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신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에릭 와이너 지음, 김승욱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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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저자, 에릭 와이너. 어느 날 삶의 빈 구석을 신이 필요한 자리라고 여기면서 8개의 종교를 찾아, '믿을 수 있을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신대?"라고 묻는 네 살짜리 딸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병원에서 한 간호사의 "자신만의 신을 찾으셨나요?"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이 과정이 너무 진지하고, 또 진지한 만큼 '우당탕탕'스러워서 안쓰러우면서도 유쾌했다.

(실제로 읽다보면, 문체에서 저자의 생각과 질문의 흐름들이 유쾌하고, 속도감있게 그려져서 흥미진진하다.)


특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중에 자신에게 고착화되는 우울감을 떼어내고 싶어했다. 수많은 종교 탐색에까지 이르른 동기의 일부는 이것이었고, 자신을 '불가지론자'도 아닌, '혼란주의자'로 먼저 명명한다. 그리고선 책을 통해 전세계에 존재하면서 현재 알아볼 수 있는 종교들 중에 자신의 기준에 맞는 종교 8개를 추리게 된다. (어떤 기준으로 종교를 골랐는지는 알 수 없었다. 유대교는 있었지만 기독교/개신교는 없었고, 그 기준을 알았다면 저자의 종교 탐색 여행이 좀더 흥미로웠을 것 같다.)


나는 합리주의자다.

나는 이성과 그 자손인 과학이 훌륭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성만으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내가 아는 한, 이성의 힘만으로 순수한 지복의 상태에 이른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다.

이성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뛰어난 도구지만,

어떤 문제를 왜 풀어야 하는지 알아내는 데는 그다지 길잡이가 되어주지 못한다.

이성은 뛰어난 하인이지만, 주인이 되기에는 형편없다. p.15

 

종교와 인간과의 관계를 정의하는 문장들이 평소 생각하던 바와 같은 내용이었다.


사랑을 위한 구애와 신을 향한 구애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용기가 필요하고,

실망스러운 일을 잘 견뎌내는 능력과 눈먼 행운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도 필요하다.

세상에는 영적인 상성이라는 것이 있다. p.22

  

에릭 와이너가 고른 종교는 총 8가지.

많고 많은 종교중에서 추린 거지만, 그냥 보통의 사람들에게 8개 종류의 종교란 꽤나 많은 수다.

나같은 경우에는 불교와 개신교, 가톨릭교는 가족들과 주변인의 영향으로

어디서 생겼고, 어떤 교리를 가지고 있고, 어떤 실천을 하려고 하는지,

어떤 권위를 어떻게 나누어가지고 있으며 무슨 가치를 지향하는지에 대해서 대략적인 그림이 있지만,

이슬람교와 연관된 수피즘이라든가, 어떤 사상으로만 알고 있는 도교라든가,

마법과 관련된 위카는 참 낯설고.


릴케가 옳았다. 신은 방향이다. (...) 무신론자들은 애당초 신호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독실한 사람들과 혼란에 빠진 사람들은 계속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탐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505

 


종교는 잘해봤자 우리가 세 가지 질문과 씨름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

답까지 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세 가지 질문이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다.

이렇게 보면 종교는 일종의 응용 철학이다. 아니면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말처럼 “사람이 고독해서 하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딱 맞는’ 종교를 고르는 일을 더욱더 시급하게 만드는 것 같다. p.26

 

결과적으로 저자는 말 그대로 자신 만의 신을 '만들어버렸다'.


내가 조립의 기반으로 삼은 것은 유대교이지만, 지지대는 불교다. 이 신은 수피즘의 심장, 도교의 소박함, 프란체스코회의 너그러움, 라엘교의 쾌락주의를 갖고 있다. 오랫동안 나는 이렇게 신을 조합하는 것이 가능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p.508

 

이 문장만 본다면 사실 "어떻게 다 섞어버린 종교를 만들었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종교 간에는 타이틀을 빼고서 보면, 서로 닮은 모습과 방법도 존재한다.

그걸 알아가는 것도 이 탐색기의 묘미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결코 자신의 과거에서 완전히 도망칠 수 없으며,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우리가 과거의 지혜를 한 모금씩 마시면서 그들의 진리를 빨아들이더라도 그들은 언제나 '타자'로 남아있을 것이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은 이 지혜의 조각들이 우리 골수로 스며드는 것이다. p.507

 


그의 진심을 담은 여행기를 보면서, 나의 종교 여행기도 기억 속에서 길어올려졌다.

내 인생에서 절반 정도, 꽤 오랜 시간동안 이뤄져온 일이기에 끈덕지게 켜켜이 쌓인 나만의 '믿음의 모양'을 건져냈다.


나는 주변에서 접했기에, 긍정적인 영향으로 특히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매력적이었기에

여러 약점들과, 단점, 의문에도 불구하고 선택했고,

버리지 않고 순간 순간 선택해온 나의 종교에 대해서

믿고 있고 찾고 있고 고민하고 질문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내 삶에 더 이상 다른 종교가 비집고 들어올 자리가 없을 거라는 마음도 확인했다.


만약에, 에릭 와이너처럼 나만의 신을 만들 수 있다면,

을 원한다.

그런데, 이번 생에 그런 신을 만날 수 있을지? 


에릭 와이너의 말처럼, 그저 나는 나만의 답을 찾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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