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있는 여자 박완서 소설전집 11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1995년 4월
평점 :
품절


 인물들이 너무나  정형화되어 있고, 시각이 고루하다는 씁쓸함에 책을 읽다가 초간 연도를 보니 95년이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작품연보'를 보니 1982년에 [떠도는 결혼]으로  먼저 발표 되었다고 나와 있다.  그럼, 그렇지.... 오해를 좀 덜어낸다.  '여성'에 대한 담론은 10년과  20년의 차가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근본적 문제'라는 것은 거의 변하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문제의식'과 사회와 남성의 의식과는 무관하게 여성 스스로의 '자아관'  '자존감' 만큼은 많은 변화가 있다고 본다.

 '연희'와 그의 엄마 '경숙'의 결혼 생활은 언뜻 보면 남편과 인습에 '독립'과  '의존'으로 다르게 살아가는 듯하지만 우리 사회와  남성들이 내심 바라 맞이않는 '아내'의 역할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인생이 휘둘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경숙이 주입된  여성관에 기꺼이 동참하는 '길들여진  남성' 이라면, 연희는 주입된 여성의 삶에 몸서리치며 결국 결혼에 있었어도  '사랑' 보다 '남녀평등'에 더 가치를 부여하며 '독립된 여성'으로 살고자 한다.

경숙이 이혼으로 가지 않은 것은 애초에 그런 의지도 없었거니와 친구들의 이혼 모습에 낙담했기 때문이다. 소위 잘 나가는, 돈 많고 직업 번듯한 이혼녀들은  남편의 부재가 인생의 결정적 결함이 되고 있다. 또 연지가 만난 여권 운동가는 사회적 성공과 집안의 행복을 바꾼 가해자이며, 유일하게 행복한 모습으로 언급된 여성은 남편의 사랑과 존중을 받으며 내조에 헌신한 연극인의 아내이다. 여기에는 작가의 시각이 은연중 개입된 듯하다.  내로라는 여성들의 성공에 숨은 허위와 가식을 꼬집고 싶어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들이 이 사회에서 받았을 상처와, 힘겨웠을 뒷면은 왜 보지 않는지,  여성의 신성한 의무는 가정에 있다고 유전자에 박혀 있는지....위 세대의 이런 시각이 오늘날  '슈퍼우면 컴플렉스'를 심어준게 아닐까? 자아실현을 위해서는 독신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무장한 전사가 되게 하는 게 아닐까?

연지의 남편 같은 남자, 슬프게도 흔하고 흔하다.  남자는 공부 중이거나 구직 중이고 여자가 경제를 떠 안고 있다.  물론 여자 쪽에서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결혼들이다. 그러나 결혼 전의 가사분담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 남자는 없다. 치열하게 싸우기도 전에 대부분은 여자가 먼저 포기한다. 여자 스스로 가사를 당당히 요구하는 것 보다 주입된  아내의 역할에 충실하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다. '고무장갑 끼고 주방에 있을 때면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 하던 백수 남자의 말과 때론 황당하게 당당하던 여자는  '남편 기죽이기 싫어서'라며  번 돈으로 정말 기죽지 않게 하려고 비싼 옷에 출퇴근하는 자신의 경차는 버리고 남편에게 중형차를 사 주던 모습이 생각난다.

아내, 남편, 엄마 ...이전에 행복해야 하는 고유한 인격체이며, 자유롭게 관계하고 사랑하며 이해 받을 권리가 있는 인간이다. 관계 속에서 자신의 빛갈을 잃지 않므며 살기 위해서는 독립된 개인이 먼저 되어야 한다. 그 개인들의 에너지가 모여야 우습지도 않은 신화의 벽을 우습게 만들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