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두 살 여자, 혼자 살만합니다 - 도시 여자의 리얼 농촌 적응기
가키야 미우 지음, 이소담 옮김 / 지금이책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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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나이 들면 시골가서 농사짓고 살거야.” 아빠가 항상 이런 비슷한 말을 하신다. 농사일은 왠지 도시 생활에 비해 조금 불편하고 몸은 고될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고민없이 마음이 평화로울 것 같은 인식이 있다. 제목만 봤을 때는 마치 에세이 같은 <서른두 살 여자, 혼자 살만합니다>는 일본 소설로 주인공 구미코가 회사에서 정규직 전환을 실패한 날 오랜 기간 동거했던 남자친구 오사무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방황하다 귀농하여 성공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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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원이 편의점 앞에 비닐우산을 진열했다. 한 개에 300엔. 어떻게 고작 300엔에 우산을 팔 수 있을까. 가게 이익이나 운송비나 재료비를 빼면 인건비는 대체 얼마지. 어느 나라의 어떤 공장에서 만들어진걸까. 우산을 보고 있으려니 그것이 마치 저임금에 괴로워하는 패배자의 상징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이 우산은 나 자신이다. 이런 것을 사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빨리 비가 그쳤으면 좋겠다. - p. 23-24

초반에는 오사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구미코가 생각보다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미코가 믿었던 오사무에게 배신을 당하는 장면에서 어이가 없었다. 구미코가 가졌던 오만한 생각들. 자신은 오사무의 결혼요청을 거절하고 쿨하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말하라는 축하해 주겠다는 그 근거 없는 믿음. 상대가 주는 사랑에 익숙해져 상대를 낮게 보는 모습.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이 관계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게 된 오사무는 잘한 건 없지만 잘못이라면 구미코 쪽에 더 무게가 실린다고 생각한다. 저런 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기 때문에 '공기'같이 여기며 철썩 같이 믿었던 연인과의 오랜 관계가 깨져본 경험이 있는 여성이라면 정말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판단을 내리면 오사무와 선을 긋고 지냈던 구미코가 잘 못 행동한 것이지만, 아주 냉정한 오사무의 모습을 보며 화가 난 건 사실이지만 오사무를 나쁘다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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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평등이라는 관념이 없는 편이 오히려 편했다. 그러면 본가가 농가인 남성에게 질투와 열등감이 섞인 감정을 느끼지 않을 텐데. 결혼이 목적이니까 살 집이 있고 농지가 있는 집안에 시집을 갈 수 있으면 원래 기뻐해야 한다. 자신처럼 남성에게도 동등한 경쟁심을 불태우는 여자에게 이 세상은 너무나 살기 어려웠다. – p.223

핑크빛 미래를 그리며 귀농을 결심했지만 인생이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구미코는 농업 교육을 거쳐 본격적으로 농업을 하기 위해 농지를 빌리려고 하는 과정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과거 귀농이 생각보다 쉽지 않으며 시골 텃세가 장난이 아니라서 특히 젊은 사람이 회사를 그만두고 귀농을 하면 대부분이 망하기 십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일본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농지를 빌리려 노력하는 과정에 맞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데 여성에게 씌워진 프레임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게 씁쓸했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여권이 많이 떨어지는 걸로 아는데, 소설에서 그 점에 대해 비판하는 구절들은 일본 역시 여권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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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기 때문에 인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쉽게 결혼으로 도망치지 않았다. 물론 자신의 힘만으로 이루진 않았다.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언젠가 자신도 누군가가 궁지에 몰렸을 때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 p.340

구미코는 결국 여러사람의 도움을 얻어 자신의 밭을 일구고 낡았지만 자신의 집도 마련하게 된다.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채소 또한 파워블로거 미즈키의 도움으로 한동안 승승장구 하겠지. 마지막에 나오는 레스토랑의 남자 또한 앞으로 구미코가 새로운 연애를 하게 될지 모른다고 암시한다. "서른두 살 여자, 혼자 살만합니까?" 라는 질문에 소설은 결국 No라고 대답하지만, 인생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하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힘을 가지게 되는 계기를 준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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