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맑다.
엄마는 ‘맑다’는 단어를 귀중하게 간직했지. 나는 ‘지금’이란 단어에 집중했다. 지금은 어디에 있나. 지금은 금방 사라지지. 할머니가 죽었다는 건 할머니의 시간이 사라졌다는 것. 내가 살아 있다는 건 내게 시간이 있다는 것. 사라지는 지금 속에 아직 있다는 것.
아직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와 나는 즐거울 때는 같이 웃었지만 슬플 때는 서로 모른 척했다. 위로를 해주지 않는 엄마에게 가끔 상처를 받기도 했다. 엄마도 나에게 상처를 받았을까? 생각해보니 나는 엄마의 슬픔을 알아차린 적이 거의 없었다. 엄마는 들키지 않았으니까. 나는 엄마가 실컷 울 수 있도록 가게 밖으로 나왔다. 어렸을 때 나는 눈물샘이 자주 막혔다. 슬픈 일이 생기면 그때의 내 사진을 보았다. 눈이 붓고 눈곱이 낀 아기.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아기. 다시 눈물샘이 막힌 아기가 된 기분이었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흐르지 않는 아기. 나는 계단에 앉아서 눈을 맞았다. 내 몸을 그대로 통과하는 눈을. 눈이 펑펑 내렸다. 쌓인 눈을 보자 내가 죽은 게 어제 일처럼 느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혼자는 편합니다. 영화도 혼자 보면 편하고, 여행도 혼자 하면 편하지요.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요. 과거에는 혼자 곧잘 떠나곤 했습니다. 지금도 혼자일 때가 좋습니다. 혼자 있을 때 비로소 생각도 정리할 수 있고, 뭔가를 완성할 수 있지요. 그러나 누구나 그렇듯 늘 혼자일 수 없고, 늘 여럿일 수도 없지요.

-알라딘 eBook <책방 시절> (임후남 지음)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살아가는 일은 채우고 비우는 일의 연속이지요. 먹고 배설하는 일이 우리 몸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처럼, 정신도 그렇지요. 책이야 안 읽어도 그만이지요. 책을 읽는다고 삶이 확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요.그런데 그렇게 채우지 않으면 빈 상태라는 것. 제겐 그것이 책이라는 것이지만, 저마다 다른 요소를 갖고 살아가겠지요. 채우고 배설하고, 채우고 배설하면서 자신만의 생활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요.

-알라딘 eBook <책방 시절> (임후남 지음)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제대로 쉬어보고자 탐구한 끝에 휴식이 무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내게 휴식은 비어 있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비어 있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건, 시간 속에 나만 들어가 있는 걸 말한다. 시간 안으로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한다. 사회적 시선, 압박, 재미없고 고리타분한 말들. 지치지 않고 찾아오는 불안, 걱정, 두려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