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 고정희 유고시집 창비시선 104
고정희 지음 / 창비 / 199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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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고정희 시인이 지리산에서 실족사 했다는 TV뉴스가 아직 생생하다. 비가 많이 온 다음날이었다.기자 뒤로 맹수떼같이 밀려오던 계곡물 소리가 섬짓했던 기억도 뚜렷하다. 시인의 시집을 만나지 못하던 때였다.

물론 시들은 가끔 봤지만 관심이 가지 않았다. 시가 아니라 구호였다. 시를 가장한 그런 구호들에 내심 분개하고 있었다. 참여시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김수영, 신경림, 하종오,박노해, 도종환,,, 이런 분들의 시는 시를 거의 읽지 않던 내게도 감동이었고 칼날같은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문학적 깊이나 고민, 향기 없이 구호의 나열을 시라고 내 놓은 것을 보면 왠지 낯이 뜨거워 졌다. 문학에 대한 모독처럼 생각되었다. 문학이 별거라고...지금 생각하니 부끄럽다.

이틀 동안 들고 다니며 처음으로 고정희 시인의 시들을 진지하게 읽었다. 그러면서 후회했다. 진작에 그녀의 시들을 읽어 볼걸....구호같은 시들이 유연한 리듬으로 노래처럼 읽히는게 신기했다. 지어서 외치는 언어가 아니라 그냥 쏟아내는 탄식같은 노래가 마력적이었다. 

여성의 아픔을 이렇게도 솔직하게, 연민으로, 같이 울어주는, 대신 울어 주는 시들을 썼구나...우리 나라의 아픔과 모순을 너머서 아시아를 끌어안고 있는 그녀가 어색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아픔들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적한 말과 방법으로 시대를 정직하고 열정적으로 타협하지 않고 살았다.시인의 다른 시들도 읽어 보고 싶다. 

그 어디에서 편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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