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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최장집 지음 / 폴리테이아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전후 60년의 기간 동안 기적 같은 발전을 이루어낸 대한민국.
단기간 경제대국을 이뤄낸 나라라는 찬사가 이어지고 개발도상국들의 경제개발모델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경제성장에 치우친 나머지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눈부신 경제발전의 이면에는 성장의 빛에 가려 그늘진 곳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가냘픈 목소리가 여전히 허공을 메운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에서는 민주화 운동이후 집권한 정치인들이 노동자들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효성이 없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최장집 교수의 강연과 신문사 기고 글을 정리해 이야기하고 있다.
열 명의 대통령이 국민을 대표해 나라를 다스렸고, 18대 총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
민주주의는 어떤 방향으로 진보해 가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해 어떤 진보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노동문제에 관해선 역대 정부가 모두 ‘실패’했다고 말한다.
“나는 한국 민주주의가 이렇게까지 나빠진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와 사회운동이 학생운동 출신 엘리트들에 의해 지배된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한국 민주화에서 학생운동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들이 그 뒤 정치인이 되고 진보 정당을 하고 사회운동을 주도한 것이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에게 어떤 실체적 혜택을 주었고, 이들을 위한 정치의 세계를 확장하는 데 무엇을 기여했는가를 묻고 싶은 것이다.” 22쪽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저자는 이에 대해 부정적이다. 학생운동의 역사적 역할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어야 했다고 말한다. 실제 현실의 삶과 유리된 조건 아래에서 이념적으로만 과잉된 사고방식을 낳게 되었고 도덕적 우월 의식을 품은 체 시간이 지속될수록 부정적인 효과를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의 의견에 깊은 동의와 깨달음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 운동과 노동운동이 한 번도 결합될 수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 면에서 의식과 행동은 밀접히 연관되었을 때 커다란 파급력을 지닌 결과를 이뤄낼 수 있지만 각각의 목표를 쫓아 행동했을 때 알맹이 없는 껍질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책은 일용직 노동자, 현대차 노조, 장위동 봉제 공장의 노동자들, 자활센터, 재래시장, 농민, 청년, 이주 노동자, 신용불량자를 저자가 직접만나 인터뷰하고 이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안전망 부재와 정부가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원인에 대해 통찰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책의 끝부분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지향해야 할 점에 대해서 노학자의 주장은 더욱 힘있게 다가온다.
노동자 없는 민주주의. 이것은 실체 없는 사상적 유희를 목적으로 할 뿐이다. 책의 중간에 삽입 된 베르돌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의 일부 내용은 한국 민주주의가 지향해야 할 고민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말해주는 듯하다.
“성문이 일곱 개나 되는 테베를 누가 건설했던가?
책 속에는 왕의 이름들만 나와 있다.
왕들이 손수 돌덩이를 운반해 왔을까?
그리고 몇 차례나 파괴되었던 바빌론
그때마다 그 도시를 누가 재건했던가? 황금빛 찬란한
리마에서 건축 노동자들은 어떤 집에 살았던가?
만리장성이 준공된 날 밤에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던가? 위대한 로마제국에는
개선문들이 참으로 많다. 누가 그것들을 세웠던가? 로마의 황제들은
누구를 정복하고 승리를 거두었던가?
...
역사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승리가 나온다.
승리의 향연은 누가 차렸던가?
10년마다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
거기에 드는 돈은 누가 냈던가?
그 많은 사실들,
그 많은 의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