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가 양쪽에 나란히 줄 서 있는 길, 모두 불이 꺼진 상가들 틈에서 노란빛이 새어 나왔다. 노란 은행잎들이 단정한 한옥 기와지붕 위에 곱게 쌓여 있었다. 그때 은발 머리를 집게로 잘 올린 70대 정도의 할머니가 유리문을 활짝 열었다. 콩알만 한 진주귀걸이를 한 그녀의 입가엔 많이 웃어 생긴 주름이 다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종소리가 들렸다. 운명을 만나면 종소리가 들린다는데 밥솥 위에 딸랑딸랑 흔들리는 추 소리가 종소리처럼 머리를 울렸다. 밥 냄새와 섞여 창밖으로 흘러나오는 노랫말이, 종이에 글을 쓰며 장난기 많은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 할머니의 모습이, 좋았다. 깨끗하게 잘 닦인 진열장에 곱게 포장한 도시락을 칸칸이 올려놓는 주름진 손이 애틋해 보였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가만히 고개를 올려 간판을 보았다. 달빛에 환히 비치는 간판은 보고만 있어도 따뜻했다. 맛나 도시락…. 맛나 도시락? 이건 그때 간호사가 준 도시락집…? 정이가 뒷주머니에 손을 찔렀다. 날카롭고 각진 은박지가 느껴졌다. 사각형으로 잘 접힌 은박 호일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조심스럽게 펼치자 흰 종이에 쓰인 글자가 보였다.
이렇게 눌러 담은 고봉밥을 먹고도 배가 고프다면 또 오슈. 리필 가능. 언제든 웰컴! 그럼 씨 유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