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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가격
가쿠타 미쓰요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0년 8월
평점 :
좋아하는 작가 #가쿠타미쓰요의 에세이집 #행복의가격이 발간됐습니다. 저자는 <가계부 에세이>라고 합니다.
‘런치 977엔’ , ‘교통카드 5000엔+카드지갑 4500엔’ 그리고 ‘기억 9800엔*2’ 등 가계부에 적을만한
제목들이기도 합니다. 나중에는 수입-지출-잔액으로 남는 가계부의 속성상 내용은 잊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기억력은 신기해서 어느 날, 어느 때에 그 가격 혹은 그 물건을 마주하는 순간 그것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주루룩 떠올리게 되기도 합니다.
가격에 얽힌 소소한 이야기들이 표지를 장식한 그림들만큼이나 가득 차 있습니다. 큰 맘먹고 거액을 들여 갔으나 처절하게 실망했던 여행이야기, 너무 끔찍하게 맛이 없어서 가게를 나온 순간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온 것 같은 안도감을 느끼게 됐다는 ‘라멘’ 이야기, 전자제품 판매점에서 홀린듯 커다란 냉장고를 구입했지만, 집에 들이지 못할 정도로 커서 환불한 이야기 등 어찌보면 제 이야기 같기도 하고, 친구의 이야기 같기도 한 이야기들입니다. 혼자 큭큭 웃다가 뭔가 가슴 속이 찌릿해지는 것 같다가 살짝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작가의 글이 담백하고 힘이 있어서(씩씩해서) 좋습니다.
‘작업실 풍경 스케치’같이 시작된 첫번째 글 ‘런치 977엔’은 ‘8시부터 5시까지는 나에게 노동의 시간이자, 밥을 둘러싼 명상의 시간이기도 하다’(p.16)마무리 됩니다.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 독자인 저도 이런 저런 일들을 떠올립니다. 삶에서 1:1로 깔끔하게 떨어지는 것이 없듯이 생각들이 들쑥날쑥 한 것 같습니다만, 덕분에 삶이 다양하고 재미있는 것 아닐까 합니다.
처음에 제목을 들었을 때는 ‘행복의 가격’에 대한 심오한 교훈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올 것 같았습니다만 받고 보니 막힘없이 술술 잘 읽힙니다. 그렇다고 깃털처럼 가볍지는 않습니다. 저자가 일상에서 부딪치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을 읽으며 ‘저의 일상’을 그리고 ‘저의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봤습니다. (착각일지라도) 의외로 비슷하게 생각되는 부분이 많아서 놀랍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돈과 마음의 관계는 때로는 몸과 마음의 관계와 같다는 것이다. 상처받거나 지치거나 힘든 마음 상태가 계속되면 바로 몸에 나타난다. 살이 빠지거나 찐다. 열이 나기도 하고, 얼굴에 뾰루지가 생기기도하고, 휘청거리거나 쓰러지기도 한다. 또 그 반대일 때도 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도 약해진다. 몸과 마음은 그야말로 깊은 관계다.(p.197)
가쿠타 미쓰요의 글이라서 다 좋을거라고 생각한 면도 있습니다만 책을 읽고보니 계속되는 경고의 메세지와 좋지 않은 소식들로 마음이 힘들어지고 있는 이 시기를 조금 위로받은 것 같습니다. 특히 위 문장을 읽으며 지난 두 달 동안 계속 됐던 병원 치료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결국 스스로 견뎌낼 힘이 바닥을 치자 몸이 아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엊그제 병원에서 그만와도 된다고 관리 잘하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몸과 마음은 그야말로 깊은 관계입니다.
‘작가 후기’가 앞 선 모든 이야기를 정리해 줍니다. 끝까지 읽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