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잠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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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가장 좋아하는 한국작가를 뽑으라면 박민규, 그 다음으로 최제훈을 꼽는다. 데뷔작 ‘퀴르발 남작의 성’을 본 후로 그의 책이 나올 때마다 챙겨보는데 늘 ‘이 사람은 외국에서 태어났으면 대중작가로 스타가 됐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한다.

 

최제훈은 시각적인 문장을 능숙하게 다룬다.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스티븐 킹 소설을 볼 때나 느꼈던 그런 느낌을 준다. 그래서 더 아쉽다. 개인적으로 그가 한국문단에서 탈퇴했으면 하고 바란다. 그가 작정하고 대중소설을 쓴다면 그를 박민규 앞에 놓을 텐데. 중간 중간 소설에 브레이크를 거는 듯한 “이건 순수문학 소설이에요!” 라고 홍보하는 느낌이(사실 처음엔 좋았다. 뭔가 고급스러워 보였거든) 이제는 “또야?” 하고 한숨을 쉬게 만든다. 결정적으로 그가 쓰는 소설은 대부분 같은 것을 추구한다.

 

“완성되는 순간 사라지고, 사라지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영원한 이야기. 무한대로 뻗어나가지만 결코 반복되지 않는 파이처럼.” -(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중에서)

 

최제훈의 이번 소설 나비잠을 표현하는데 이 문장이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목적지를 향해 끝없이 뛰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선 곳이 뫼비우스의 띠 위였다는 사실. 이야기는 종말 없이 윤회를 계속하고 그래서 독자는 머리가 아프다. 처음엔 재밌게 읽기 시작했는데. 그러니까 이게 내용이 어떻게 되는 거지...?

 

장편의 미학은 단편보다 쉽고 빠르게 읽혀야하고(그래야 계속 읽을 테니까) 철학적 결론은 되도록 드러내지 않거나 아니면 최후까지 숨겨두었다가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최제훈은 너무 빠르게 정체를 드러냈다. 팬에게는 익숙하고, 처음 읽는 독자에게는 난해한 그의 정체를... 왜 이렇게 비슷한 주제로만 소설을 쓰는지 의문이 든다.

너무 재밌지만, 조금은 실망이었다. 그래도 최제훈의 소설이 나올 때마다 읽을 생각이다. 언젠가 이런 아쉬움을 날려버릴 너무 재밌는 소설이 나올 거라고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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