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이산의 책 10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주원준 옮김 / 이산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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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리치가 중국으로 선교 활동을 떠나던 때는 유럽에서 반종교개혁 운동이 한창이었을 때다. 유럽에서는 대항해 시대가 열렸고 스페인과 포루투칼은 식민지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과학적 발견이나 발명들이 항해술에 완전히 흡수되어 사용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먼 곳으로의 항해는 어렵고 힘든 여정이었다. 특히 남아프리카의 희망봉은 아시아로 가는 최단 경로였지만 가장 위험한 코스이기도 했다. 리치 또한 이곳을 지나면서 바람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바다 한가운데 갇히기도 했고, 해상에서 벌어지는 열악한 환경을 온전히 버텨내야 했다.

리치가 긴 항해를 거쳐서 도착한 인도의 고아에는 포루투칼 식민지가 건설되어 있었다. 이곳은 이미 많은 잘 건설된 식민지로서 훌륭한 성당과 인력이 갖추어진 곳이었다. 긴 항해동안 질병과 기아, 해적들로부터 생명의 위험을 감수해야했지만, 고아에 도착하면 당시 무역항으로써 번영을 구가하고 있던 식민지 항구의 풍요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고아는 기독교가 번성하고 그에 따르는 종교적 어두운 면인 화형도 존재하는 곳이었다. 

최부가 기록한 강남에서 북경까지의 수로 여행상을 보면 그가 표류민으로써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잘 알 수 있다. 그가 여행한 속도는 돈 없는 일반인이 움직일 수 있는 속도를 뛰어 넘는 것이었다. 이는 관의 도움을 통해서 신속하게 북격으로 이송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동이 들어갔는지 추측할 수 있다. 리치의 경우 중국에 들어왔을 때 초기에는 이런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재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운하를 통한 이동은 느릴 수 밖에 없었고 중국인들의 관시(觀視)를 중시 여기는 습관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고위층과 연결되고 그를 후원하거나 도와주는 중국인들이 늘어나자 그의 이동 속도는 빨라진다. 쿨리들을 부릴 경제적 여유가 늘고 혹은 관의 힘에 의존해서 이동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명은 넓은 바다를 방어하기 보다는 이를 포기하고 내륙으로 교통수단을 확장했다. 이는 왜구를 견제하기 보다는 그들만의 땅안으로 숨어버린 것이다. 덕분에 해상 무역은 포루투칼이 누리기 좋은 혜택이 되었다. 당시 일본의 은과 중국의 비단은 많은 이윤을 남기는 장사였다.  

명말 만력제의 치세 동안 중국의 발전상과 그 이면은 극과 극을 이루고 있었다. 쟝다이가 누리던 명말의 번영은 다른 한쪽에서 가난한 유민들이 겨울에 얼어죽지 않기 위해서 건초와 피혁이 보관된 창고에 동전 몇푼을 주고 들어가 잠을 자야 했던 상황과는 너무나 뚜렸한 대조를 이룬다. 상업은 그 절정을 이루고 있었고, 관리의 부패 또한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 리치가 친분을 쌓았던 환관들은 명말 부패의 온상이었다. 만력제는 더 이상 세상과의 접촉을 거부했고 유일한 통로는 환관들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은 환관들로 통했다.   

상업 발전이 완숙기에 접어든 명말에 리치가 살아남기 위해서 고분분투하는 모습은 당시 중국인들이 어떤 자세로 거래에 임했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이방인으로써 중국인들의 속임수와 협상, 멸시는 그가 이겨내야만 하는 하나의 고난이었을 것이다. 중국어를 구사하게 되고 그들의 습관을 익히면서 그는 중국인과의 거래에 능숙해졌고, 집을 얻거나 확장하는데 능수능란해졌다. 

이 책은 마테오 리치가 살았던 시절의 유럽과 동양을 서로 교차로 비교 설명하면서 동서양을 넘나드는 폭넓은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동서양을 바라봄으로써 이야기의 흥미를 더 해주고 있어서 읽기 편한 역사서다. 게다가 리치가 사용한 기억술의 일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는 타인의 추억속으로 들어가 그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이미지들을 훓어볼 수 있는 영광을 느끼게 한다. 마치 잘 지어진 건축물 속에 존재하는 미술관처럼 리치의 이미지들은 
 

리치는 말년에 분명 성공한 유학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결코 다시는 그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중국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마지막 순간은 과연 행복했을까 아니면 고향이나 친구에 대한 그리움으로 절망하고 있었을까. 그의 말년에는 기독교로 개종한 중국인들 뿐만 아니라 그를 지지 혹은 후원하는 많은 상류층이 있었다. 리치는 유명인이었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초대를 받고 여기저기 불려다녔으며, 덕분에 많은 음식과 차를 마시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 것이다. 결국 이런 피로감이 그를 노쇠하게 만들었을지 아니면 그를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일반 중국인들도 거두기 힘든 성공을 거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성공속에서 그가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타국만리에서 전도를 위한 청렴한 신부의 삶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명성을 쌓고 세인들의 관심을 받으며 숨을 거두는 순간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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