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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오렌지나무 (40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22년 9월
평점 :
한동안 인터넷 사이트 가입할 때 비밀번호 분실 시 확인 란에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은 책은?’ 이라는 질문으로 ‘나의라임오렌지나무’라는 답을 설정해두곤 했었다. 어릴 적에 읽을 때에도 제제의 순수한 마음과 아려오는 마음과 슬픔이 많이 느껴졌었는데, 마침 5살 아이를 키우면서 이 책을 읽으니 이건 그저 ‘슬픔 그 자체’ 였다. 새벽에 ‘조금만 읽고 자야지.’ 마음먹었다가 결국 2시가 조금 넘을때까지 완독을 했고, 3시가 넘도록 울다 잠이들어서 아침에 남편이 벌에 쏘였냐고 깜짝 놀랐을 정도니 말 다했다.
어릴 때는 이 정도로 슬프지 않았는데, 5살 남자아이의 순수함을 키우면서 직접 겪고 나니, 감수성 풍부하고 조금 성숙한 어린 아이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고 느껴졌다. 이 책이 완전히 허구였으면 나도 덜 슬펐을텐데,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니... 신이 있다면 해도해도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 가족이 감당해야하는 가난이라는 현실, 그래서 호기심 많고 영리하고 장난기 많은 5살 남자 아이에게 요구되는 ‘철없이 행동하지 않기’. 크리스마스 이브에 온 가족의 굳은 얼굴과, 성탄절 아침에 선물 없이 비어있는 신발을 보고도 내색하면 나쁜 녀석이 되어버리는 분위기. 말썽 부리다가 매맞기 일쑤고, 그래서 늘 자신은 악마라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사는 아이. 그러면서도 자신보다 어린 ‘루이스’라는 동생을 돌보며 천사같다고 보살펴주려는 마음과 자신보다 어려운 친구와 크림빵을 나눠먹는 예쁜 마음을 가진 아이.
이 아이가 학교에서는 담임 선생님의 빈 화병에 꽃을 꽂아주는 유일한 존재이자, 뽀르뚜가 아저씨에게는 한없이 맑은 순순한 친구인데 왜 가족들은 아이의 예쁜 면을 보지 못하고 자꾸만 자존감을 땅바닥에 내리꽂는가. 속상해서 혼이 났다. 그나마 자신을 알아주던 글로리아 누나는 24살에 생을 마감하고, 자신을 잘 따르던 동생 루이스도 20살에 생을 마감하고, 무엇보다 5살이 감당하기 힘들었던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주는, 가장 사랑하는 마음 속 아버지’ 뽀르뚜가 아저씨의 죽음...
억울하게 혼이 나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깊고 깊은 슬픔을 겪으며, 마음 속 작은 새도 날려보내고, 항상 같이 대화하던 라임오렌지나무 밍기뉴와도 작별 인사를 하면서, 그렇게 아이는 철이 들었다.
‘왜 아이는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라는 작가의 물음을 나도 똑같이 묻고 싶다. 왜 이 어린 아이에게 철들기를 강요하는가. 아직은 떼도 쓰고 고집을 부려도 한없이 사랑과 가르침을 받아야 할 나이인데, 감당하기 힘든 시련을 주는 세상이 너무 가혹했다.
아직도 브라질에는 악마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라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 아이들은 꽃으로도 때리면 안된다. 한없이 사랑하고 보듬고 아껴주어도 그것보다 빛나는 존재가 아이들이다. 아직도 책의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이제야 내가 작가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나보다. 그 마음을 5살 아이가 감당해야 했다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벌에 쏘인 얼굴이던 말던 오늘은 한바탕 울어야겠다.
제제가 하늘에서 뽀르뚜가 아저씨를 꼭 만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