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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왈츠 ㅣ 밀란 쿤데라 전집 4
밀란 쿤데라 지음, 권은미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신 중심 사회에서 인간 중심사회로의 이행. 사람들은 이성의 가치를 신의 가치보다 우선시 했고 ‘절대’보다 ‘상대’의 관점을 맹신하게 되었다. 특히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이성에 대한 인간의 신뢰는 신을 대체할 수준이 되었고, 철학자들은 이성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해보려는 시도를 시작으로 결국 현실세계에서 그 존재를 밀어내 버린다.
신이 없는 사회.
인간의 이성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
하지만 인간은 너무나 불완전하고, 불안전하며, 연약한 존재이다. 개인이 우주의 중심으로 우뚝 선 현실에서 타인의 존재는 무시되고 짓밟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렇게 자신이 우주의 제왕으로 살고자 하면 할수록, 자신을 위한 자유를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고립되어지는 미약한 한 객체를 발견하게 될 뿐이다.
이렇듯 모든 개인은 자신만의 ‘철창’에 갇혀 있다. 자신의 존재를 현실에서 찾지 못하고 방황하기에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관계가 없다. 욕망, 질투, 성, 사랑, 정의, 혁명, 생명이든, 죽음이든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전 존재를 내맡기게 된다. 결과는 묻지 않는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스스로가 실존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별의 왈츠>에서는 이처럼 자신만의 방법으로 구원을 갈망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름다지만 삶의 한계가 예견되는 온천 도시에서 삶의 탈출구를 찾고자 했던 루제나.
욕망과 사랑의 경계를 구분 짓지 못하고 아름다운 부인을 곁에 두고도 끊임없이 외도를 통해 스스로를 발견하려고 했던 클리마.
남편의 외도를 지켜보며 자신의 타고난 아름다움을 잊고, 오직 그 불타는 질투심이 인생의 모든 것인 듯 남편에게 집중했던 카밀라.
루제나를 향한 사랑이 존재를 증명하듯 사랑이라는 이름의 집착에 빠져있던 프란티세크.
불임한 여성들을 치료하며 전 인류가 형제로 하나가 되기를 꿈꾸던 실천적 몽상가 슈크레타.
정치혁명에 가담해 정의, 사상을 추구하며 그 가운데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이 땅에서의 생명을 독약 한 알에 의지하고, 목숨을 주관하고자 했던 야쿠프.
마치 아버지를 대신해 자신을 대하는 야쿠프의 역할옷을 벗겨버리고 그 가운데 해방감을 누리고자 했던올가.
진실한 사랑. 호의가 구원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던, 하지만 그 사랑과 호의가 인간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탈을 쓰고 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었던 베르틀레프.
작은 온천 도시 안에서 등장인물들의 존재와 삶이 얽히고 얽혀 인간 실존의 문제를 독자로 하여금 고민하게 만든다. <이별의 왈츠>에서는 한편으로 인간의 삶과 존재는 너무 무겁고 웅장하게 느껴지는가 하면 한 사람의 죽음조차 누군가에게는 웃음으로 반응하게 만드는, 저자의 또 다른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처럼, 인간의 존재가 참을 수 없으리 만치 허망하고 가볍게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사람은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한다. 각자는 자신만의 철창에 갇혀 있으며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참으로’ 살고자 한다. 하지만 세상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참된 삶은 누구도 그것이 참되다고 말하지 않는다. 스스로가 판단해야 할 뿐이다. 그런 사실들이 우리내 인생을 더욱 슬프고 고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은 다시한번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과연,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