신을 세바스티안의 여자친구가 아닌, 영약한 부잣집 여자애가 아닌, ‘마야’로 봐주길 바란다. 하지만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마야 역시 무엇이 진짜 ‘마야’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마야의 선택으로 발생한 일일까? 마야는 말한다. 다른 수많은 여자들을 택할 수 있음에도 세바스티안은 자신을 택했다고. 세바스티안이 마야에게 다가가지 않았다면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겠지(세바스티안 탓을 하자는 건 아니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은, 마야는 주체적으로 선택한 사항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세바스티안이 자신을 선택했기에(유치원 때부터) 그와 연애를 하고, 파티에 참가하고, 마약을 하고, 세바스티안을 돌보는 등. 마야는 그저 자신에게 벌어진 일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닌다. 사미르와의 관계도 깔끔하지 못하고.


마야의 행복을 마냥 빌어줄 수 만은 없겠지만 그래도 마야가 죄책감에 잠식되진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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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니의 희귀본과 중고책 서점 - 어느 사이코패스의 사랑
캐럴라인 케프니스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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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드라마로 만든 넷플릭스 오리지널 '너의 모든 것'은 공통된 평을 듣는다. "거기 나오는 사람들 다 이상하다."고. 스토킹을 소재로 한 드라마라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원작 소설을 택배로 받았는데 웬걸. 스토킹을 다루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 할만큼 상큼한 표지와 구구절절한 제목까지. 반신반의하면서 책을 펼쳤다. 그리고 다시 책을 덮을 때까지 마냥 재밌게 읽을 수만은 없었다.


국내에 출간된 게 2015년이니까 원서는 그보다 더 오래 됐을 거다. 그때는 이런 '싸이코패스의 사랑'이 신선한 소재였을 수도 있다. 실제로 사람들은 비틀린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니까(한니발 속 집착을 로맨스로 소비하는 것처럼). 하지만 읽는 내내 마음에 걸렸던 건, 지금은 2020년이라는 거다. 조의 사랑을 정말 '사랑'으로만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소설은 오로지 조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조의 시선으로 벡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본인이 읽으면서 가장 거부감 들었던 건, 처음엔 몹시 거부감 들었던 조의 독백들을 어느 순간부터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거다. 어찌 됐든 완독을 했으니까. 이건 작가의 역량일 수도, 혹은 본인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던 뒤틀린 욕구를 발견한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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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박스
조시 맬러먼 지음, 이경아 옮김 / 검은숲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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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박스』는 익숙한 공간을 떠나 또 다른 '박스'로 들어가는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멜로리는 그런 생각을 한다. 자신의 눈을 가린 안대 밖엔 멜로리가 머무르는 집이 있고, 그 밖엔 또 다른 박스가, 그 밖엔 또 다른 박스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러시아 인형처럼 박스에 갇힌 새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결과적으로 멜로리는 아이 둘과 함께 안전한 박스로 떠난다.


『버드 박스』를 하나의 재난물로 본다면, 자연스레 재난의 원인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봤기에 미쳐버렸나? 무엇이 그들을 파멸로 이끌었나? 소설도 영화도 그 의문에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어쩌면 인간 혼자, 스스로 미쳐버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만 제공할 뿐이다.


400페이지 조금 안 되는 분량이 43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호흡을 아주 잘게 쪼개어 장면들이 전개되기 때문에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말 그대로 책장이 술술 넘어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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