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인플루언서 - 성체를 사랑한 소년, 성 카를로 아쿠티스
니콜라 고리 지음, 최용감 옮김 / 생활성서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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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개인적인 일정이 많아서 책을 좀처럼 가까이하지 못했습니다. 중국어 공부하랴, 그림 연습하랴, 다른 거 배우랴 일주일 내내 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나갔다가 돌아오면 씻고 침대에 파묻혀있느라 책을 멀리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저는 센스 있는 제목을 달고 나온 책의 서평단으로 선정됩니다.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은 저와 동갑입니다. 물론 저보다 두어 달 먼저 태어나긴 하셨어도, 동시대를 살다가 성인품에 오르신 건 가톨릭 역사상 이 분이 처음입니다. 사실 저는 이 성인에 대해 평화방송에서 얼핏 듣기만 했지 자세한 건 잘 몰랐습니다. 저와 동갑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성인은 제목 그대로 하느님의 인플루언서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어린아이들과 친해지지 못했던 어른들도 그를 사랑했습니다. 성인은 사랑을 받는 법도, 주는 법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포함해 또래 친구들, 어린아이들, 동물들까지 성인을 알았던 이들은 하나같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카를로는 어려서부터 신앙심이 강한 집안에서 모자람 없이 자랐지만 결코 자신을 뽐내거나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의 곁에는 항상 예수님과 성모님이 함께했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앞선 시대의 성인들을 본받고자 항상 자신에게 엄격했으며, 평일 미사와 주일 미사를 절대 거르는 법이 없었습니다.

성인의 삶은 여느 개구쟁이 남자애들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독실한 믿음 때문에 조롱을 당해도 절대 맞서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약한 친구나 질환을 앓는 친구, 뒤처지는 친구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자신의 이미지를 돋보이기 위해 자기보다 좀 못해 보이는 애들을 이용했을 텐데 카를로는 역시 달랐다고 합니다.

카를로의 가장 뛰어났던 재능은 바로 컴퓨터 활용 능력이었습니다. 컴퓨터에 대한 지식은 관련 전공자들보다 더 많이 알았고, 다루는 능력도 남달랐습니다. 일부 컴퓨터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어설프게 알고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답니다. 이쯤 되면 시대를 앞서간 성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러나 카를로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그를 알았던 모든 이들은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죽어갈 때도 평온함을 잃지 않았던 터라 의료진들을 감동하게 했습니다. 성인품에 오르려면 정말 떡잎부터 남달라야겠다는 얕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신자와 비신자를 막론하고 모든 청소년 및 청년에게 강하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우리 시대의, 우리 또래의 한 소년이었던 성인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봄과 동시에 우리 안에 숨겨진 재능을 발견해 세상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카를로처럼 우리 또한 하느님의 또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희망도 잃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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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의 가톨릭 교리서
토마스 아퀴나스 지음, 정종휴 옮김, 이재룡 감수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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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수업을 듣다보면 알다가도 모를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5~6년 전 제가 교리수업을 듣던 중 아리우스 이야기가 나와서 잠시 헷갈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삼위일체론에 대한 이야기도 솔직히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세 위격인 성부·성자·성령이 한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만일 누군가에게 가톨릭의 삼위일체론에 대해 물어오면 저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톨릭 교리서를 읽는 동안 예비신자였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영성체도 못 하고 미사보도 쓸 수 없었던 시절, 저는 정말 제 집 드나들 듯 성당에 다녔습니다. 빨리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싶다는 욕심뿐이었습니다. 세례를 받자마자 지인의 추천으로 레지오 마리애에 입단하면서부터 의무감과 중압감에 짓눌려 지금은 성당 자체를 나가지 못하고 있지만요. 그 때는 그랬습니다.

사도신경,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십계명 등은 가톨릭 교리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느님, 천사의 인사, 이웃에 대한 사랑, 내게 상처 입힌 이를 향한 용서, 기도의 정석 등이 모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교리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아리우스나 마니교, 네스토리우스 같은 이단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하느님의 신비는 오류가 없지만, 우리의 지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의 말미에 책 전체의 요점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앞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굳이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설령 돌아가더라도 책의 문장이 어렵지 않아서 금방 다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솔직히 성당 사람들의 표현대로라면 저는 이미 하느님을 떠났기 때문에 신앙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이 책을 고를 자격이 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상처받고 자란 것에 대해 일절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본인들끼리 이야기하기 바빴습니다. 레지오도 그래서 나왔습니다. 학폭을 오래 겪어도(저를 가장 심하게 따돌리던 아이가 해당 성당 출신이더군요), 대인관계가 불편해도 제게만 마음을 열라고 강요하며 비웃었습니다. 오래 전 개신교 교회 사람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힘들다고 신호를 보내도 하느님한테 그러면 안 된다, 미사는 빠지면 안 된다고만 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하느님이고 뭐고 다 치워버리고 싶습니다. 1월 하순부터 시작해 부활시기의 중반에 다다랐지만 아직도 판공성사를 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제가 사람들을 나쁘게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의 좁은 시야로는 사람들의 조롱이나 경멸이 고깝게 느껴집니다. 나 하나쯤이야 없어져도 아무도 모르겠지. 어차피 가봐야 챙겨주지도 않으면서 이런저런 부탁만 해댈 건데. 이런 마음뿐입니다.

다들 하느님께로 잘만 돌아가는데 저는 여전히 멀리서 서성거립니다. 어릴 때부터 외롭게 자라왔고(가족의 유무와는 별개로), 신에게조차 외면당한 저를 누가 좋아할까요. 서평이랍시고 개인적인 이야기만 쓰는 저 같은 사람을요. 저를 비난하던 한 사람이 소리 소문 없이 제게서 나가떨어졌습니다. 더 이상 그의 시시껍절한 잡담에 대응 안 해도 돼서 다행입니다. 제가 먼저 연락할 일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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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 우리 안의 트라우마 마주하기, 치유하기
김선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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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릴 때부터 폭력과 학대를 경험하였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사람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 그런 환경에서 자라 온 스스로를 보듬고 위로하는 일을 못 합니다. 한때는 손목을 그었고, 정신과에서 처방받아온 약을 한꺼번에 복용한 적도 많습니다. 모두가 저를 미워했고, 저 또한 그런 제 자신이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그만 잊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너무들 쉽게 말합니다. 어떤 이는 여전히 제가 과거에 사로잡혀 평생 그렇게 살게 될 거라고 말합니다. 저의 글은 상처와 분노로 얼룩져 읽는 이들을 불편하게 합니다. 실제로 제 글이 불편하다고 말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행복한 글, 밝은 글, 담백한 글로 다시 쓰라고 말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20여 년 간의 고통을 한순간에 잊어버리고 밝게 살라는 말은 강요요 폭력입니다. 저는 여전히 헤매고 있으며, 밝은 척 하다가도 어느 순간 과거가 떠오르면 죽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래서 제가 글을 써도 인정받지 못하나 봅니다. 이게 사람들이 저를 싫어하는 이유인가 봅니다. 싫어하더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늘 미움 받고 살았으니까요.

저처럼 늘 폭력에 시달려 온 삶을 살아온 이는 제 주변에 거의 없더라고요. 그러니 저의 상처에 관한 이야기를 그저 어린애가 징징대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나마 정신과에 입원하였을 때 의사가 저의 얼어붙은 마음에 훅 들어온 이후에는 저도 조금씩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싹텄습니다.

제가 스스로를 조금이나마 다독이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책도 여러 권 읽고 가끔은 그림도 그리면서 차츰 달라지고 있습니다. 가해자들이 저에게 사과를 하러 오든가 복수를 당한다든가 하는 일은 없을 테지만 저도 제 인생을 살아야 하니까요. 그림을 잘 못 그려서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겪기 일쑤입니다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책에서는 사회적 트라우마, 더 나아가 국제적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저는 저의 상처가 너무 많다보니 개인적 상처에 국한하여 부족하게 서평을 썼습니다. 일제강점기, 6·25전쟁, 제주 4·3사건, 세월호 사건, 이태원 참사 등 여러 상처를 겪은 데 비해 관련 책이 전혀 없었던 우리나라에도 드디어 트라우마 책이 나왔습니다.

이 책은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역량을 키워나가기 위해,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기 위해,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이 상처를 딛고 나아가는 것을 돕기 위해, 한 번 겪은 고통은 트라우마가 되어 피해자를 평생 괴롭힌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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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의 비오 신부
존 A. 슈그 엮음, 송열섭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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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몇 년 전부터 끊지 못하고 있는 습성이 하나 있습니다. 이 습성은 가톨릭 신자가 되기 전부터 견진까지 받고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집니다. 몇 년째 같은 죄악으로 고해성사를 보고 많이 줄어들었지만 좀처럼 없어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 더럽고 한심한 존재라는 것을 늘 깨닫습니다. 그렇다고 이 문제로 고해실에서 혼나거나 호통을 들은 적은 없습니다. 만일 호통을 들었다고 해서 나아질 것 같으면 진작 나았을 것입니다.

제가 알고 들어 온 이야기에 따르면, 오상의 비오 신부님께서는 같은 죄를 반복할 시 사죄경을 주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죄에 물든 사람들에게 호통과 질책을 아끼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하느님께로 되돌아오게 만들려는 의도였습니다. 평소에는 온화하고 신비로운 분이셨지만 고해성사 때는 그 누구보다 엄격한 분이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부님께서 인기가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신부님의 몸에 난 오상(五傷)이라는 기적이었습니다.

신부님의 오상에서 흘러나온 피는 사람들을 치유하기도 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저주가 되기도 했습니다. 죽거나 사고가 난다거나 하는 경우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부님의 상처를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신부님은 그럴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고 신경이 곤두섰지만 밖으로 표현할 수도 없었습니다. , 신부님은 오상과 더불어 사람들의 미래까지 알 수 있는 지혜도 가지고 계셨습니다.

신부님과 관련된 기적은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의 증언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성직자, 수도자, 의료인, 또는 일반적인 평민들에게도 비오 신부님의 기적이 전해졌습니다. 비오 신부님은 신분 고하에 따른 차별이 없이 모든 이들에게 평등하고 따뜻한 분이셨다고 합니다. 심지어 죄악에 물들어 신부님의 호통을 들었던 이들도 저마다의 속죄를 하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그런 이들에게 세상 그 누구보다 따뜻했답니다.

저는 요즘 두렵고 괴로운 마음 때문에 성당에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니트청년이라 돈도 없고 친구도 없고 오롯이 혼자입니다. 18년 동안 따돌림을 당해 우울과 불안지수가 높아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일을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 같은 죄를 반복하곤 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고립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하지만 저는 어쩌다 보니 고립되어버렸습니다. 비오 신부님이 저 같은 사람을 보셨다면 가감 없이 호통을 치셨겠지요.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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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울의 내가
현호정 지음 / 사계절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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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받은 시점은 내가 정신과 외래진료를 마치고 집에 도착했을 때였다. 나는 교수님에게 뜬구름 잡는 것 같은, 혹은 매우 불편한 이야기만 듣고 돌아왔다. 나의 감정은 분노와 증오가 들끓었지만 차마 입장이 난처해지는 게 두려워 속으로 삭이고 있었다. 다음 외래가 4월인데 그 날을 마지막으로 종결하겠다고, 더 이상 교수님에게 귀찮게 굴기 싫다고 말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틀째 약을 거르고 있는데, 감정이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는다.

나의 다짐은 우발적이지 않다. 교수님도 내 주변인들처럼 나를 자신의 기준에서 판단하고 무조건적인 용서와 이해를 강요하는 분이었다. 특히 동생 때문에 괴로워할 때 내게도 문제가 있다는 뉘앙스를 내비쳤다. 내 말만 듣고는 이해가 안 된다는 그런 맥락이었다. 나는 사람들 말이나 행동의 의중을 예민하게 캐치하는 능력이 있다. 일례로, 어릴 때부터 친구가 날 대하는 게 친한 친구가 아닌 모자란 애 대하듯 하는 걸 이미 알았다.

그냥 이야기 형식의 소설이 아닌 일곱 편의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 모든 편이 이해하기 어려운 듯 아닌 듯 우울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뭔지 모르게 마음을 건드리는 것 같았다. 조금만 툭 건드리면 울 것 같은 심정으로 끝까지 다 읽었다. 이별은 대체로 우울한 감정을 유발한다. 한 방울의 눈물이 모험을 거쳐 목을 매려는 눈물의 주인을 찾아낼 때, 마을에서 추방당했던 과거를 지닌 샤먼이 사라진 민나를 그리워하다 눈감을 때.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꾹 참고 읽다보면 어느새 우울함에 젖어든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청룡이 나르샤가 그랬다. 이야기가 가로로 나뉘어 있어 번갈아가며 읽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한쪽은 운행을 종료하는 열차 납작이의 시점이고 옆쪽은 가난한 연극인 K에 관한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물론 연필 샌드위치처럼 두 번 읽어도 도통 모르겠는 이야기도 있었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 왔지만 의지가 게으른 건지 실패가 두려운 건지 좀처럼 글로 옮기지 못한다. 복잡해 보이지만 우울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번 소설집을 읽으면서 뜬금없이 나의 소설은 어떤 내용으로 써야 하고 어떤 장치를 사용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봤다. 여기에는 다른 소설에서는 보기 어려운 구조가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틀을 벗어난 이야기의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이 소설집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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