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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에 다리가 하나여도 웃을 수 있다면 - 왜 이리 되는 일이 없나 싶은 당신에게 오스카 와일드의 말 40
박사 지음 / 허밍버드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세상은 늘 자신의 비극을 조롱해왔다. 비극을 견디는 유일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명언이다. 명언 제조기인 오스카 와일드는 '행복한 왕자'라는 소설로 국내에서 유명한 극작가로 금수저로 태어나 유미주의를 철저하게 지향하여 빅토리아 여왕 시대 가장 성공한 사람 중 하나이다.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관종'이라는 단어로 그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화려한 그의 삶은 동성애를 통해 퀸즈베리 사건으로 산산조각이 난다. 어찌보면 오스카 와일드는 비극적인 삶은 살았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치킨에 다리가 하나여도 웃을 수 있다면>은 오스카 와일드의 명언과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되는 일이 없어 힘든 독자들에게, 힘든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차라리 그냥 웃으며 넘기는 것이 좋다 자기자신을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하는 책이다.
나는 웃음의 힘을 믿는다. 웃음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이나 다양하게 빋는다. 호감을 주고받는 환한 미소나 즐거운 폭소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만, 조롱과 비웃음에도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공중에 띄워 올리는 웃음의 힘 덕분에 잘못 앉혔거나 비뚤어진 것을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간다. 불편한 자세에서 몸을 뒤척이듯, 수시로 터져 나오는 웃음은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들었다 놓으며 크든 작든 제 몫을 한다. -p.19
사실 <박사>라는 저자의 이름은 처음 들어봤고 그의 책도 처음 읽어봤다. 작가님에게는 미안하지만 그저 그런 에세이겠거니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게 사실인데, 맛깔난 문체에 글이 아주 잘 읽히고 꽤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성별이 분간 되지 않아 찾아보니 여성분이었다. 작가님 성격이 좋은 것 같고, 또 재밌어서 글도 시원시원하다.
연애뿐인가, 매사가 그렇다. 수많은 불행이 일생 동안 계절풍처럼 불어닥쳤다. 무고하게 휩쓸리기도 했고 어쩔 수 없이 불똥이 튀기도 했다. 다행히도 내 결함 때문에 일어난 불행이든 아니든 모든 불행은 모두 내 밖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상처를 입더라도, 흉터가 남더라도 어쨌든 내 밖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불행의 폭풍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사라진다. 행복이 흘러가 버리듯 불행도 흘러가 버리는 것은 삶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모든 것이 지나가리라. 그 모든 일은 내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눈 꼭 감고 바위처럼 웅크리고 기다리다 보면 대부분의 사건들은 과거의 일이 된다. 시간이란 얼마나 힘이 센지, 아무리 격렬한 고통도 과거의 일로 만들어버린다. - p.97
시간이 빨리 가는 건 인상적인 일이 없어서 그렇대. 늘 그날이 그날 같으면 뇌가 기억할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에 지나치게 된다는 거야. 그러니 기억에 남아있는 게 별로 없고, 시간이 굉장한 속도로 지나갔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지.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라는 교육을 받으며 자라지만, 사실은 행복한 사람이 착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행복해 져야한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되었다. 나 역시 행복한 느낌이 몰려오면 마음이 몰캉몰캉해지면서 순해지고 너그러워 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잘하게 된다. 착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면 오히려 다른 사람의 평가를 위해 자신의 생각을 억누르는 '착한사람 콤플렉스'라는 심리적 콤플렉스가 생길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행복하면 언제까지라도 착하게 살 수 있지만, 착하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 오스카 와일드
살다보면 다가오는 불행에 힘들어하고 그 불행에 얽매여서 고통받기 보다는 담담히 받아들이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최근에 지친 삶을 위로하는 에세이를 많이 읽었는데, <치킨에 다리가 하나여도 웃을 수 있다면> 역시 삶에 지치고 힘들 때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저 힘을 내라고 무책임하게 말하는 다른 에세이에 비해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기 때문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다큐같은 인생을 예능처럼 만들 수는 없겠지만 시궁창 같은 인생을 피식 웃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비극을 조롱하면서, 그 힘으로. 고통을 비웃으면서, 그 힘으로. 그 미약하지만 꾸준히 밀고 나가는 힘으로, 우리는 비극에서 점차 멀어져 간다. 다음 비극을 만날 때까지. -p.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