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탐하는 사람은 상처를 재배열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자다. 당신의 피를 내 쪽에 묻혀 희석하려는 욕망. 만약 내게 저들이 앉은 테이블에 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먼저 내 인생의 찢어진 페이지 몇 장에 대해 들려줄 것이다. 그러고는 사람들을 지켜볼 테다. 사람들이 이야기에 상처받는 순간을. 기억과 기억이 만나 상처를 조율해나가는 동안 얼굴에 드리워지는 무늬들을 보고 싶다.
옥상 위를 걸었다. 이쪽에서 저쪽까지 여덟 걸음이면 완성되는 산책. 누군가 함께한 적도 있었지만 혼자일 때가 많았다. 작은 발이 작은 발의 임무를 다하는 시간 동안 별을 보았다.옥상에서 보면 골목이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고작 이 층 높이였는데도 훤히 보였다. 비스듬히 쌓아놓은 연탄 더미들, 쓰레기를 담아 내놓은 봉지, 깨진 화분, 취한 남자의 휑한 머리통까지 다 보였다. 옥상에서 초연함을 배웠다. 가까이에서 멀어지는 연습을 했다. 널어놓은 빨래에 기대는 연습. 눈이 네 개가 되는 연습. 잠자리처럼 보는 연습. 슬픔을 층층으로 재조립하는 연습. 그런 걸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그 노트를 꺼내 누운 채로 끄적였다. 기진이 죽은 뒤 새로 생긴 습관이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라면 다 적었다. 나는 그 노트에 진실만을 적기로 맹세했다. 그게 아무리 형편없고 엉망이고 낯이 뜨거울 정도로 날것의 문장이라고 해도 진실이라면 다 적었다. 처음에는 나의 진실이란 원래 그렇게 부끄러운 것인가 싶었다. 쓴 것들을 다시 들춰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혹시 내가 죽기라도 해서 누가 이 기록들을 보게 될까봐 두렵기까지 했다. 그래서 쓰고 나면 그 즉시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지만 나는 겨우 참았다. 그렇게 매일 아침마다 내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적어 내려갔다. 그게 진실이 맞다면, 나는 그걸 견뎌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그게 내게는 애도의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아침 8시30분이면 요가매트를 펴고 유튜브 요가를 켜놓고 20분정도 요가를 하는 나에게 요가의 넓은 세계를 조금이나마 알게 해준 책일본에서 패션 일을 하다가 뉴욕에서도 패션 일을 하려고 무작정 미국행을 택해 물가 높은 미국 뉴욕에서 5불짜리 요가를 할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요가의 길로 들어서면서 언어의 장벽에 부딛치며 요가 강사가 되기까지의 힘든 과정 성취감 희열 아픔을 그려놓은 책언어의 장벽이 얼마나 힘든것인줄 알기에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어느 순간부터 옆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쉬지 않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정말 덩치가 컸고, 어떤 이는 배가 많이 나왔고, 어떤 이는 정말 뻣뻣해 보였고, 또 어떤 이는 나이가 많아 보였는데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너무나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그때 세상에 그런 열정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과시하거나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 집중하고, 그런 나를 받아들이려는 열정. 요가복은커녕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에 무릎이 튀어나올 대로 나온 추리닝 바지를 입고 있지만, 괜찮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매트를 다닥다닥 붙여서 앞뒤, 양옆 사람과 계속 부딪히면서도 누구 하나 싫은 기색 보이지 않고, 서로의 움직임을 타협해가며 그 안에서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것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그것이 가능하고,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진짜 세상이라는 것을. 반면 스스로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남만 두리번거리는, 그러다 옆사람과 부딪히면 서로 헐뜯으며 살아온 것이 내 인생이었던 것이다.이것이 내게 다가온 빈야사 요가였다. 완벽하게 자세를 해내지 못해도 괜찮다. 멋진 요가복을 갖춰 입지 않아도 괜찮다. 앞사람에게 머리를 발로 맞아도 괜찮다. 흐름에 몸을 맡기며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는 것, 그것이 그날 뉴요커들이 추운 날 길거리에서 줄을 설 정도로 열광하는 빈야사 요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