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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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나는 전적으로 어머니에게서 한국 문화를 접했다. 엄마는 내게 직접 요리하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한국인들은 똑 떨어지는 계량법 대신 "참기름은 엄마가 해주는 음식맛이 날 때까지 넣어라" 같은 아리송한 말로 설명하길 좋아한다) 내가 완벽한 한국인 식성을 갖도록 나를 키웠다. 말하자면 나도 훌륭한 음식 앞에서 경건해지고, 먹는 행위에서 정서적 의미를 찾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음식 하나하나에 대한 선호가 분명했다. 김치는 알맞게 익어서 적당히 새콤한 맛이 나야 했고, 삼겹살은 바짝 구운 것이어야 했으며, 찌개나 전골은 입안이 델 정도로 뜨겁지 않으면 차라리 안 먹느니만 못했다. 한 주 동안 먹을 음식을 미리 만들어둔다는 생각은 말도 안 되었고, 우리는 그날그날 당기는 음식을 바로바로 만들어 먹었다. 만약 3주 동안 김치찌개 말고는 다른 음식이 생각나지 않으면, 딴 음식이 생각날 때까지 허구한 날 김치찌개만 만들어 먹었다. 우리는 철철이 제철 음식을 해 먹었고, 꼬박꼬박 명절 음식을 챙겨 먹었다.
봄이 되어 날이 따뜻해지면 마당 테라스에 캠핑용 레인지를 들고 나가서 다 같이 둘러앉아 신선한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내 생일날에는 미역국을 끓여먹었다. 미역국은 한국에서 산후조리중인 산모들에게 권장하는 영양소가 풍부한 해초 수프인데, 한국에서는 생일날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걸 먹는 전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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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살다 보면 무심히 하는 약속이 많다.
언제 한번 만나요.
언제 한번 식사해요.
언제 한번 술 마셔요.
언제 한번 놀러갈게요.
언제 한번은 영원히 오지 않는 경우도 많고, 어쩌다 온다 해도 가깝지 않은 미래다. 그러나 서로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니,
"너 그때 식사하자 했잖아. 언제 할래?"
이러고 따지는 사람도 별로 없다. 사람 세상에서는.
그런데 이런 무심히 하는 약속의 대상이 개일 때는 문제가 다르다. 택배가 오면 쪼르르 쫓아나가서 택배기사님을 따라 엘리베이터까지 타려고 하는 나무. "나무야, 이리 와. 얼른!"이라고 말해봐야 듣지 않는다. 그래서 "나무야, 까까 줄게, 이리 와" 하고 부르게 된다. 그럼 아무리 좋아하는 택배기사님이 와도 내버려두고 쪼르르 집으로 들어온다.
들어왔으면 됐지, 까까는 무슨!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나는 책상으로 돌아가지만, 나무는 강렬한 레이저 광선을 보내며 책상 옆에 해태상처럼 앉아서 까까 줄 때까지 떨어지지 않는다.
오늘 아침에도 택배가 왔다. 잠결에 까까 준다고 나무를 불러들였고 택배를 던져놓자마자 다시 자려고 누웠다. 그런데 잠결에도 뒤통수가 뜨끈뜨끈. 돌아보니 나무가 바로 뒤에 앉아서 벽 쪽으로 돌아누운 내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약속을 했으면 지키고 자라는 거지……. 할 수 없이 사료 좀 꺼내주니 0.1초 만에 흡입하고 사라졌다.
목욕시키면서 "목욕 다 하고 껌 줄게~" 하고, 먼저 씻겨서 내보내놓으면 내가 다 씻고 나올 때까지 욕실 문 앞에 앉아 있다. 껌 받으려고. 받을 거 하나는 악착같이 받는다. 전생에 사채업자였니.
모든 약속은 지켜야 하겠지만,
세상에서 꼭 지켜야 하는 약속이 한 가지 있다면
반려동물과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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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나는 너랑 노는 게 제일 좋아 - 아끼고 고맙고 사랑하는 당신에게
하태완 지음 / 북로망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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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웃는 사람





나는 너랑 있을 때 가장 잘 웃는 사람이 돼. 너랑 시시콜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도, 우리 함께 걷는 길의 어디선가 좋아하는 음악이 불현듯 흘러나올 때도, 너랑 술 한 잔씩 따라 마시며 이 겨울 추위를 녹여낼 때도, 너랑 여느 때와 같이 끼니를 때울 때도 웃음이 끊이지를 않고 만연하거든.
그러니 우리 내내 같이 있자. 함께 나누고픈 기쁨이 봄처럼 돋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모진 슬픔 탓에 눈시울이 여름처럼 뜨거워진대도, 시린 불안 탓에 가슴께가 겨울처럼 얼어버린대도. 쉬지 않고 붙어 앉아 잇몸까지 드러내며 활짝 웃어. 그래야 꽁꽁 언 생의 틈마다 우리 애정이 봉오리를 틔울 테니까.
나는 우리가 적어도 서로의 곁에서만큼은 몸의 어떤 곳 하나 힘을 주지 않고도 버티고 설 수 있었으면 해. 그러려면 우리가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는 일을 호흡만큼 잦게 하는 게 좋겠어. 시도 때도 없이 팔짱을 끼고 체온을 나누면서 사랑을 데우는 거야. 사랑한다는 말 없이도 너무 깊은 사랑임이 틀림없을 때까지 만나서 웃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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