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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지기 쉬운 영혼들 - 우리가 무너진 삶을 회복하는 방식에 관하여
에리카 산체스 지음, 장상미 옮김 / 동녘 / 2024년 1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0227/pimg_7703821754203741.jpg)
이 책은 멕시코 이주노동자의 딸이 미국에서 유색인종으로서,
주변인으로서의 고통과 슬픔을 극복하고,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가는 험난한 여정을 그린 책이다.
원제는 <Crying in the Bathroom>인데,
제목처럼 곳곳에 저자의 울음이 가득하지만, 웃음과 유머도 공존한다.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이.
저자 에리카 산체스는 말한다.
행복이란 근사하지만, 그 자체로 흥미롭지는 않다. 주인공이 원하는 것이 있을 때면 그게 무엇이든 정확히 원하는 것을 얻는 이야기를 읽고 싶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개고생하면서 행복을 향해 가는 이야기라면 공들여 무대를 꾸려줄 만하다(145쪽)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세상에서 개고생하면서
성장하고,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그녀의 슬픔>>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0227/pimg_7703821754203742.jpg)
그녀의 슬픔은 사회가 내게 원하는 모습과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의 괴리에서 온다.
이 두 가지는 백만 광년 이상 떨어져 있다.
그녀는 미국 사회에서도 주변인이고, 멕시코인 가정에서도 주변인이다.
나는 내가 대수롭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아무도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거라고.
세상은 멕시코 이주노동자의 딸인 나를 거들떠보지 않고, 그저 쓰다 버릴 하찮은 존재로 여겼다.(5쪽)
나는 어딜 가든 항상 여기가 내 자리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자라는 동안 나는 늘 버림받은 사람이거나 부적응자, 전통적인 멕시코인 가족과 공동체에 실망을 안기는 존재라고 느꼈다.(54쪽)
백인들은 항상 내 웃음소리를 거슬려했다.(45쪽)
그녀는 "멕시코식 웃음소리"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 백인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세상이 바라는 모습을 한 사람에게 더 친절한 세상에서,
토르티야를 굽고 교회나 기도 모임에 착실히 참석하며,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착한(수동적이고 전통적인) 딸의 모습을 바라는 멕시코인 사회에서
오로지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녀가 고통을 극복하는 방식 - 유머와 사유, 읽기와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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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고 좌절하기보다 (물론 눈물을 흘릴 때도 있지만) 유머를 선택한다.
그녀는 재미있고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 거친 말투와 농담을 선택하는데, 이 또한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사회로부터 비난받는 한 요인이 된다('입을 비누로 씻기겠다''입을 때려버리겠다' 등)
그녀의 가족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지만, 그녀에게 카톨릭은 "발에 묶인 울퉁불퉁한 돌멩이 자루(128쪽)"같다. 그녀는 절대적인 교리를 강요하는 대신 나의 행동이 나와 타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생각하라고 하는 불교적 사유에 깊이 공감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를 구원한 것은 바로 '읽기와 쓰기', '언어와 예술'이었다.
그녀는 암울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저자는 예술과 음악 등 다른 여러 분야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편하고 돈도 별로 안 들었기 때문에'(186쪽) 글쓰기를 선택했다고 한다.
내가 방에 틀어박혀 앤 섹스턴을 읽으며 내 몸에 관해 쓰는 동안 우리 가족 대부분은 허리가 부서지라 일하고 있었다.....우리 집안 여성들은 요리와 청소를 도맡아 하면서도 강도 높은 육체 노동이 필요한 직업을 갖고 있었다(187쪽)
나는 살면서 뭘 이루고 싶었을까? 절대로 공장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확실하다. 부모님에게 그것은 제일 끔찍한 악몽이었다. 자식들을 이 나라에서 당나귀처럼 일하게 하려고 죽음과도 같은 티후아나 국경 지대를 건넌 게 아니었다. 부모님은 우리가 그저 사무직만 되어도 행복해 했을 테지만, 나는 언제나 그보다 더한 것을 원했다. 터무니없고 불가능한 그런 일들을(190쪽)
현실에서 이상적인 삶의 모델을 발견할 수 없었던 그녀는 책과 영화에서 자신이 꿈꾸는 인생을 조합해낸다.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혼자 여행을 다니고 대학에 가는 여성들.
그녀는 자신도 그 대열에 끼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는 것은 몸에서 천천히 못을 빼내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쓴다는 것, 그 달콤한 아픔이 언제나 나를 살아 있게 해주었다. 나에게 글이란 일종의 기도이자 숭배 행위다. 그러니까 이런 외침이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277쪽)
글쓰기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저자를 살게 하고, 훌륭한 작가로 성장하게 했다.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 결국 이해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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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거부하고, 용감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저자 에리카 산체스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그녀가 쓴 소설이 궁금해져서 읽어 보았다.
<망가지기 쉬운 영혼들>을 읽었다면
그녀의 소설<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도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에세이를 읽고 소설을 읽은 뒤 다시 한번 에세이를 읽었는데, 역시 좋은 독서 경험이었다.
작가가 소설 속에 자신의 모습을,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어떻게 반영했는지
비교해 가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소설은 주인공의 언니 올가의 장례식장에서 시작된다.
멕시코 가정의 완벽한 딸이었던 언니 올가는 자동차 사고로 스물두 살에 죽는다.
주인공 훌리아는 저자 에리카 산체스의 자아가 반영된 인물이다.
순종적인 언니 올가와는 달리 자의식이 강한 그녀는
멕시코인 사회에서 '변종''골칫거리'라 불린다
(이런 와중에 언니 올가가 숨겨두었던 비밀을 파헤쳐 나가는 과정도 그려져
미스터리적 요소도 있다)
<망가지기 쉬운 영혼들>의 마지막 장의 제목은 <나는 완벽한 멕시코 엄마가 아니야>다.
저자가 딸을 낳으면서 엄마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고, 엄마를 이해하는 장면,
딸에게 건네는 말이 감동적이다.
결국 무너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저자가 도달한 곳은 이해와 사랑이 공존하는 세계였다.
저자는 여성이자 이민자로서 자신이 겪은 끔찍한 일들 때문에
엄마가 항상 최악의 경우를 떠올리고
여기에 대비하는 것을 생존 전략으로 삼았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엄마가 원하는 착한 딸이 되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떨쳐낸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상처가 있고, 그것을 감당하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라는 점도 깨닫는다.
저자는 어린 딸에게 하는 말로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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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더라도,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쟁취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저자는 말해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주변인'이라고 느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성적이 좋지 못해서, 좋은 학교를 나오지 못해서, 외모가 뛰어나지 않아서, 돈이 없어서,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에 종사하지 않아서 등등...
왠지 세상의 중심부에서 밀려난 듯한 느낌...세상이 나를 밀어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들...
결코 친절하지 않은(오히려 적대적인) 세상에서
주변인으로서 진정한 나 자신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
그녀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우리도 매일 거듭되는 삽질에 절망하고 슬퍼할지언정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게 된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여정은 함께 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