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의 바다 Project LC.RC
김보영 지음 / 알마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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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화학자 한우진의 고발편지로 시작된 이 작품은 그가 ‘공포에 기력을 빼앗겨 죽게 되리라는 예감’(p.145)에 적중한 듯 보이는 비명을 끝으로 마무리 됩니다.
이 길지 않은 이야기의 첫 장면은 새벽녁 청량리역 대합실 입니다. 주인공이 조카와 여행을 떠나기 위해 찾은 이 곳에서 행선지의 지진 소식을 듣습니다. 이미 여행에 들떠있는 아이의 귀에는 들리지 않고, 앞서가는 아이를 따라 주인공도 기차에 올라탑니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 갑자기 삼년후,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추격전이 벌어지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마치 지금의 상황을 비춰주듯이 역병이 퍼진 곳. 다만 ‘혜원 마을’만이 역병에 점령당하고 지진 때문에 무너진 시 경계 너머로는 역병이 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립된 마을. 자가격리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
오늘과 같은 ‘절망적인’ 혹은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경찰은 아니지만
이 마을에 눌러앉아 일손이 부족한 경찰을 도와 자경단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진이 유독 사나운 것 같은 어느 날 외지에서 멀끔한 사람이 마을에 들어옵니다. 남들이 기피하는 주제를 연구하여 주목받고 싶은 연구자. 그는 이미 환자들을 ‘괴물’로, 세간에서 이야기하듯 그들이 마치 그런 형벌을 받아도 마땅한 죄를 지었다고 이미 결론을 낸 듯합니다.
그 지역의 유일한 병원 원장의 비리, 이제는 비확진자가 드물어져 버린 마을. 물이 고여 썩어가듯 그렇게 이 지역의 시간은 고여버린 듯 했습니다. 그 병의 실체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이후 주인공이 마침내 발견하게 된 그 병 혹은 이 상황의 근원에는 인간의 미천한 감각으로는 발견하지 못했던 거대한 이형의 존재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어떤 목적이나 욕망도 없지만 존재하는 자체가 커다란 위협이고 그로부터 퍼져나오는 것들이 이 마을을, 인간을 근원부터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 존재를 없애기 위해 주인공은 바다로 나아갑니다. 이 이야기는 짧은 만큼 충격이 강렬했습니다. 기에르모 델 토로 감독이 아름답게 그려낸 ‘쉐이프 오브 워터’의 공포 버전이라고 할지, 중반 이후 그 영화가 계속 ‘소름끼치게’ 떠올랐습니다.
뭣보다 추격전을 읽다가 허를 찔린 게..저는 당연히 쫓고 있는 쪽이 ‘남성’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삼년 전 장면에 등장한 건 여성이었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제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 무척 단단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무리 안 그런척 해도, 제가 여성이어도 수십년간 머리에 박혀버린 고정관념은 힘이 셉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의 책들을 더 읽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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