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그게 문제야. 뭐든 농담으로 웃어넘기잖아. 난 심각하게 말하는 거야. 웃을 일이 아니야."
그 일은 반복되었다. 나는 원진과 만날 때마다 취했고 취할 때마다 추태를 부렸고 원진은 그때마다 자길 좋아하냐고 물었다. 이상하게도 그 일이 거듭될수록 부끄러움은 점점 옅어졌다. 맨 처음에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아주 선명했다. 하지만 점점 희석되었다. 열화되었다. 그런데 때로는 그 부끄러움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와 아주 선명해질 때가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원진은 나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곤란하다고 여기며 원진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순전히 내 감정의 편의를 위해서. 그것은 아주 유아적이고 치졸한 생각이라서 나중에는 그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낯이 뜨거워졌다.
"5월까지 어떻게 기다려. 당장, 당장 떠나자. 멀리, 아주 멀리."
술에 취했을 때 원진은 분명 그렇게 이야기했었는데 당장 떠날 수는 없었다. 당장은 휴가를 낼 수가 없었다. 오래 쉴 수 없었으므로 멀리 떠날 수도 없었다. 우리는 시간을 쪼개어 다가올 삶을 계획했다. 그리고 그 계획대로 하나씩 해나갔다. 그런 게 삶의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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