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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스터, 영원한 방랑자 - 시간의 숲에서 고대 중세 근세의 문화영웅을 만나다
최정은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5월
평점 :
친구의 권유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최정은씨는 단순히 미술사적 개념에 한정되지 않고, 동세대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경유하며, 만화와 소설을 횡단하며 데코룸과 비데코룸의 의미들을 풀어주고 있다. 여기에는 근대성의 문제는 물론이고, 규범과 비규범, 통일자와 타자, 코드와 탈코드의 다양한 맥락들을 연결시켜주는 고리들이 흥미롭다. 한 권의 미술서적인 동시에 인문서적이며, 교양서적인 동시에 문화서적이다. 저자의 관심사의 폭과 능력이 부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아쉬운 대목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개정판에서는 수정되었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다. 저자는 <포카혼타스>의 제국주의적 실제와 전략을 탁월하게 분석한 후 다소 애매한, 저자의 표현을 빌면 양가성이 보이는 <스피릿>을 설명한다. 다소 장황하게 연결되는 <스피릿>의 분석은 사소한 팩트를 알고 나면 차이가 금새 보이는 텍스트다.
저자의 글에서 <스피릿>은 디즈니 계열의 애니메이션처럼 언급되고 있다. (반드시 그렇다고 진술되지는 않지만 다소 혼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스피릿>은 드림웍스의 야심찬 애니메이션이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드림웍스는 <개미>, <슈렉>과 같은 미국 문화에 대한 자기 성찰적이면서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옹호하며 디즈니와의 차별을 선언해 왔다. 심지어 <슈렉>은 디즈니랜드를 비판까지 한다.(그러면서도 미국 문화의 정체성이라는 묘한 공통점 또한 녹아 있다.) <스피릿>이 <포카혼타스>와 다른 지점을 발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아마 디즈니와 드림웍스의 차이에 관해서는 손쉽게 글을 찾아 볼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서구 미술과 텍스트에 나타나는 당나귀(혹은 말)에 대한 장황한 분석에도 불구하고, <스피릿>의 양의성은 드림웍스라는 팩트로 인해 <포카혼타스>나 <미녀와 야수>와는 태생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
때로는 장구한 해석보다는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팩트가 좋은 해석의 토대가 되어줄 때가 있다. 가끔 인문학의 책들에서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언급할 경우 중요한 팩트를 지나치다보니 해석이 필요 이상으로 부풀려지는 것을 볼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종종 그러한 사례를 볼 때마다 안타깝다. 이 책은 탁월하다. 위의 지적이 책의 맥락이나 전체적인 차원에서 결코 해를 입히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사소한 지적이다.
다만 더 치열해지기를, 더 꼼꼼해지기를 바라며 독자로서 하나의 의견을 덧붙이고자 한다.
즐겁고, 황홀하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