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을 희망의 이름으로 기억하리라 - KTX 여승무원 문집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 엮음 / 갈무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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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적 '서비스 정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그대들을 희망의 이름으로 기억하리라』_서평


조정환(문학평론가. 『아우또노미아』저자)


시속 300킬로미터로 달리는 꿈의 기계 KTX. 그것이 천성산 도롱뇽의 서식지를 파괴한다는 사실은 지율 스님의 오래 지속된 투쟁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경제보호를 위해서는 동물학대가 불가피하다는 논리에 따라 천성산은 직선으로 굴착되기 시작했다. KTX는 도롱뇽을 비롯한 뭇 생명을 죽이고 위험에 빠트리면서 제 몸집을 불린다. 그런데 그것뿐인가? 2006년 3월 1일 파업에 돌입하여 국회, 강금실 선본, 오세훈 선본, 인권위원회 등을 점거하여 농성하고 또 강제 해산되면서 두 계절을 넘기고도 지속되고 있는 KTX여승무원들의 투쟁은 KTX의 또 다른 얼굴을 널리 보여준다. KTX의 꿈의 이미지 뒤에 여성승무원들의 젊은 피를 빨아먹는 인간 학대행위가 있다는 것.


『그대들을 희망의 이름으로 기억하리라』(철도노조KTX열차승무지부 지음, 갈무리, 2006)는 꿈에 부푼 승무원 합격 이후 홍익회 배치, 휴무 박탈과 장시간 노동, 맨손 화장실 청소, 항의에 대한 협박과 폭언 등으로 '꿈의 속도인 시속 3백 킬로미터'로 추락한 여승무원들이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또 그것을 4개월 이상, 아니 승리의 그날까지 지속할 수밖에 없는 까닭에 대한 내면적 기록이다. 이 책은, 파업이, 살 속을 파고드는 냉기를 참아야 하고 경찰의 폭행과 폭언과 대면해야 하며 딸을 염려하여 파업을 그만 둘 것을 주문하는 부모의 설득을 극복해야 하고 시민들의, 심지어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냉담으로 인한 고독과 위축을 이겨내야 하며 연행과 구금의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시간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파업하는 사람에게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까지 극복해야 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를 던짐으로써 순간순간 좌절과 배신의 벼랑 앞에 서게 만드는 시간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 글들은 이 어려움들이 고독 속에서 싸우는 여승무원들에 의해 어떻게 극복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무엇이 파업, 해고, 농성, 연행, 투옥의 고통으로 점철되는 이 투쟁과정 속에서 여승무원들을 버티게 하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자신의 옆에서 함께 싸우는 동료들과 하나됨의 환희이다. 서로가 동료에서 동지로 변하는 과정에서 여승무원들은 커다란 힘을 얻으며 흩어져 있는 개인들일 때와는 전혀 다른 힘이 되어 전진한다. 또 하나는 투쟁과정에서 얻는 깨달음과 그 기쁨이다. '경험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체험만큼 값진 교훈이 없다'(38)고 쓰고 있듯이 여승무원들은 파업투쟁 이전에 사회운동에 무관심했던 자신들을 뼈저리게 반성하면서 각성한 노동자로, 진정한 서비스 인간('service oriented mind'(99))으로 다시 태어나는 기쁨을 느낀다. 이리하여 여승무원들은 위로부터 부과되는 경쟁적 협동(홍익회의 '유능한 판매사원')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이루어나가는 소통적 협동의 가능성을 발견해 나간다. 그것은 강철보다 부드러우면서도 그것보다 훨씬 더 강한 인간으로 단련되는 과정이 아닐까?


이 책의 소통적 서비스 정신은 여승무원들 사이에만 제한되어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것은 한 편 한 편의 글을 그림으로 압축하고 형상화한 만화이다. 노동만화네트워크의 삽화는 여승무원들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숨결을 포착하여 우리에게 한 눈에 제시한다. 그것은 여승무원들의 당황, 두려움, 슬픔, 외로움, 분노, 결단, 사랑, 열정, 기쁨, 희망 등 마음의 표정에 대한 세밀화(細密畵)이다. 또 민족문학작가회의에 소속된 노동시인들은 한편에서는 투쟁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표명하고 이들의 투쟁에 냉담한 정규직 조직노동자들과 남성 노동자들을 질타하며 파업투쟁 깊이에서 흐르는 새로운 삶의 잠재력을 노래한다. 이리하여 파업에 나선 여승무원들이 쓴 37편의 글과 노동시인들이 쓴 12편의 시는 파업농성장을 벗어나 우리 사회 곳곳에 유통될 이 '쓰고-읽기의 광장'에서 다시 만난다. 이 소통의 흐름은 KTX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에 대한 꿈을, 그들의 분노와 사랑과 희망을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으로 전달할 것이고 그곳에 풍성한 연대감의 텃밭을 일굴 것이다. 지금까지 공권력은 여승무원들을 강제 연행함으로써 파업과 농성을 깨는 데 솜씨를 보여 왔다. 그러나 이 책은 투쟁이 공권력의 포위망을 넘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의 뚜렷한 증거이다. 이제 투쟁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파업하는 승무원들의 수보다 몇 십 배 더 많은 『그대들을 희망의 이름으로 기억하리라』전권을, 그리고 그것을 읽으며 그 투쟁에 연결될 수 천 만의 두뇌들과 가슴들을 연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KTX 여승무원 직접고용'은 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일에 비하면 너무 쉽고 또 즉각 가능한 일이지 않은가! 한국철도공사는 KTX 여승무원들의 정리해고를 철회하고 즉각 직접 고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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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1 11: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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