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살다 보면 무심히 하는 약속이 많다.
언제 한번 만나요.
언제 한번 식사해요.
언제 한번 술 마셔요.
언제 한번 놀러갈게요.
언제 한번은 영원히 오지 않는 경우도 많고, 어쩌다 온다 해도 가깝지 않은 미래다. 그러나 서로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니,
"너 그때 식사하자 했잖아. 언제 할래?"
이러고 따지는 사람도 별로 없다. 사람 세상에서는.
그런데 이런 무심히 하는 약속의 대상이 개일 때는 문제가 다르다. 택배가 오면 쪼르르 쫓아나가서 택배기사님을 따라 엘리베이터까지 타려고 하는 나무. "나무야, 이리 와. 얼른!"이라고 말해봐야 듣지 않는다. 그래서 "나무야, 까까 줄게, 이리 와" 하고 부르게 된다. 그럼 아무리 좋아하는 택배기사님이 와도 내버려두고 쪼르르 집으로 들어온다.
들어왔으면 됐지, 까까는 무슨!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나는 책상으로 돌아가지만, 나무는 강렬한 레이저 광선을 보내며 책상 옆에 해태상처럼 앉아서 까까 줄 때까지 떨어지지 않는다.
오늘 아침에도 택배가 왔다. 잠결에 까까 준다고 나무를 불러들였고 택배를 던져놓자마자 다시 자려고 누웠다. 그런데 잠결에도 뒤통수가 뜨끈뜨끈. 돌아보니 나무가 바로 뒤에 앉아서 벽 쪽으로 돌아누운 내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약속을 했으면 지키고 자라는 거지……. 할 수 없이 사료 좀 꺼내주니 0.1초 만에 흡입하고 사라졌다.
목욕시키면서 "목욕 다 하고 껌 줄게~" 하고, 먼저 씻겨서 내보내놓으면 내가 다 씻고 나올 때까지 욕실 문 앞에 앉아 있다. 껌 받으려고. 받을 거 하나는 악착같이 받는다. 전생에 사채업자였니.
모든 약속은 지켜야 하겠지만,
세상에서 꼭 지켜야 하는 약속이 한 가지 있다면
반려동물과의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