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염장이 - 대한민국 장례명장이 어루만진 삶의 끝과 시작
유재철 지음 / 김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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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이다. 죽음앞에서 인간은 겸손할 수 밖에 없다.

부모의 죽음앞에...마지막 고인을 보내드려야만 하는 우리는 함께하지 못했던 많은 후회와 이별의 슬픔에 빠지기도 한다.

누구든 죽음앞에 서면 두려움이 앞선다. 그러나 주검앞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그를 사랑하는 가족들,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친구나 가까운 지인들 정도가 아닐까? 그리고 장례를 이끌어주는 이분들.

장례지도사들은 유족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고인의 이승과의 인연을 깨끗이 정리하고, 유족들이 고인을 마지막으로 잘 배웅하게 안내하는 고귀한 직업인듯...

이 책속에는 장례지도사들의 애환과 그들 손으로 어루만진 수많은 인연들과 가슴짠한 사연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놀란것은 장례명장이신데 삶에 대한 내공이 깊어서인지 글솜씨 또한 명장이다.

아무나 할수없기에 더 아름다운 글귀로 가슴에 와 닿아 잠시 머물다 결국 나의 눈시울까지 붉게 만든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소개한다.


제1부. 수천 가지 죽음의 얼굴

<닮고 싶은 마지막 모습>

고인 중에는 '나의 마지막 모습도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이도 있다.

분홍 치마저고리를 입고 볕이 드는 소파에 누워 있다가 조용히 세상을 뜬 할머니를 염한 적이 있다. 남편이 죽기 전 선물한 분홍 치마저고리는 할머니가 가장 아끼는 옷이었다. 할머니는 자신이 죽을 날을 직감한 듯 어느 날부터 갑자기 곡기를 끊으셨다.

볕 좋은 날 아침, 할머니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시더니 화장실로 들어가셔서 스스로 목욕을 하셨다. 그리고 분홍 치마저고리를 꺼내 입으셨다. 할머니의 아들이 출근하면서,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자, 소파에 앉아 느린 손짓으로 잘 다녀오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따뜻한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소파에 가만히 누워 계셨다.

한 시간 후, 집 안 청소를 마친 며느리가 어머니를 흔들어 깨웠을 땐 이미 세상을 떠나신 뒤였다.

자신의 장례식에 대해 유언을 하거나 글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할머니는 본인의 장례식을 준비하고 계셨던 거다. 할머니의 준비 덕분에 자녀들은 우왕좌왕하지 않고 차분하게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할머니는 마지막 호흡까지도 느끼고 떠나셨으리라. 나도 그렇게 가고 싶다. 숨쉬기 힘들어지면 할머니처럼 목욕재계하고 좋아하는 옷 입고 마지막 호흡을 느끼면서 떠나고 싶다. 44p

<그 사람의 손>

여자 장례지도사들은, 염할 때는 그저 고맙다고 하다가 조문객이 많을 때 음식 나르는 일을 거들면 대놓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종종 만난다. 시신을 만진 손으로 음식을 만지면 어떡하냐고 말이다.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을 더러운 줄 모르고 만지고 사는 건 어느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사람들이 아끼는 돈이, 매일 만지는 스마트폰이 고인보다 더 오염되었을 수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고인을 오염물이라도 되는 양 여기는 건 고약한 편견이다. 장례지도사의 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63p

<그 사람의 발>

어린이 병원에서 짧은 생을 마친 아이들의 장례를 맡아 진행했던 적도 있다. 삶이라는 말에는 늘 고달프다는 수식이 붙기 마련이지만, 보기에 따라 인생은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 아름다운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가냘픈 아이들의 발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무척 쓰렸다. 68p

<그 사람의 입과 귀>

죽은 자의 신체 중 귀가 가장 늦게 닫힌다는 옛말이 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인이 내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웬만하면 시신 앞에서 입을 닫는다.

고인은 살아생전 얼마나 많은 말을 듣고 말하고 살았을까? 고인의 입은 묵언의 평안을 누리는 것처럼 어떤 말에도 입을 꾹 다물고 있다. 하지만 그의 귀는 아직 열려 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가는 길에 힘이 될 따뜻한 말을 기다리며 ···· 76p

<분열에서 통합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에서는 영정에 두르는 검은 띠를 없앤 바 있다. 검은 띠가 우리 전통 방식이 아닐뿐더러, 예법상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상주가 차는 완장을 없애고 싶었다. 전통 상복에는 심장과 가장 가까운 왼쪽 가슴에 '최(衰)'라고 불리는 베 조각이 달려 있다. 거친 베에는 효를 다하지 못한 심정을 담았고, 왼쪽 가슴에 달아 상을 당한 슬픔을 표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을 통해 서양 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새로운 상장(喪章)이 등장하게 되었다. 1912년 쇼켄 황후의 장례를 치를 때 전 국민에게 복장 규정이 고시되었는데, 양복의 경우 왼팔에 검은 천을 두르고, 전통 복식의 경우 왼쪽 가슴에 나비 모양의 검은 리본을 달도록 했다.

그 후 이것이 차츰 일반 장례에도 적용되었고, 1934년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의례준칙에서 공식화되어, 원래 우리의 문화인 양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무비판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이런 장례문화에 나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고, 상복을 입는 의미를 생각할 때 완장보다는 가슴에 다는 베 상장이 더 적합하겠다고 생각했다. 99p

2부. 웰다잉 안내자

<시신이 두려우면 장례지도사가 될 수 없다>

장례지도사는 나에게 돈벌이 정도의 단순한 직업이 아니다. 시신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데다, 염습이나 산소 일을 완벽하게 해냈을 때의 뿌듯함이 돈을 만졌을 때의 만족감보다 크다. 유족이 위로받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장례지도사로서의 이 일은 내 삶의 이유이자 사명이다. 165p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

30여 년 세월을 장례지도사로 일하면서 수천 건의 장례를 치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영혼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고,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죽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다. 다만 죽음을 가까이, 그리고 빈번히 접하는 나로서는 영혼의 존재를 부지기수로 느낀다.

영혼의 무게를 느끼기에 스스로 생을 끊으려는 사람들을 붙잡아주고 싶은 마음도 크다. 한 맺힌 죽음을 위로하는 제사에 더 마음이 쓰이는 이유다. 170p

<한 인생을 두 손으로 보내주는 사람>

나는 1994년 7월부터 석 달 동안 수시로 광주에 내려갔다. 장례 업무와 회계, 회원 관리, 장부 정리 등의 사무 업무는 물론, 고인과 유족을 대하는 마음 자세 등을 배워나갔다.

그때 내 스승이 내게 누누이 강조한 것은 세 가지다.

고인과 유족을 돈으로 보지 말 것, 따로 홍보하지 말고 일 잘해서 입소문이 나게 할 것, 마지막으로 장례 공부를 계속할 것.

진정성과 실력만 있으면 자본 없이도 장의사는 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세 가지 가르침은 현재까지 내 머릿속과 가슴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나의 스승은 몇 년이 지난 뒤, 머리 깎고 스님이 되었다. 그에게 돈이 그렇게 따랐지만, 그는 돈과는 거리가 먼 길을 선택한 것이다. 176p

염습은 절대 천한 일이 아니다. 산파가 한 인생을 두 손으로 받아 줬다면, 염사는 한 인생을 갈무리하여 두 손으로 보내주는 사람이다. 178p

<조문객이 아닌 고인을 중심으로>

장례식장에서 영정 앞에 꽃을 바칠 때 꽃 머리가 어디를 향하는 게 맞을까? 나는 고인을 향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꽃을 바치는 대상은 고인이 아닌가. 장례식의 주인공은 고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1p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지금까지 나와 인연 맺은 영가님들과 그리고 누구인지는 모르나 앞으로 만나게 될 고인을 위하여 향을 피우고 기도를 드린다. 삼십 년간 지속해온 기도는 나를 단단하게 해주었고, 장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192p

<장례식에도 기획이 필요하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장례식을 진행하면서 나는 유족 측에게 애도식을 제안한 바 있다. 발인 전날 저녁, 국민의례와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 보고, 조사, 추도사, 생전 영상, 헌화 및 분향, 헌가, 추모굿 등의 순서로 2시간 가량 진행됐다.

안숙선 명창이 춘향가 중에 <이별가>를, 김영임 명창이 회심곡 가운데 <저승 가는 길>을 부르고, 진도씻김굿 보존회의 추모굿이 이어지면서 애도식은 절정에 다다랐다.

너무도 능숙하고 구성지게 매기고 받는 소리와 조문객들의 추임새, 살긋살긋한 춤사위는 슬픔을 예술로 승화시키기 충분했다. 감정이 서서히 달아올랐다가 들썩들썩했다가 다시 푹 주저 않았다가 끝에는 하나가 되며, 모두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것 같았다. 199p

<염할 때의 금기>

염습과 고인에 대한 인사가 끝나면 가족들과 함께 입관하고 결관을 하는데, 그 후 더 이상 고인의 얼굴을 볼 수 없기에 염습 과정을 지켜보지 못한 유족 중 열에 아홉은 무척 후회하고 애통해한다. 그러니 염습 과정은 처음부터 곡 지켜보시길 202p

"수의에 눈물을 떨구지 마세요"

유족의 눈물이 수의에 묻으면 수의가 무거워 영혼이 떠나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다. 물론 정녕 그렇기야 하겠냐마는 이 말은 남겨진 자를 위한 말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슬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이는 몸이 상하기도 한다. 눈물이 수의에 묻지 않게 하는 것은 유족을 보호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204p

<이유를 찾는 사람들, 이유를 덮는 사람들>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사는 것만 복인 줄 알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모을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누릴까'를 고민한다. 물론 이것도 복이지만 잘 떠나는 것도 큰 복이다.

편안히 죽음을 맞는 것, 많은 이의 애도 속에서 세상을 떠나는 것, 물 흐르듯 순탄하게 장례를 마치는 것도 그 사람의 복이다.

<죽음을 늦추는 사람들>

유교의 5대 경전인 ≪서경≫에는 오복이 나온다.

첫 번째 수(壽)는 천수를 누리는 복을 말하고,

두 번째 부(富)는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풍요를 누리는 복을 말하며,

세 번째 강령(康寧)은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편안하게 사는 복을 말하며,

네 번째 유호덕(攸好德)은 남에게 많은 것을 베풀고 선행과 덕을 쌓는 복을 말하며,

다섯 번째 고종명(考終命)은 일생을 평안하게 살다가 천명을 마치는 복을 말한다.

그중 천수를 다하고 집에서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 곁에서 숨을 거두는 고종명이 가장 큰 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232p

<나의 장례식>

임종한 후에는 남은 가족이 나를 떠올리며 작은 애도식을 열어주길 바란다. 삼일장이니 오일장이니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가까운 사람들이 모이기 편한 저녁에 한두 시간, 내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기억되는지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고 힘을 얻길 바란다.

시나 내가 즐겨 부르던 이장희 노래들을 곁들이면 더 좋을 것 같다. 문학과 예술은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 도움을 주니까. 그렇게 애도하는 것으로 남은 가족과 지인들이 위로를 받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아빠, 든든한 남편, 자랑스러운 형제, 멋진 선배로 남은 것이 살아 있는 동안 내게 남겨진 숙제일 것이다. 241p

<죽음의 문턱에서>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인생인데 우리는 '내일'이 당연할 줄 알고 살아간다.

후회 없이 산 인생이 잘 산 인생이라는데, 우리는 매일 후회할 일을 하며 산다. 죽기 전에는 후회할 일을 청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죽음의 기로에 서보니, 매일 후회할 일을 반성하지 않으면 죽기 전에 그 일을 청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교만했구나! 내가 어리석었구나!'

지금도 드문드문 떠오르는 교통사고가 난 그날의 기억에서 나를 살린 영가님들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하루하루 바쁘게 달려가느라 차마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하려고, 아직은 들어올 때가 아니라고 나를 들어 차 밖으로 던진 것이리라. 깨닫기 전에는 죽지 않게 하려고 나를 돌본 것이리다. 250p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 하네>

무한한 시간 여행을 떠나는 망자 앞에서 입관, 하관 시간을 가지고 다투는 사람들도 있었다. 풍수가와 마을 지관이 고인의 임종 시간과 장남의 사주 등을 따져 입관과 하관 시간을 정하는 문제로 서로 언성을 높이며 다툰 일도 있었다. 그 와중에도 고인은 말이 없다.

종교든 사주명리든 또 미신이든, 그것 자체에 얽매여 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옹 선사의 선시가 떠오른다.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 하네 <끝>


※ 본 서평은 도서 협찬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202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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