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편지
이머전 클락 지음, 배효진 옮김 / 오리지널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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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가 두살때 돌아가셨고 아빠는 알츠하이머와 합병증이 점점 심해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떠난 오빠는 수백 킬로미터는 떨어진 자기 사무실에 태평히 앉아서 강건너 불구경이다. 나는 안젤라 파팅턴을 간병인으로 고용한다. 나의 메리 포핀스, P 선생님이다.

어린시절 금지된 다락방을 연다. 이제는 아빠가 어린아이로 퇴행중이고 P 선생님의 업무는 점점 많아진다. 나는 낯선 편지를 발견한다. 절대로 편지를 보낼 수 없는 단 한 사람만 가능한 메시지를 반복하는 세계 곳곳의 엽서. 내가 세 살 때부터 열여덞 살까지 이어지던 편지는 그 후로 끊긴다.

나는 ​인터넷 검색과 오빠가 흘린 단서를 조합해 엄마의 생사여부를 알아낸다. 한편 나의 절친 베스는 그렉과 크리스마스 이브에 결혼한다. 나는 어쩌다보니 산책친구가 되어버린 시미언과 2017년의 마지막 날에 다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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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화자 중 ‘카라’의 이야기는 2017년 말부터 2018년 초. 아빠의 기억을 찾아주려다 발견한 가족의 비밀에서 출발한다. 카라의 아버지는 비밀을 봉인하려고 애써왔고, 그런 아버지를 냉소하며 어떻게든 카라를 지켜주려 하는 오빠 마이클은 남몰래 큰 상처를 품고 있다. 카라는 눈에 띄는 화상 흉터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게 얼마나 가슴아픈 사건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카라가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은 12월의 신부 베스의 이야기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친 애니의 이야기와 맞물려 스릴감을 자아낸다. 한때 언니 우르슬라에 못지않게 당차고 똑똑했던 애니는 조셉의 매력에 홀려 원가족이라는 지옥을 자신이 꾸린 가족으로 대체하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감금된다. 약혼시절 그렉에게 휘둘리는 베스를 보면서 카라는 남몰래 원한을 품지만 그런 카라가 엄마를 원망하는 모습을 보며 독자는 속이 터진다.

아버지의 치졸함을 복붙한 조(조셉)의 일면이 앤(애니)에게는 가장 끔찍한 악몽이다. 그들 부부는 어려서 혹은 시대의 분위기에 휩쓸려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고 아이들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하지만 친정엄마(숨은 빌런)조차 외면하고 갈 곳이 없어진 앤이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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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폭풍을 토로할 수 있는 사람은 결혼을 앞둔 베스와 P 선생님 정도인데, 누군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데 서툰 카라를 보면 마음이 쓰이면서도 답답하다. 카라가 가장 사랑하면서도 그래서 더 서운함을 안겨주는 오빠 마이클의 마음이 차라리 정직하게 다가온다.

결말을 암시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이야기는 끝내 끝나지 않는 질문을 남긴다. 엄마가 어떻게 그래? 진부한 질문이다. 항상 그럴수도 있지,에서 출발하지만 엄마와 딸이 있다면 언제나 딸의 입장으로 기운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애니도 딸로 등장한다. 어쩌면 그것이 저자의 큰 그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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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도 이제 한 번쯤은 외출을 할 자격이 있다. 너무 오랫동안 집에만 있었다. 조도 이해할 것이다. 그가 매주 나가도 한 번도 불평한 적 없다. 돈도 좀 달라고 해야겠다. 콜라 두어 잔으로 파산할 리 없지 않은가. -181p

”그런데 내가 알기론…그렉은 개 싫어하지 않아?“
”응, 아주 싫어하지.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집 안에 진흙 발자국까지 남기니까. 하지만 나는 개를 너무 좋아하고, 그렉은 나랑 결혼했잖아. 그럼 익숙해져야지!“ -4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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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편함의 정체를 생각해본다. 가스라이팅의 여러 사례 중에서 특히 감언이설로 사람을 감금하는 것에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혐오감을 느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가해자가 아주 어리거나 그야말로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를 감금한 그 친구는 마이클처럼 자기 부모가 정말로 무서워서 나를 지켜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 치고는 나중에 다른 무례한 언행을 일삼아서 내가 응징했던 것 같지만.) 카라는 나보다 몇개월 (아마도) 늦게 태어난 또래 여성으로 등장한다. 우리가 어른이된 지금은 어른들이 아이의 마음을 좀더 보살피는 시대이기를.



(오리지널스X헤세드의서재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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