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하는 여자들 - 한국 근대 여성 지식인의 자기서사
장영은 지음 / 오월의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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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여성 지식인의 자기서사

조르조 아감벤은 동시대인의 정의를 진정으로 자신의 시대에 속하는 사람은 자신의 시대와완벽히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나혜석과 부바네스와리는 "진정으로 자신의 시대에" 속했던 여성들이었다. 그녀들은 시대와 정면으로 충돌하며, 그 시대의 본질을 파악했다.
-16p, 출판인과 승려: 김일엽의 고백

여성 지식인에게 글쓰기 혹은 문학이란 사상을 매개하고 실천하는 수단이기도 했지만, 본질적인 측면에서 여성에 글쓰기란, 더 나아가 문학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사상이었다.
-23p, 출판인과 승려: 김일엽의 고백

사회주의는 남성 지식인들의 영역이었고, 여성 지식인들이 그 영역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여성성 혹은 여성 문제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아야 했다.
-47p, 배우와 소설가: 최정희의 다짐

"아직까지 진실한 자서전을 쓴 여성은 거의 없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 속에는 "왜 아직까지 진실한 자서전을 쓴 여성이 나타날 수 없었는자?"라는 질문이 내재되어 있다. 최정희는 진실한 자서전이 여성에게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53p, 배우와 소설가: 최정희의 다짐

여성 지식인이 공적 영역에서 차지할 수 있는 지위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식민지 시기에 시를 쓰고, 강의를 하고, 방송국 작가와 잡지 기자로 글을 썼던 모윤숙은 훗날 "불란서 같은 나라에서는 정치평론을 대개 문화인들이 써서 여론에 호소하는 반면 정치가들도 문화 활동에 적극 참가합니다. 소설 한 줄 안 읽고 '휴매니티'라곤 티끌만치도 없는 정치가가 어떻게 국민을 지도합니까"라는 말로 정치와 문화 활동의 상관성을 주장했다.
-81p, 시인과 로비스트: 모윤숙의 변명

김활란은 40세의 나이에 "이 나라 유일의 여성 최고 학부를, 이제 최초로 우리나라 여성인 내가 책임"지게 되었다는 점에 사명감을 느낀다. 하지만 총독부는 김활란을 "요시찰 인물로 규정짓고 교장직을 박탈하려" 했고, 미국 선교사들이 부재한 이화여전에서 김활란이 교장이라는 지위 하나로 총독부를 상대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121p, 총장과 특사: 김활란의 회한

임영신은 자신이 '여성인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끝내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것을 자서전에서 시인하고야 말았다.
-170p, 장관과 당수, 임영신의 자찬

이화학당 2년 후배인 김활란이 독신 여성이자 이화여전의 교수로 여성 지식인들 사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확보해가고 있었던 데 반해, 박인덕은 파란 많았던 결혼 생활과 이혼녀라는 낙인으로 어쩔 수 없이 해외로 취업을 떠나야 했다.
-188p, 연설가와 농촌운동가: 박인덕의 재기

이화림의 남편은 사회주의 지식인으로 "종종 음식을 만들고 아이를 돌봐"주었지만, 이화림이 "집 밖의 활동"을 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226p, 저격수와 의사: 이화림의 증언

허정숙은 "붉은 연애"라고 불린 동지적 사랑을 일관되게 추구했고, 전향을 하지 않은 이상 결별 이후에도 전남편들과 동지로 지냈다. 하지만 숙청 과정은 잔인했다.
-255p, 혁명가와 관료: 허정숙의 침묵

슥청의 설계자들은 콜론타이와 허정숙과 같은 여성 정치인이 혁명 이후 별달리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261p, 혁명가와 관료: 허정숙의 침묵

여성의 자기서사라는 일관된 주제 안에서 20세기의 한국 여성 지식인의 삶과 글쓰기를 아주 객관적인 시점과 아주 주관적인 시점에서 간접 경험 해볼수 있는 밀도 높은 콘텐츠이다.

취미로는 근처에도 가기 힘든, 다소 묻혀진 역사 그리고 각 챕터의 주인공에 대한 디테일을 이렇게 취미삼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한때는 식민지 조선에서 손꼽히는 지식인이었던 여성들이 가진 행운에 대한 모종의 질투심마저 느꼈지만 그때보다 두 배 정도 살아보니 삶은 길고, 그 점을 활용할 수 있어야 진짜 행운을 누릴 수 있음을 깨달았다. 오랜 덕질에 대한 보답으로 그 행운을 누리고 있는 지금이 소중하다. 끊임없이 지난 세기의 여성들을 재조명해주시는 장영은 선생님을 더 많은 지금의 여성들이 읽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그녀들의 삶은 말 못할 고충으로 가득했을지라도, 어떻게든 말하고자 했던 그 삶을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감사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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