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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 왕의 공부
김태완 지음 / 역사비평사 / 2011년 8월
평점 :
예전 학부 수업때 역사학개론 강의 수업에서 들었던 얘기가 아직도 인상에 깊이 남아 있다.
" 역사란 현재를 딛고 서서 망원경으로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다."
또, 너무나 유명해서 이젠 식상하기 까지 한 E.H.Carr의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들은 나에게 역사공부를 계속하게 만들었고, 지금도 공부함에있어 의지가 흔들릴 때 나를 잡아주는 말이다.
이 시대의 역사를 포함한 인문학은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단순 흥미거리로 치부되고 있다.
서점에는 아주 '섹시한'제목을 단 가벼운 교양서들이 즐비하고, 대형서점을 가도 인문학코너는 너무나 한적하기 그지없다.
지금의 인문학은 대체로 그 분야를 공부하거나 그 분야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겨우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다.
이런 시대에 역사를 공부하게 만드는 힘은, 과거란 것이 그저 흘러간 것이 아니고 현재 내가 살고 있는 터전과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믿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다.
"과거란 기억하는 현재이며, 미래란 바라는 현재이다."
이 말만 들으면 이상하게도 심장이 두근두근대기 시작하는데, 이 책은 바로 위의 구절을 아주 적확하게 글로써 표현하고 있다.
경연은 조선시대 왕을 국가의 가치관과 이상향에 맞는 지도자로써 훈련시키는 시스템인데, 책의 시작은 묘하게도 현재의 대통령들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이름을 감히 언급했다가는 위험해질 수 있는 사람까지 냉철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책의 흐름은 왕의 경연방법과 그를 통해 왕에게 무엇이 요구되었는가를 경연의 구절들을 통해서 밝히고 있는데, 매 장이 끝날 때마다 현재에 대한 비판이 꼭 들어간다.
이로써 조선시대와 현재 사이에는 고속도로가 뚫려 순식간에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합치시킨다.
현대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써 묘한 쾌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한편으로 작가의 안위가 걱정되기도 한다.)
그리고 역시나, 역사공부하기를 잘했다고 느껴지게 만든다. 오랜만에 정말 대박을 만났다.
이 책의 명언은 이 구절이 아닐까?
"조선의 거울은 고려 말기의 정치적 혼란이었다. 지금 시대도 마찬가지로 현 대통령의 거울은 전임 대통령이다. 그런데 왜 역대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전임자가 임기 말에 남긴 오점을 늘 되풀이하는 것일까?"(p.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