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로맨스
앤 래드클리프 지음, 장용준 옮김 / 고딕서가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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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녁이 저문다! 그 시름에 잠긴 발길이 물러나고
밤이 이슬을 몰고 환영의 시각을 알린다
화려하게 불타는 별들이 수놓는 장엄한 광경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상상력의 현현
밤은 무상하게 변하는 형상들로 잠의 꿈을 물들이고
깨어 있는 영혼을 기분 좋은 공포로 고양시킨다
밤은 무시무시한 형상이 어둠을 뚫고 휩쓸어 지나게 하며
죽은 자의 소름 끼치는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장엄한 생각의 여왕-신비로운 밤이여!
그 발걸음은 어둠이고 그 목소리는 공포이니!
그대가 드리우는 어둠을 맹렬한 기쁨으로 나는 환영하고
그대가 부는 허허로운 바람, 그 황량한 한숨 소리를 맞이하네!
그대가 구름에 싸고 돌풍에 얹은
폭풍을 연안으로 감아 던질 때
포효하는 파도가 바술 듯 바위를 때리며
성난 비명을 지르는 게 내 마음을 사로잡아. - P135

밤이여, 나는 그대의 부드러운 공포를 갈구하네
그대의 조용한 번개, 그대의 유성流星 불
둥근 하늘 천장의 뜨거운 공기를 비추는
그대의 새빨간 핏빛 북방의 불
그러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건, 그대의 투명한 마차가
솜털구름 사이로 떨리는 섬광을 내려 보내는 것,
그리하여 아득히 먼 안개에 쌓인 산을 보여주는 것
더 가까이로 숲과 계곡의 여울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아래 골짜기의 수많은 물질
생각에 잠긴 눈에 희미하게 떠올라
공상의 손길을 타고 환상적인 광경을 이루어
낭만적인 환영幻影으로 넘실대네.
그대의 심오한 어둠에 내가 들어가게 해다오
가파르고 무성한 숲 언덕에 서서 애처로운 선율로
위로 오르다가 머나먼 나무숲에서 희미하게
잠드는 바람 소리를 듣는다네.
우울은 주문呪文처럼 마음을 사로잡네!
부상하는 황홀경에 신성한 눈물이 인사하네!
바람을 타고 오는 수많은 눈먼 영혼들이 - P136

고적한 시각에 달콤한 소리로 한숨을 보내네!
아! 소중한 환영을 맛본 사람들은 보리라
공상이 침묵과 어둠에서 깨어나면
진실의 온전한 형상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낮의 밝은 눈이 스미는 모든 장면이 살아나는 것을!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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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로맨스
앤 래드클리프 지음, 장용준 옮김 / 고딕서가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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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을 향해 다가가자 폐허처럼 보이는 고딕 양식의 수도원이 보였다. 건물은 거친 풀밭 위에 서 있었고 드높게 멀리 퍼진 나무 그늘에 덮여 있었다. 건물만큼이나 오래되어 보이는 나무들은 사방에 낭만적이고 우울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건물의 대부분이 폐허로 허물어 있었고 세월이 휘두르는 칼날을 견뎌낸 부분은 으스스하게 쇠락해가는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담쟁이덩굴이 빼곡하게 감싸고 있는 드높은 흉벽은 반쯤 무너져 내린 채로 작은 새들의 둥지가 되어 있었다. - P29

문은 걸쇠 하나로 고정되어 있었는데, 걸쇠를 풀고 몇계단 내려가니 다른 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즉시 꿈이 떠올랐다. 이 방은 꿈속에서 죽어가던 기사가 누워 있던 방과 같지 않았다. 그러나 꿈속에 지나쳤던 어떤 방을 떠오르게 해 혼란스러웠다. 등불을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건물의 오래된 부분임을 알 수 있었다. 바닥에서 높은 곳에 자리한 깨진 창이 유일하게 빛을 들이는 통로가 되고 있었다. 방의 반대편에 문이 하나 보였다. 그녀는 조금 망설인 끝에 그곳으로 다가갔다. "이 방들에 미스터리가 있어. 어쩌면 그것을 푸는 게 나의 운명인지도 모르겠어. 적어도 이 문이 어디로 이끄는지 확인해야겠어." - P184

그러나 그 방으로 돌아오기 전에 구름이 달을 뒤덮고 말았다. 그러자 바깥이 온통 어두워졌다. 가만히 서서 빛이 다시 들기 기다렸으나 어둠은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등불을 가지러 다시 천천히 걸어갔다. 그때 발에 무언가 걸려 휘청거렸다. 발에 걸린 게 무언지 살펴보려 몸을 숙이는 사이 다시 달빛이 비췄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것이 자신이 추측한 바대로 수도원의 동쪽 타워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방 안이 어두침침해 발부리에 걸린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등불을 가져와 비추어보니 낡은 단도였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단도를 들어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녹이 슬어 얼룩덜룩했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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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본질적인 책, 유일하게 참된 책은 이미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위대한 작가는 통상적인 의미에서 발명할 필요가 없으며, 다만 번역하기만 하면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가의 임무와 역할은 바로 번역가의그것이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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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실을 맺지 못하는 명철함에는 기쁨도 거의 없다. 내가 어쩌면 이런저런 기쁨을 ㅡ 지성의 기쁨이 아닌 ㅡ 느꼈다 해도, 그것을 언제나 다른 여인을 위해 낭비했음을 덧붙인다. 그리하여 운명이 내게 불구가 아닌 채로 100년의 수명을 더 살게한다 해도, 그 삶이 연장되는 데, 하물며 더 오래 연장되는 데 어떤 흥미도 느끼지 못하는 존재에게는, 그저 삶을 연이어 늘리며 덧붙이는 데 불과했을 것이다. ‘지성의 기쁨‘으로 말하자면, 나의 명철한 눈 또는 나의 이성적 사유가 아무 기쁨도 없이 찾아내고 또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한 그런 냉철한 사실의 확인을 과연 지성의 기쁨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러나 이따금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를 구원하는 신호가 온다. 모든 문을 두들기지만 그 문은 어느 것에도 이루지 않고, 그렇지만 우리가 들어갈 수 았는 단 하나의 문, 100년 동안 헛되이 찾았을지도 모르는 문에 알지도 못한 채 부딪치고, 그리하여 그 문이 열린다. - P28

만일 추억이 망각 때문에 그 자신과 현재 순간 사이에 어떤 관계도 맺지 못하고 어떤 사슬고리도 던지지 못한다 해도, 추억이 그 자리에 그 날짜에 그대로 머무르면서 깊은골짜기나 산꼭대기에서처럼 고립 상태를 유지한다 해도, 회상은 돌연 새로운 공기를 호흡하게 한다. 그것이 바로 예전에 우리가 호흡했던 공기, 시인들이 낙원에 널리 퍼뜨리려고 헛되어 시도했던 것보다 더 순수한 공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그 공기를 호흡한 적이 없다면, 쇄신에 대한 어떤 깊이있는 감각도 줄 수 없을 것이다. 진정한 낙원이란 바로 잃어버린 낙원이기 때문이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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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메리라는 처녀가 없거나 프레드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의 양심은 훨씬 무디게 작용해서 빚에대해서 미리부터 이렇게까지 신경 쓸 리가 없고, 언제나처럼 싫은 일은뒤로 미루고 꾀를 부려도 양심이 찔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또 생 - P410

각난 즉시 솔직하게 행동하려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프레드 빈시보다 착실한 사람인 경우에도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반은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정신에 떠받히기 때문이다. "내 모든 행동을 연출할 수 있는 무대는 사라졌다"고 절친한 친구의 죽음에 임하여 말한 옛사람이 있다. 최상의 연기를 요청하는 관객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만일 이 당시 메리 가스가 사람의 성격의 감탄할 만한점에 대하여 뚜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프레드 빈시에게 사태는 완전히 달라졌을 게 틀림없다. -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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