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이 두려우면 장례지도사가 될 수 없다>
장례지도사는 나에게 돈벌이 정도의 단순한 직업이 아니다. 시신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데다, 염습이나 산소 일을 완벽하게 해냈을 때의 뿌듯함이 돈을 만졌을 때의 만족감보다 크다. 유족이 위로받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장례지도사로서의 이 일은 내 삶의 이유이자 사명이다. 165p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
30여 년 세월을 장례지도사로 일하면서 수천 건의 장례를 치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영혼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고,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죽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다. 다만 죽음을 가까이, 그리고 빈번히 접하는 나로서는 영혼의 존재를 부지기수로 느낀다.
영혼의 무게를 느끼기에 스스로 생을 끊으려는 사람들을 붙잡아주고 싶은 마음도 크다. 한 맺힌 죽음을 위로하는 제사에 더 마음이 쓰이는 이유다. 170p
<한 인생을 두 손으로 보내주는 사람>
나는 1994년 7월부터 석 달 동안 수시로 광주에 내려갔다. 장례 업무와 회계, 회원 관리, 장부 정리 등의 사무 업무는 물론, 고인과 유족을 대하는 마음 자세 등을 배워나갔다.
그때 내 스승이 내게 누누이 강조한 것은 세 가지다.
고인과 유족을 돈으로 보지 말 것, 따로 홍보하지 말고 일 잘해서 입소문이 나게 할 것, 마지막으로 장례 공부를 계속할 것.
진정성과 실력만 있으면 자본 없이도 장의사는 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세 가지 가르침은 현재까지 내 머릿속과 가슴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나의 스승은 몇 년이 지난 뒤, 머리 깎고 스님이 되었다. 그에게 돈이 그렇게 따랐지만, 그는 돈과는 거리가 먼 길을 선택한 것이다. 176p
염습은 절대 천한 일이 아니다. 산파가 한 인생을 두 손으로 받아 줬다면, 염사는 한 인생을 갈무리하여 두 손으로 보내주는 사람이다. 178p
<조문객이 아닌 고인을 중심으로>
장례식장에서 영정 앞에 꽃을 바칠 때 꽃 머리가 어디를 향하는 게 맞을까? 나는 고인을 향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꽃을 바치는 대상은 고인이 아닌가. 장례식의 주인공은 고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1p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지금까지 나와 인연 맺은 영가님들과 그리고 누구인지는 모르나 앞으로 만나게 될 고인을 위하여 향을 피우고 기도를 드린다. 삼십 년간 지속해온 기도는 나를 단단하게 해주었고, 장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192p
<장례식에도 기획이 필요하다>
우봉 이매방 선생님의 장례식을 진행하면서 나는 유족 측에게 애도식을 제안한 바 있다. 발인 전날 저녁, 국민의례와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 보고, 조사, 추도사, 생전 영상, 헌화 및 분향, 헌가, 추모굿 등의 순서로 2시간 가량 진행됐다.
안숙선 명창이 춘향가 중에 <이별가>를, 김영임 명창이 회심곡 가운데 <저승 가는 길>을 부르고, 진도씻김굿 보존회의 추모굿이 이어지면서 애도식은 절정에 다다랐다.
너무도 능숙하고 구성지게 매기고 받는 소리와 조문객들의 추임새, 살긋살긋한 춤사위는 슬픔을 예술로 승화시키기 충분했다. 감정이 서서히 달아올랐다가 들썩들썩했다가 다시 푹 주저 않았다가 끝에는 하나가 되며, 모두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것 같았다. 199p
<염할 때의 금기>
염습과 고인에 대한 인사가 끝나면 가족들과 함께 입관하고 결관을 하는데, 그 후 더 이상 고인의 얼굴을 볼 수 없기에 염습 과정을 지켜보지 못한 유족 중 열에 아홉은 무척 후회하고 애통해한다. 그러니 염습 과정은 처음부터 곡 지켜보시길 202p
"수의에 눈물을 떨구지 마세요"
유족의 눈물이 수의에 묻으면 수의가 무거워 영혼이 떠나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다. 물론 정녕 그렇기야 하겠냐마는 이 말은 남겨진 자를 위한 말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슬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이는 몸이 상하기도 한다. 눈물이 수의에 묻지 않게 하는 것은 유족을 보호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204p
<이유를 찾는 사람들, 이유를 덮는 사람들>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사는 것만 복인 줄 알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모을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누릴까'를 고민한다. 물론 이것도 복이지만 잘 떠나는 것도 큰 복이다.
편안히 죽음을 맞는 것, 많은 이의 애도 속에서 세상을 떠나는 것, 물 흐르듯 순탄하게 장례를 마치는 것도 그 사람의 복이다.
<죽음을 늦추는 사람들>
유교의 5대 경전인 ≪서경≫에는 오복이 나온다.
첫 번째 수(壽)는 천수를 누리는 복을 말하고,
두 번째 부(富)는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풍요를 누리는 복을 말하며,
세 번째 강령(康寧)은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편안하게 사는 복을 말하며,
네 번째 유호덕(攸好德)은 남에게 많은 것을 베풀고 선행과 덕을 쌓는 복을 말하며,
다섯 번째 고종명(考終命)은 일생을 평안하게 살다가 천명을 마치는 복을 말한다.
그중 천수를 다하고 집에서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 곁에서 숨을 거두는 고종명이 가장 큰 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232p
<나의 장례식>
임종한 후에는 남은 가족이 나를 떠올리며 작은 애도식을 열어주길 바란다. 삼일장이니 오일장이니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가까운 사람들이 모이기 편한 저녁에 한두 시간, 내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기억되는지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고 힘을 얻길 바란다.
시나 내가 즐겨 부르던 이장희 노래들을 곁들이면 더 좋을 것 같다. 문학과 예술은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 도움을 주니까. 그렇게 애도하는 것으로 남은 가족과 지인들이 위로를 받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아빠, 든든한 남편, 자랑스러운 형제, 멋진 선배로 남은 것이 살아 있는 동안 내게 남겨진 숙제일 것이다. 241p
<죽음의 문턱에서>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인생인데 우리는 '내일'이 당연할 줄 알고 살아간다.
후회 없이 산 인생이 잘 산 인생이라는데, 우리는 매일 후회할 일을 하며 산다. 죽기 전에는 후회할 일을 청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죽음의 기로에 서보니, 매일 후회할 일을 반성하지 않으면 죽기 전에 그 일을 청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교만했구나! 내가 어리석었구나!'
지금도 드문드문 떠오르는 교통사고가 난 그날의 기억에서 나를 살린 영가님들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하루하루 바쁘게 달려가느라 차마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하려고, 아직은 들어올 때가 아니라고 나를 들어 차 밖으로 던진 것이리라. 깨닫기 전에는 죽지 않게 하려고 나를 돌본 것이리다. 250p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 하네>
무한한 시간 여행을 떠나는 망자 앞에서 입관, 하관 시간을 가지고 다투는 사람들도 있었다. 풍수가와 마을 지관이 고인의 임종 시간과 장남의 사주 등을 따져 입관과 하관 시간을 정하는 문제로 서로 언성을 높이며 다툰 일도 있었다. 그 와중에도 고인은 말이 없다.
종교든 사주명리든 또 미신이든, 그것 자체에 얽매여 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옹 선사의 선시가 떠오른다.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 하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