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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란 한 마디로 정의하면,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읽는 것이다. 좀 더 전문적인 용어를 쓰면 텍스트를 보고 컨텍스트를 읽는 것이다. 이처럼 독서란 이중화된 작업이며, 이것을 꿰뚫어보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자신의 해석하는 마음이 타인의 해석에 점령당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왜냐하면 텍스트와의 만남은 비교적 우호적이지만, 컨텍스트와의 만남은 순수하게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내가 컨텍스트의 주인이 되느냐 노예가 되느냐, 둘 중 하나밖에 없다. 여기서 지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을 반드시 또렷하게 유지해야 한다. 마음이 읽는 능동체가 되기를 멈추는 순간, 읽음을 '당하는' 수동체가 되고야 만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읽는 속도다. 자신의 정신의 속도와 리듬에 따라 텍스트를 따라가고 결코 중도에 멈추지 말아야 한다. 잠깐잠깐 메모를 할 수도 있겠지만, 리듬을 깰 정도로 오래 필기를 하거나 읽기를 멈추면 텍스트에만 매몰되어 컨텍스트에 마음이 휩쓸리고 만다. 또한 정신적으로 피로감을 느낄 수준이 되면 독서를 멈춰야 한다. 긴장감을 놓은 채 눈으로만 텍스트를 따라가는 것 역시 노예가 됨을 의미한다. 

읽을 때만큼이나 읽지 않을 때도 중요하다. 읽지 않을 때는 읽은 바를 소화시키기 때문이다. 소화란 나에게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골라내 내 몸에 흡수하거나 몸밖으로 배출하는 과정이다. 책 또한 이와 같이 나에게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을 골라내야 하며, 이는 나의 의식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무의식이 하는 역할이다. 그리하여 완전히 소화하면 의식에 남는 것이 없어 마치 처음부터 안 읽은 것과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남이 물어보면 다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화되지 못하면 계속 의식에 남으므로,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것이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인지 아니면 책의 내용이 잘못되었기 때문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 또한 나의 무의식이 알려주는 것으로, 전자의 경우 다시 정독하거나 이에 답할 수 있는 새로운 책을 찾아야 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틀린 부분을 버려야 한다. 한 번에 책을 완전히 소화하기란 드문 일이기에 텀을 두고 여러번 읽는 것이 보통이다. 정말 뛰어난 책은 평생을 두고 읽어도 소화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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