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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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서구의 역사가 전세계 역사전개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것은 그리 얼마되지 않는다. 하지만 보편적인 인류의 존재에서 일부에 지나지 않는 서구의 힘이 전세계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지배적인 위치에 놓이게 되었을까?


이는 인류사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의문점이다. 전세계 많은 지역에서 자원과 인구가 풍부한 지역은 많다. 특히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같은 경우는 거대한 땅덩어리와 많은 인구가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이런 지역이 서구의 힘에 굴복하고 지배 당하는 위치로 전락하다 최근에 들어서 독립하여 엄청난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리를 잡으려 안간 힘을 쓰고 있다. 이를 보면 인종차별적 시각에서 그들은 나약하고 게으르며 지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렇지만 그 많은 인구속에서 과연 모든 이들이 게으르고 지능이 모자랄까. 서구의 사람들은 모두 기민하고 지능이 뛰어난 인류만 존재하는가. 이는 우문이다. 세상은 다양한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고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으며 다양한 지능을 가지고 있다. 인류중에는 걸출한 이들이 존재한다. 소위 천재들이라 불리는 이들이 있지만, 우리가 흔히 착시적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그들이 인류를 이끌어 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분명 보통 사람들보다 똑똑하고 현명했지만 그것은 어느 특정분야에서 남들보다 돋보이는 업적을 이루었기 때문이지 그들이 남들보다 결코 뛰어나서는 아니다. 그 천재들도 결국 그들이 뛰어난 업적을 이루기 위해서 많은 시간동안 노력했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 토대를 발판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드런 천재들도 결국 의지하게 되는 일반인들의 노력이 전세계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왜 특정지역에서 유독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잘 형성되었는지 어디에서부터 차이나 발생하는 것어었는지 찾아보아야 한다. 저자는 이를 지역적 환경의 차이에서 기원을 찾는다. 인간이 유랑 생활을 하면서 채집 활동으로 생명을 유지하다가 어느 순간 정주 문화로 이동을 한다. 정주생활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식량생산을 위한 농업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문명이 발생한 지역은 현재의 식량생산에 최적의 장소가 아닌 오히려 안좋은 조건이 존재하는 곳에서 발생했다. 이는 야생의 밀이나 벼를 농작물화하기 위해서 많은 환경적 요인들이 들어 맞아야 하는데 이 조건들이 잘 맞는 곳에서 인류 최초의 문명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인더스, 황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이런 조건들을 가지고 발생했다는 것이다. 또한 농업과 함께 야생동물을 가축화 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하지만 야생의 동물을 가축화하는데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고 단순히 이런 투입요소만으로 모든 동물이 가축화되기는 힘들며 조건이 정확하게 맞는 경우에만 가축화 되었는데, 현재의 소나 돼지, 닭, 말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런 동물들은 인간에게 단백질 공급원 뿐만 아니라 동력을 제공했다. 덕분에 인간은 정주생활에서 인구 밀도를 올리면서 문명을 발전 시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것이다.


문명의 발전은 계급사회를 출현 시켰고, 계급 사회는 문명을 고도화하여 보다 분화된 기능을 가진 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회는 많은 문명적 이기를 발명하고 발전시킨다. 특히 책 제목처럼 쇠와 총으로 대변되는 군사적 우위를 가지는데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것이 인간이 밀집사회를 이루고 가축화를 진행하면서 수많은 병균에 노출이 되고 면역체계를 발전시켜 간다는 것이다. 이는 나중에 신세계가 별견되고 그 세계를 구세계가 침략할 때 하나의 침탈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구세계가 가지고 있던 이런 병원균들은 신세계 사람들에게는 없던 새로운 것이었으며 이 때문에 침탈로 인한 살상보다는 병원균에 의한 사상자가 더 많이 발생하는 결과를 낳는다. 


인간문영의 발전은 단순한 한 개인이 새롭게 창조하기 보다는 앞세대가 남긴 지식을 바탕으로 그 위에서 새롭게 더 발전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구세계에 퍼진 지식은  끊임 없이 전파되고 개량된 것이다. 화약과 아라비아 숫자와 항해술을 위한 나침판등은 중국에서 발명되었지만 실크로드를 통해서 유럽으로 전달되고 그 기술이 더 발전한다. 또한 문자는 한세대에 어느 순간 발명된 것이 아니라 인류가 발전하면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그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언어를 발전시켜 나가면서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저자는 자신의 논의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역사인류학의 증거로서 뉴질랜드, 호주, 파파뉴기니아의 원주민들의 예를 탐구하면서 그들의 역사와 함께 언어가 보여주는 역사적 과정도 같이 보여준다.


발견된 신세계에 대한 서구의 침략 수단인 총,균,쇠가 출현하는 과정은 인류가 정주문화를 가지면서 발전하는 과정에서 획득하게 되는 잇점들이다. 하지만 왜 구세계는 이렇게 발전했는데, 자원이 풍부했던 신세계는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유라시아의 문화확산 과정이 비슷한 위도의 가로축이었다면 신세계는 자연환경적으로 매우 불리한 그리고 가로 막는 구조의 횡축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식량이나 동물이 확산되기에 매우 불리한 조건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파나마의 가늘고 길죽한 통로는 남북 아메리카가 서로 교류하기에는 매우 불리한 자연적 장애였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결국 이들은 구세계의 침략을 받아서 무너지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기 전까지 자연 환경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최선의 사회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드는 의문점들 왜 몽골같은 민족은 유랑민이었지만 뛰어난 기마술과 조직력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침략하고 지배하게 되었는가이다. 이들은 정착하게 되면서 결국 기존의 정주형 인류에게 흡수되고 동화되어 그 흔적이 희미해지고 말았지만 그들은 정주문화가 가지지 못하는 기동력과 조직체계로 유라시아 전체를 석권하는 힘을 발휘했다. 이들이 지배 기간이 짧았지만 그리고 정주문화에 흡수되면서 결국 그들의 기동성을 잃어버리고 힘을 잃어버렸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던 우수성은 서구 문화 발전에서 벗어나 있는 괘적이다. 또 하나의 의문점은 이 몽골 기마민족이 결코 쇠를 더 잘 이용했다거나 병균이 결정적으로 작용해서 유럽을 공포에 몰아 넣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 물론 흑사병이 중앙아시에서 발병하여 결국 유라시아를 가로질러 유럽으로 퍼지면서 유럽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었지만 말이다. 


역사 발전의 아이러니는 여러곳에 존재한다. 특히, 서구의 시선으로 볼 때 아시아의 4마리 용들은 그들의 관점에서는 기적적인 성장을 일궈낸 특이한 경우다. 자원과 발전을 위한 기반 시설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서구가 일구었던 경제적 발전을 급속히 압축해서 따라 잡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이 책이 설명하지 않지만 이책에서 이야기하는 기본적인 발전의 차이가 현재에도 누적된다는 이론이 어느정도 괘를 벗어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장기간에 걸쳐서 어떻게 향후 전개될지는 미지수이기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에서 흔히 발생하지 않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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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로 가는 길 E. M. 포스터 전집 3
E. M. 포스터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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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더위는 모든 것을 녹여 버릴 정도로 뜨겁게 느껴진다. 이는 인간이 가진 모든 감정마저도 녹여 버리고 이성적 사고마저도 사라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인도를 지배했던 영국인들은 이 뜨거운 더위를 피하고자 여러군데 여름 별장을 만들었고 더위를 피해서 고지대로 이동하거나 낮의 삶을 포기하고 밤에만 그들의 열정을 들어내곤 했다.


인도의 더위가 시작되기 전 그곳에 퀘스트양과 무어 부인이 도착한다. 이들은 인도가 낯설지만 신비롭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보여줄 미지의 땅으로 인식하고 있다. 마치 여행자들이 막 인도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느낀느 그 설레임을 그대로 간직한채 그들만의 목적에 맞춰서 식민지 인도 땅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다. 이런 기대감 덕분에 영국인들과 좀 더 친밀하고 그들과 어떤 우정이라도 만들고 싶은 아지즈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어쩌면 식민지에 살고 있는 식민지인으로써 영국의 지배하에서 그들의 눈에 띄고 싶은 기회주의자적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기회는 무어의 친절 덕분에 쉽게 찾아오고 이 사건 덕분에 아지즈는 재판장에 서야하는 죄인이 되고 만다. 그가 그토록 원하던 영국인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인물이 된 것이다. 


아지즈가 재판정에 서게된 그 싯점에 인도의 열기는 이제 막 시작되고 그 절정을 향해서 달려가는 계절이 왔다. 모든 것은 더위속에서 그 경계를 파악하기 힘들고 사람들간의 뜨거운 열정 혹은 폭력적 열정은 더욱 달궈진다. 만일 이들이 그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면 아마 멈출수 없는 폭력적 폭주로 이어졌을 것이지만 퀘스트양의 순간적인 흔들림과 그녀의 양심이 버텼기 때문에 아지즈는 무사히 석방되고 그는 영웅이 된다. 하지만 아지즈는 인도인 답게 그 결과를 자신만의 의지데로 해석하고 그를 위해서 힘썼던 이들의 노력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마침내 오로지 그만의 편이었던 필딩과의 우정은 끊어지고 그는 그가 그토록 경멸하면서 실증내고 때로는 그의 종교적 감정에 호소하면서 버텨내는 인도의 품으로 돌아가고 만다. 이것이 모든것을 자신들만의 눈으로 바라보는 인도의 모습일까. 아니면 영국인이 식민지 인도에서 가졌던 마지막 호의면서 양심적 가책이 아니었을까. 


인도는 그렇게 아무런 해석도 이해도 할 수 없는 말 그대로 그들만의 인도인지 모르겠다. 영국이 몇세기에 걸쳐서 지배를 하고 그들의 문화와 시스템을 이식하고 인도인들을 바꿀려고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들만의 세상속에서 살며 그들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것이 인도가 보여주는 있는 그대로의 인도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 인도를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인도는 그 속에서 온전히 인도인들만의 세상속에서 존재하는 것이지 외부에 살고 외부에서 바라보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니까. 


책을 다 읽고 느끼는 점은 왜 이 책이 포스터의 대표작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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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와디의 아이들 - 성장과 발전의 인간적 대가에 대하여
캐서린 부 지음, 강수정 옮김 / 반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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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도를 여행하기 위해서 델리공항이나 뭄바이 공항을 거쳐간적이 있지만 한번도 그 밖으로 나간적이 없다. 단지 인도의 관문으로만 스쳐 지나간 곳이라 실상 그 도시가 가지는 매력이나 문제점들을 들여다 본적이 없다. 이 책은 그 관문중 하나인 뭄바이 빈민촌의 일상을 다루고 있다. 특히 뭄바이 국제 공항 근처에 형성된 안나와디라는 빈민촌에 사는 사람들의 직접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밑바닥 인생이라 칭하는 그들에게도 나름데로의 인생과 희망이 있다. 하지만 그 인생과 희망은 현실의 절망앞에서 혹은 무관심속에서 소리 없이 사그라들고 흔적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들이 그토록 nobody로서의 삶, 무명인으로 사그라질수 밖에 없는 이유는 가난하기 때문이다. 그토록 가난하기 때문에 더 이상 그들을 타락시킬 것이 없을 것 같지만 오히려 그 가난을 이용해서 서로 물어 뜯어 먹고 사는 부패한 권력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무지하기 때문에 혹은 자신에게 조그만한 이익이 되기 때문에 그 타락하고 부패한 권력에 짓밟히면서 그 그늘에 기대어 살기도 한다.


계급간의 이동 혹은 계급 의식은 그 계급의 가장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다. 계급의 가장자리에 있다기 보다는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 경계선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 경계선이 무너지지 않게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은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밑바닥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아샤의 경우는 이런 저항의 힘을 뚫기 위한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다. 현대처럼 명시적인 계층의 구분이 모호한 그리고 그 모호함은 경제적 힘으로 유지되는 사회에서 계층간의 이동은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그녀의 삶이 비록 깨끗하지 않고 명예롭지 못하다고 할지라도 그녀는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 한층 다가선 모습으로 자리 매김했다. 이에 반해서 압둘의 가족은 상위로 올라설려는 무한한 에너지를 짜내는 과정에서 결국 시스템 아래 갇히고 그들의 희망은 거세 당한다. 그들이 무엇을 잘못한 것도 무엇을 실수 한것도 아니다.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고 그 운이 그들의 운명을 바꿔놓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 작은 불운이 그들에게 가져다 준것은 끝없는 나락으로의 추락이다. 그것도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인도의 시스템 안에서.


 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이들은 인생의 긴시간중에 잠시 잘라낸 일부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삶이 이후에 어떻게 변할지 어떻게 타락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들은 인생의 최저 바닥에 밀려나 있고 하루를 살아내는 것 자체도 커다란 에너지가 필요한 삶이다.


작가는 마지막에서 작은 힘이라도 뭉치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전지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미의 메시지를 던진다. 하지만 그들이 현실앞에 던져진 절망적 삶에서 그 의미를 이해하고 그들의 나약하고 작은 힘을 모아 그들의 소리를 만들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오히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부패한 권력이 개선되길 바라는 것이 빠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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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이산의 책 10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주원준 옮김 / 이산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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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리치가 중국으로 선교 활동을 떠나던 때는 유럽에서 반종교개혁 운동이 한창이었을 때다. 유럽에서는 대항해 시대가 열렸고 스페인과 포루투칼은 식민지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과학적 발견이나 발명들이 항해술에 완전히 흡수되어 사용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먼 곳으로의 항해는 어렵고 힘든 여정이었다. 특히 남아프리카의 희망봉은 아시아로 가는 최단 경로였지만 가장 위험한 코스이기도 했다. 리치 또한 이곳을 지나면서 바람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바다 한가운데 갇히기도 했고, 해상에서 벌어지는 열악한 환경을 온전히 버텨내야 했다.

리치가 긴 항해를 거쳐서 도착한 인도의 고아에는 포루투칼 식민지가 건설되어 있었다. 이곳은 이미 많은 잘 건설된 식민지로서 훌륭한 성당과 인력이 갖추어진 곳이었다. 긴 항해동안 질병과 기아, 해적들로부터 생명의 위험을 감수해야했지만, 고아에 도착하면 당시 무역항으로써 번영을 구가하고 있던 식민지 항구의 풍요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고아는 기독교가 번성하고 그에 따르는 종교적 어두운 면인 화형도 존재하는 곳이었다. 

최부가 기록한 강남에서 북경까지의 수로 여행상을 보면 그가 표류민으로써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잘 알 수 있다. 그가 여행한 속도는 돈 없는 일반인이 움직일 수 있는 속도를 뛰어 넘는 것이었다. 이는 관의 도움을 통해서 신속하게 북격으로 이송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동이 들어갔는지 추측할 수 있다. 리치의 경우 중국에 들어왔을 때 초기에는 이런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재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운하를 통한 이동은 느릴 수 밖에 없었고 중국인들의 관시(觀視)를 중시 여기는 습관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고위층과 연결되고 그를 후원하거나 도와주는 중국인들이 늘어나자 그의 이동 속도는 빨라진다. 쿨리들을 부릴 경제적 여유가 늘고 혹은 관의 힘에 의존해서 이동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명은 넓은 바다를 방어하기 보다는 이를 포기하고 내륙으로 교통수단을 확장했다. 이는 왜구를 견제하기 보다는 그들만의 땅안으로 숨어버린 것이다. 덕분에 해상 무역은 포루투칼이 누리기 좋은 혜택이 되었다. 당시 일본의 은과 중국의 비단은 많은 이윤을 남기는 장사였다.  

명말 만력제의 치세 동안 중국의 발전상과 그 이면은 극과 극을 이루고 있었다. 쟝다이가 누리던 명말의 번영은 다른 한쪽에서 가난한 유민들이 겨울에 얼어죽지 않기 위해서 건초와 피혁이 보관된 창고에 동전 몇푼을 주고 들어가 잠을 자야 했던 상황과는 너무나 뚜렸한 대조를 이룬다. 상업은 그 절정을 이루고 있었고, 관리의 부패 또한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 리치가 친분을 쌓았던 환관들은 명말 부패의 온상이었다. 만력제는 더 이상 세상과의 접촉을 거부했고 유일한 통로는 환관들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은 환관들로 통했다.   

상업 발전이 완숙기에 접어든 명말에 리치가 살아남기 위해서 고분분투하는 모습은 당시 중국인들이 어떤 자세로 거래에 임했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이방인으로써 중국인들의 속임수와 협상, 멸시는 그가 이겨내야만 하는 하나의 고난이었을 것이다. 중국어를 구사하게 되고 그들의 습관을 익히면서 그는 중국인과의 거래에 능숙해졌고, 집을 얻거나 확장하는데 능수능란해졌다. 

이 책은 마테오 리치가 살았던 시절의 유럽과 동양을 서로 교차로 비교 설명하면서 동서양을 넘나드는 폭넓은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동서양을 바라봄으로써 이야기의 흥미를 더 해주고 있어서 읽기 편한 역사서다. 게다가 리치가 사용한 기억술의 일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는 타인의 추억속으로 들어가 그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이미지들을 훓어볼 수 있는 영광을 느끼게 한다. 마치 잘 지어진 건축물 속에 존재하는 미술관처럼 리치의 이미지들은 
 

리치는 말년에 분명 성공한 유학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결코 다시는 그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중국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마지막 순간은 과연 행복했을까 아니면 고향이나 친구에 대한 그리움으로 절망하고 있었을까. 그의 말년에는 기독교로 개종한 중국인들 뿐만 아니라 그를 지지 혹은 후원하는 많은 상류층이 있었다. 리치는 유명인이었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초대를 받고 여기저기 불려다녔으며, 덕분에 많은 음식과 차를 마시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 것이다. 결국 이런 피로감이 그를 노쇠하게 만들었을지 아니면 그를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일반 중국인들도 거두기 힘든 성공을 거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성공속에서 그가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타국만리에서 전도를 위한 청렴한 신부의 삶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명성을 쌓고 세인들의 관심을 받으며 숨을 거두는 순간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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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후예 - 고창 김씨가와 한국 자본주의의 식민지 기원 1876~1945
카터 에커트 지음, 주익종 옮김 / 푸른역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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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를 거치면서 급격한 공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세계경제안애서 살아남은 한국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박정희의 지도력과 (권력의 비호를 받은)소수재벌들의 성공적인 성장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여기에 좌파적 시각은 임금노동자들을 양산하고 지원하기 위한 농업의 희생과 임노동자들의 핍박 그리고 인권의 희생을 통해서 가능했다고 지적한다. 어느쪽이 진실에 가까울지는 각자가 서 있는 입장에 따라서 판이하게 갈릴수 있는 부분이다. 


<제국의 후예>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1970년대의 급부상하는 한국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경제성장의 원동력, 즉 자본주의적 가능성이 이미 식민지 시절 잉태되었으며, 학습을 통해서 그 모체를 형성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이러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를 알기 위해서 민족적 기업이라고 알려진 경방이라는 기업을 통해서, 이 기업이 식민지 시절 어떻게 생성되고 번영하여 살아남았는지를 추적한다. 지금은 삼성이나 현대 같은 거대 재벌이 존재함으로써 그 이름이 극히 작아지기는 했지만 분명 아직도 그 역사적 의의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경방의 시작은 전라도의 지주집안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기원이 되는 전라도 만석꾼이 어떻게 일제시대 토지 수탈을 피해서 부유해지고 공업화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는지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가 일제시대가 시작되면서 대부분의 많은 농민들이 토지를 수탈 당한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 토지수탈의 많은 부분이 왕족이나 공유지등이었으며, 지주들의 토지는 별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일본으로 양곡수출이 이어지면서 김씨 집안은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 지주로서 그들은 마름을 통한 소작통 압박을 강하게 유도한다. 억압적 착취를 통해서 더 많은 소출과 이를 일본 수출로 이어지면서 부를 축적하고, 실제 김씨 집안은 지속적으로 농지를 확장한다(책에서는 이런 착취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없이 객관적으로 서술되고 있지만, 이런 착취가 얼마나 악랄한 것인지는 근대사를 통해서 잘 알려진 부분이다). 덕분에 이 집안은 공업화가 시작되었을 때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이 충분히 축적된 것이다. 


1920년대가 되면서 식민지 총독부는 정책방향을 튼다. 이는 1919년의 3·1운동 영향이 크다. 이 즈음에 일본에서 유학하고 한국에서 경방에 투자를 하고 있던 김씨 집안의 두 형제는 기회를 잡는다. 식민지 총독부가 한국 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시작할 때 이들도 그 혜택을 받은 것이다. 실제 경방이 생산한 면사는 질이 별로 좋지 않았으며, 투자자금을 확보하는데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절이었다. 총독부의 금전적 지원과 함께 식민지 은행들에서 대출이 발생한다. 그리고 경방이 발전을 거듭할수록 일본은행들은 더 좋은 조건으로 대출을 해주고 상호출자도 한다. 이는 은행만이 아니다. 경방이 필요로 하는 원자재와 기게들 수입에 있어서도 일본 업체들이 경방을 지원하고 좋은 조건으로 경방을 비호했다는 기록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는 단순히 조선 기업으로써 순수 민족적 기업으로써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조건들이다.


위에서 볼 수 있는것처럼 일제 식민지 정부는 식민지 경영에 있어서 한국기업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으며, 어떤 경우는 오히려 특혜를 주면서 밀접한 관계를 유지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특히, 내선일체를 주장하면서 극동아전쟁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을때 이들은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서 조선의 많은 부분을 이용하고자 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극화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친일적인 인물들이 많이 포진해 있던 상황에서 이런 경제적 기업들을 이용하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경방도 민족주의 기업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 그들이 일제 식민지 시절에 살아남아서 그리고 1930년대 넘어서 해방전까지 번영을 구가한데는 그만큼 식민지 정부와 관료들 그리고 주변 인물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제공하는 시스템을 잘 알고 있었고 거기에 편승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했을 것이다. 


1930년대가 되면서 경방이 고도 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만주탈취와 중국 침략으로 인한 시장의 확장이었다. 경방은 처음부터 일본 제품과 경쟁하기 보다는 그 틈새 시장을 찾길 원했고, 초창기 어려웠던 시기를 넘기면서 만주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결국 일본 제품의 뛰어난 품질과 경영노하우와 경쟁하기 보다는 해외로 눈을 돌려 좀 더 수월한 판로를 찾았고 때마침 일본의 전장 확장으로 인한 상승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민족기업으로서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경방은 자신의 임노장자 착취에 대해서 소작농에 대한 착취와 같은 억압적 노동을 강요했다. 노동쟁의는 철저하게 탄압 받았고, 임금은 최저 상태를 유지했으며, 노동자들은 계약기간동안 공장안에서 12시간의 긴 노동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경방은 노동쟁의가 발생했을 때조차 노동자들에 대해 협상 의지를 보이지 않고 일본 경찰들에게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박정희 시절의 경제개혁 혹은 경제발전 시초는 한일관계 정상화다. 당장 급박한 자금과 자원을 지원받기 위한 이런 시도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잘 설명해 준다. 박정희는 메이지 유신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으며, 살아남은 기업들은 과거의 시스템에 익숙하고 또 이를 복원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일관계가 복원이 되고 물밑으로 흐르던 이들의 관계가 좀 더 적극적으로 표면적으로 들어나면서 이들은 예전의 시스템속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복원의 한가운데 경방이 참여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들은 예전에 우의를 유지하던 기업과 인맥을 다시 되찾았고 손쉽게 안정적인 발전을 구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권의 정당성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시작한 경제발전은 일제시대 민족적 항쟁을 무마하기 위해서 총독부가 취했던 정책과 유사한 길을 걷게 된다. 부품과 자금, 주원료는 외부에서 조달하고 조립과 완성품 수출로 통한 성장을 유지하는 방향은 이미 경험했던 세계를 다시금 재현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지원주체가 조금은 바뀌었지만 정부와 은행의 전폭적 지원 그리고 노동자의 희생을 통한 강요된 경제를 통해서 이익의 극대화한 기업. 이런 설명이 어느정도 타당성을 가질수 있는게 저자가 의뢰한 연구에서 들어나듯이 재벌의 절반 이상이 창업자들이 일본식민지 시절의 기업운영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경험이 이런 재벌을 형성하고 급격한 경제발전을 일으킬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극히 다르지 않은 경로를 다시금 걷는 과정은 헐씬 수월했고 똑같은 문제들을 무시하고 그만큼 쉬운 길을 갔을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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