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5월
평점 :
품절


치매 어머니를 간병하다 어머니가 죽자 죽음을 은폐하고 연금을 수령하는 50대 여성 명주.

뇌졸중(에 알콜성 치매) 아버지를 간병하는 20대 청년 준성.

얼핏 보았을 때 전혀 새롭지 않은 이야기인 듯했다.

연금 부정수령 이야기나 가족간병과 같은 소재는 뉴스에도 심심찮게 보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을 읽어내려갈수록 이들의 지옥같은 현실에 몰입하여 가슴이 답답해졌고, 때로는 손에 땀을 쥐게 되고, 때로는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다.


당신들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힘든 인생을 사냐고.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냐고. 

그들을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은폐하고 연금을 수령하는 행위가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살면서 조리원에서 일하다 발에 화상을 입고, 사라지지 않는 통증으로 항상 진통제를 달고 살아야 하는 명주가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아보인다.


이웃집인 702호에 사는 청년 준성은 물리치료사가 되어 병원에 근무하는 게 꿈이지만, 뇌졸중에 알콜성 치매까지 있는 아버지를 간호하느라 자신의 꿈은 접어둔 채 대리운전과 간병을 병행하고 있다.


명주는 702호의 등이라도 투덕투덕 두드려주며 좋은 날이 있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얄궂게도 머릿속을 파고드는 건 불길한 미래의 모습이었다. 열심히 바위를 굴려올리며 살아가겠지만 기다리고 있는 건 끝을 알 수 없는 추락뿐인 미래. (123쪽)


처음엔 명주도 자신의 힘으로 충분히 엄마를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밖에서 겪는 모멸감에 비하면 내 엄마를 간병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란 걸 알게 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자신 안에 있는 자비심이란 얼마나 알량하고 얄팍했던지. 명주는 엄마를 돌보기 시작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125쪽)


품위 있는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생존은 가능해야 하지 않겠어? 나라가 못 해주니 우리라도 하는 거지. 살아서, 끝까지 살아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때까진 법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야.(218쪽)


결국 이들의 겨울은 '고립'이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과 동떨어진 고립. 꿈을 좇기는 커녕 친구와, 직장 동료들과 밥을 먹으며 수다떨 수 있는 사소한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는 고립된 섬과 같은 삶.


그러나, 공통점이 없어보이는 50대 여성과 20대 청년은 빈곤 가정에서 가족을 간병하는 경험을 공유하면서 슬픔과 고통, 가난과 고립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 따뜻하고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결국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도움으로써 겨울을 지날 수 있었다는 것.

그러나, 그들이 겨울을 지나는 과정에서 어떠한 사회적, 제도적 도움도 받지 못했다는 점이 안타깝고 아쉽다.


출구가 보일 것같지 않던 잔혹한 현실 끝에 의외의 희망이 펼쳐지지만, 과연 그들은 진정 겨울을 지나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책을 덮으며 선량한 그들이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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