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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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을 때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무척 평범한 사람,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날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까 그런 순간과 만났을 땐 잘 알아보고, 한곳에 붙박아둬야 한다는 걸 알 정도로…… 나이든 사람 말이다.

햇빛이 충분치 않은 공간에선 이따금 플래시가 터졌다. 사진기는 펑! 펑! 시간에 초크질을 하며 현재를 오려갔다.

무언가 주자마자 앗아가는 건 사진이 늘 해온 일 중 하나이니까.

문득 유리 볼 속 겨울을 생각했다.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_풍경의 쓸모

한 동안 나 자신이 비리고, 뜨겁고, 미끌미끌한 덩이로 느껴졌다. 이름이 지워진 몇십 킬로 그램짜리 영양 공급 팩이 된 기분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나를 그렇게 대했다. 그게 격려나 존중의 형태였대도 그랬다.

말을 배우듯 난생처음 접한 ‘맛‘들을 하나하나 익혀갔다. 생각과 판단이 깃든 얼굴로, 오물오물 턱 근육을 움직이면서, 생각의 그물 짜기, 감각의 실뜨기를 이어갔다. 그러다 어느 땐 혼자 힘으로 완성한 아름다운 레이스를 펼쳐 보이듯 나를 보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우리 재이, 사람 다 됐네!" 하고 놀려대듯 칭찬해줬다.

위축된 표정으로 또래 속에 섞인 모습을 보니 저 아이가 저 작은 몸으로 벌써 ‘사회생활‘을 감당하고 있구나 싶어서였다.

부모도 자식에게 경외감을 느낄 수 있구나…… 네 안의 어떤 것이 너를 그렇게 만드는 걸까. 그중 내가 준 것도 있을까. 만일 그게 내가 준 것도 네가 처음부터 가진 것도 아니라면 그건 어디에서 온 걸까? 아득한 기분으로 박수 친 기억이 난다.

애가 어릴 땐 집 현관문을 닫으면 바깥세상과 자연스레 단절됐는데, 지금은 그 ‘바깥‘을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하는 모양이다.

가끔 아이 몸에 너무 많은 ‘소셜social‘이 꽂혀 있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온갖 평판과 해명, 친밀과 초조, 시기와 미소가 공존하는 ‘사회‘와 이십사 시간 내내 연결돼 있는 듯해.
_ 가리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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