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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 - 영혼의 손길 ㅣ 현대 예술의 거장
제임스 로드 지음, 신길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6월
평점 :
탐구와 질문, 작품과 답...그 과정을 엿본 시간
자코메티의 작품은 몇년 전 예술의 전당에 들어온 전시 때문에 처음 보게 되었다. 어디론가 걸어가는 사람,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어떤 속도로 가는지도 모르지만 걷는 행위만 조각된 조각상을 한참 봤었다. 걷는 행위는 세상이 어떻게 생겼든지간에 각자에게, 사람에게 중요한 화두였겠구나 생각하곤 세상에 있는 것들은 모두 주변 풍경이 된다. 걷는다는 행위 외엔 무엇도 담기지 않은 듯한 그 작품 속에 잠겼던 시간이 있었다. 북유럽 여행을 가서 방문한 루이지애나 미술관에 그의 작품이 있었기 때문에 방문하기도 했었다. 원본을 봤다는 뿌듯함도 남겼고. 특별히 피카소가 라이벌이라고 언급했다던데, 피카소의 업적과 다양한 작품활동과 그의 삶에는 별다른 매력을 느낄 수 없었지만 자코메티는 예술가로서도 한 사람으로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작가였다.
어떤 시간이 작품을 향한 그의 예술성을 만들고 충동을 다듬어주고 정제된 작품을 낳게 해주었는지 <자코메티: 영혼의 손길>은 자코메티가 태어나기전 조부모들의 이야기, 그의 아주 어린시절부터의 이야기를 연대기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한다. 수십년간 그와의 대화를 나눈 작가가 재구성하긴 했지만 예술적 충동의 처음을 보여주면서부터 대중이 알고 있는 작품의 정수에 이르기까지 아주 세세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그의 미적 세계가 성장하면서 겪은 충격을 공감할 수 있을 것처럼 몰입해 따라가게 된다. 어린 시절 몽상가였던 그가 성장해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면 사르트르,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와 같은 거장들과도 만난다.
"우리가 그를 단편적으로만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초현실주의 진영에서의 활동과 그때 만난 브레송과의 우정, 대표적인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 및 소설가 카뮈와의 관계, 모델을 서기도 하고 그 경험을 뛰어난 예술로 만들어 낸 작품인 <아틀리에의 자코메티>를 쓴 장 주네 등과 관련지어 만들어진 자료들은 단편적일 뿐만 아니라 그 관점조차 조금씩, 그리고 상당히 다르다. 바로 이런 점이 자코메티에 대한 선명한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_옮긴이의 말에서
자코메티의 작품과 생에 호기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800페이지에 이르는 두꺼운 이 책이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다. (너무 두꺼워서 매우 쫄았으나...) 사실 과거의 인물을 조명하는 전기는 내가 찾지 않는 장르중 하나다. 지금, 오늘, 여기 현실에 드러나는 것만큼 치열한 드라마도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속에서, 매일같이 일어나는 사건과 현상들 속에서 나의 생각과 감정을 발견하기에 바빴는데 끊임없는 예술적인 탐구로 자신의 생을 채운 이야기에 잠겨보았다. 나의 연대기도 그려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술가가 아닌 삶을 산다. 평생에 걸쳐 어떤 걸작을 만들어내는 경험이 일반적으로 있기는 힘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삶도 누군가에게 걸작이라면 걸작이지만 세간의 조명이 향하지도 않고 이렇다할 정답도 없고 사실 쥐고나면 허무한 것도 많다고 생각이 든다. 평범한 사람의 분투하는 인생이란 어떤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습작을 하는 과정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더 앞선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많이 해왔는데, 어쩌면 천재 예술가의 삶과 동일선상에 둘 수는 없지만, 나도 작품 하나 하나를 빚어내듯 고뇌하고 떄로는 많은 것들을 덜어내고, 결국 하나의 정제된 작품처럼 작은 울림이라도 남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감히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