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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일기 - 우리가 함께 지나온 밤
김연수 지음 / 레제 / 2019년 7월
평점 :
지난 십 년 동안 쓴 글을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내는 지금, 어떤 글이 내가 쓴 글이고, 어떤 글이 저절로 쓰여진 글인지 구분할 수 없다. 이렇게 또 하나의 시절에 마침표를 찍는다.(p.9)
그러니까 저자가 10년 동안 쓴 글을 묶은 책입니다. '일기'라고 생각했을 때 보통 떠올리는 글과는 조금 다릅니다. 어떤 시간을 메우는 행위로 '읽고 쓰기'를 선택했다고 이야기하지만, 저자가 작가가 되기 이전부터 쌓아온 그 시간들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할말이 너무 많아서 정말 곤란합니다. 정리가 안되지만 정리하자면 특히 제 마음에 울린 지점은 아래와 같습니다. 뭐, 거의 다 입니다.
* 일기 쓰기: 보여줄 목적도 남겨둘 목적도 아닌 그냥 '뭔가를 쓰는 행위'
* 세월호: 우리 모두의 상처, 이런 세상이라니, 그러나 진실의 반대는 망각!
기억해야 한다.
* 깊은 독서: 글만 쫓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세계, 작가가 숨겨둔 세계도 볼 수 있어야 함
* 사랑의 단상(롤랑바르트)
* 인생무상: 다녀가는 존재
* 문학이 애도할 수 있는 한계
* 텍스트안에서의 사고: 읽고 쓰기
* 그럼에도 중요한 비문자적 요소
* 종이책과 전자책
* 화가의 시선과 일반인의 시선: 관점의 차이. 경험의 차이
* 그외의 여러가지 학술적인 글
* 그리고 짧은소설
* 개인의 삶과 역사의 연속성
단연 인용하는 참고문헌들이 무척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일일이 표시를 하면서 읽었습니다. 그렇지만 과연 정리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습니다. 이런! 한 페이지에 ‘참고문헌’ 목록이 정리되어 있는 겁니다.
이 얼마나 친절한 책인지..라는 생각도 잠시. 세상에 아직 읽지 못한 책, 읽고 싶은 책 그리고 읽어야 할 책이 이렇게 많다니..다 읽는 다는 건 정말 야무진 꿈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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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고통앞에서 문학은 충분히 애도할 수 없다. 검은 그림자는 찌꺼기처럼 마음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애도를 속히 완결지으려는 욕망을 버리고 해석이 불가능해 떨쳐버릴 수 없는 이 모호한 감정을 받아들이는게 문학의 일이다. 그러므로 영구히 다시 쓰고 읽어야 한다. 날마다 노동자와 일꾼과 농부처럼, 우리에게 다시 밤이 찾아올 때까지.(p.49)
이 세계는 늘 그대로 거기 있다. 나빠지는 게 있다면 그 세계에 비친 나의 모습일 것이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의문은, 그렇게 해서 마침내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p.143)
이 인생에서 내가 제일 먼저 배웠어야 하는 것은 '나'의 올바른 사용법이었지만, 지금까지 그걸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걸 모르니 인생은 예측불허,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p.153)
소설은 꿈과 같은 것이라, 글로 쓰여지기 이전의 실제 이야기가 없다. 대신 꿈이 해석되어야 하듯 소설 문장들은 모두 해독한 독자에 의해 한 번 더 해석되어야만 한다. 작가는 독자의 이 능력을 믿기 때문에 터너와 마찬가지로 해석될 것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 (p.233)
우리는 움직이는 한 자신이 소망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다고, 여기에는 조금의 의심도 없습니다.(p.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