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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크라시 - 극우의 반란, 미국 민주주의의 탈선
전홍기혜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22년 11월
평점 :
<<아노크라시>>의 마지막에 실려있는 '저자의 말'을 읽을 때쯤 바이든 대통령이 이끄는 민주당이 네바다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하여 상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게 되었다는 속보가 나왔다(비록 하원은 공화당이 앞서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책의 저자인 전홍기혜 기자는 UC 샌디애고대학교 바바라 월터 교수의 말을 인용하여 '아노크라시(Anocracy, 민주주의와 독재 국가 중간의 무질서를 의미)'라는 키워드로 현재 미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현상의 저변에는 있는 것은 무엇인지 풀어낸다. 이 책에는 2019년 9월 워싱턴 특파원으로 파견된 기자가 미국에서 팬데믹과 대선을 거치며 실제로 겪은 생생한 경험담이 담겨 있다.
저자는 우선 트럼프 집권 하의 미국에서 재난이 얼마나 더 증폭되었는지(미국이 다른 주요 7개국 수준으로 코로나19에 대응했다면 코로나19 사망자 중 약 40%인 16만 명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학 학술지 '랜싯' 분석 결과 인용), 그 과정에서 트럼프가 일삼아온 거짓말, 한국과 미국의 코로나 대응은 왜 달랐는지 등에 대해 분석한다.
그 다음으로 아시안 증오 범죄, 2021.1.6 의회 폭동 등 백인우월주의에 기반한 극우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는 미국 사회는 더이상 '민주주의의 종주국'이 아니라고, 이것이야말로 미국의 자부심을 훼손하는 진짜 재난(9쪽)이라고 평가한다.
가장 가슴 아픈 점은 이러한 재난의 역풍에 가장 강하게 노출된 계층이 이른바 사회적 약자라는 점이다. 저자는 여러 가지 통계를 인용하여 재난이 약자에게 얼마나 더 잔인한지, 양극화가 어떻게 더 심화되는지 보여준다.

(인터넷 접근성의 차이가 교육 기회를 박탈한다. 그리고, 인터넷 접근성은 지역, 계층, 인종 등에 따라 달라진다)
개인적으로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1.6 의회 폭동 참가자의 다수가 '외로운 늑대(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나 극우 폭력 조직원이 아니라 '가정과 직장이 있는 평범한 백인들'이며, 45%가 CEO,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안정적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사실은 정치인 트럼프가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백인우월주의에 기반한 극우적 이데올로기는 트럼프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미국 보수 세력의 저변에 깔려 있는 사회 문화적 가치들이 특정 정치인 내지는 정치 세력을 만나 극단적으로 분출된 것이다. '트럼프가 없는 트럼피즘'이 얼마든지 작동 가능하다는 사실은 바이든 집권 후 '로 대 웨이드' 판결 뒤집기와 같은 연방대법원의 우경화를 통해 목격되고 있다(96쪽)"
섬뜩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증오를 조장하고, 타자(인종, 종교, 민족, 성별 등)에 대한 노골적 배제로 타자를 악마화하는 포퓰리즘으로 이성이 마비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것만 같아 더욱 씁쓸하다.
저자는 마지막에서 "현재 미국이 직면한 위기는 18세기 후반 건국 시조들이 만든 낡은 민주주의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며, 미국은 진정한 다인종 민주주의를 형성하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182쪽)"고 언급한다.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뉴스에서 접했지만, 그 기저에 어떤 메커니즘이 존재하고 있었는지 궁금했던 사람들, 아니면 나같이 하루 하루 밥 먹고 살기 바빠서 국제 뉴스에 담쌓고 살았던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무심히 지나갔던 미국 관련 뉴스들이 저절로 보이고 들린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