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트 옵션 - 탈기독교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선택
로드 드레허 지음, 이종인 옮김 / IVP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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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올해 3월에 IVP를 통해 국내에 출간된 <베네딕트 옵션(Benedict Option)>은 미국에서 “2017년 3월 출간 즉시 화제를 일으키며 아마존 서점에서 기독교 윤리, 정치&사회 이슈 등 여러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책”이다. 이렇게 흥행에 성공한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제목만 들어서는 어떤 책인지 알 수가 없는데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저자도 생경한데 누구인지 등 떠오르는 여러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책을 펼쳤다.

먼저, 저자가 궁금했다. 로드 드레허(Rod Dreher)는 미국의 대표적인 자유보수 언론매체인 ‘더 아메리칸 컨서버티브’의 선임 편집인이자 작가이다. 대학에서 언론학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종교, 문화, 정치를 넘나드는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감리교인으로 자라 가톨릭을 거쳐 현재는 그리스 정교회 신자로 살고 있는 그의 종교적 이력은 에큐매니컬한 글을 쓰기에 적합한 것처럼 보인다. 그의 여러 책들 중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이 책은 그의 다양한 특징들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책의 제목인 <베네딕트 옵션>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이 제목은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암시하고 있었다. 6세기, 청년 베네딕투스(Benedict)는 전도양양한 젊은이들이 교육을 마치기 위해 향하던 로마에 도착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범죄와 부패에 물든 로마에 큰 충격을 받고 혐오감을 느껴 숲과 동굴로 들어가 3년 간 기도하고 관조하는 삶을 살았다. 이후 베네딕투스는 동굴에서 나와 수도원장이 되어 열 개의 수도원을 세우게 된다. 그는 수도승과 수녀들이 그리스도께 성별된 검박하고 질서 있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작은 책자를 집필했고, 그게 ‘성 베네딕투스의 규칙’이라 불리게 되었다(33~34p). 베네딕투스가 보인 혼란스런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께 신실한 모습을 결코 잃지 않는 모습을 오늘날에 주목하여 그 정신과 기조, 태도를 ‘베네딕트 옵션’이라 부르고 있다.
로드 드레허는 이렇게 성 베네딕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로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의 <덕의 상실(After Virtue)>을 언급한다. 매킨타이어는 그의 책에서 오늘의 문화적 시기를 서로마 제국의 몰락에 비유하며 복구가 어려운 정도의 심한 몰락에 처한 로마 사회에 대해 성 베네딕투스가 한 선택, 그 사회를 떠나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한 행동을 매킨타이어가 주목한데서 착안해 ‘베네딕트’라는 ‘옵션’을 책의 주제로 삼는다. 매킨타이어에 따르면 “정의주의(모든 도덕적 선택은 개인이 옳다고 느끼는 바를 선택하기를 표현하는 것일 뿐이라는 발상)에 지배당한 근대 서구 사회에서는 개인의 의지를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것이 최고선으로 여겨지는데 반해, 덕이 지배하는 사회는 객관적인 도덕적 선과 그러한 선을 공동체에 구현하기 위해 인간에게 필요한 실천에 대한 신념을 공유하는 사회(36p)”이다. 덕을 상실한 시대는 야만주의의 상태와 다름없으며, 근대 서구는 야만주의 지배하에 사는 사회로 진단된다. 그렇기에 현대에서는 ‘덕 있는 삶을 영위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는 것에 힘쓰기를 매킨타이어는 요청한다. 청년 베네딕투스가 실천했고, 매킨타이어가 강조한 ‘암흑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이 세워가는 대항문화와 정신, 그리고 전략’을 이 책에서는 ‘베네딕트 옵션’이라 말한다.

세 번째, 그렇다면 ‘베네딕트 옵션’에서는 무엇을 다루고자 하는지 궁금했다. 그것은 올바른 ‘진단’과 적합한 ‘대안’이다. 로마에 실망한 베네딕투스와 정의주의에 빠진 근대 서구를 꼬집은 매킨타이어처럼 현재에 대한 적절한 이해와 진단이 필요하다. 더불어, 로마를 탈피해 ‘수도원’을 만들고 ‘규칙’을 세운 베네딕투스와 야만주의를 벗어나 ‘덕 있는 새로운 공동체’를 세울 것을 강조한 매킨타이어처럼 구체적인 대안 전략이 뒤따라야한다. 그렇기에 이 책 <베네딕트 옵션>에서는 서구 사회에서 대두되는 다양한 주제들과 그에 따른 기독교 공동체로서의 문제 진단 및 대안전략에 매우 충실하게 임한다. 미국사회의 정치(4장), 교회다운 문화 보전(5장), 신앙전수를 위한 공동체(6장), 그리스도인 형성으로서의 교육(7장), 급변하는 사회에서의 일과 노동(8장), 성에 대한 이슈(9장), 기계, 기술의 발전(10장)과 같은 매우 구체적인 주제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현대 사회를 살아갈 때 고민하게 되는 것들이다. 서구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던 기독교가 급속도로 몰락하는 것을 가까이서 목격하고 있는 로드 드레허 입장에서는 이런 주제들의 선택이 비교적 쉬운 작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양한 영역들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대안적 태도와 삶의 모습은 결코 쉽게 행동할 수 없는 것들이다. 즉, 상당한 결단과 헌신이 뒤따르는 선택이다. 로드 드레허가 제시하는 대안들은 보수기독교적 태도를 기반으로 한 신앙고백의 일환이며, 그런 선택들이 현대에서 성 베네딕투스로 살아가기 위한 방편들이라고 믿는다. 개인주의화 되고, 불신앙이 지배하는 서구사회의 극심한 위기에서 그가 제시하는 대안들은 매우 급진적으로 다가온다. 이런 ‘진단’을 통한 위기의식 공유와 급진적인 공동체적 ‘대안’ 제시가 이 책이 미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이유로 보인다(그들은 자신들의 근간으로 자리하던 기독교의 존폐위기에서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진단과 대안에 목말라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진단’과 ‘대안’들이 우리 한국사회에서도 유효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나의 경우 상당 부분을 공감하며 읽었지만, 몇몇 주제에서는 동의되지 않는 세부 적용들도 있었다. 급변하는 서구 사회 속에서 눈에 띄게 위축되고 있는 기독교에 대해 보수적인 관점으로 대안을 제시해 가는 저자의 배경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기독교와 연결점을 보임과 동시에 차이점도 나타내고 있다. 예를 들면, 파편화된 서구 사회에는 없는 유교문화(혹은 유교문화에서 비롯된 공동체문화) 같은 것들이 한국사회에는 존재하기 때문에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진단과 대안은 반드시 우리만의 것들로 재해석 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한국사회 안에서의 재해석뿐만 아니라 저마다 이루고 있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재해석으로까지 이어질 때 비로소 책이 주는 의미를 온전히 흡수하게 되는 것이라 믿는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에서 기독교 공동체로서 살아가기 위해 숙고해봐야 할 중요한 것들을 상당히 많이 제공받을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의 베네딕트 옵션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면서 그리스도 공동체를 세워갈지’, ‘다음세대 아이들에게 물려줄 유산은 무엇일지’ 같은 질문들을 던지며 이 책을 읽게 될 때, 우리는 우리만의 베네딕트 옵션을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세상에 있지만 세상과 다른 공동체가 되어가는 우리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풍성해 질 것들을 기대해본다.

“베네딕투스의 사례는 오늘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자신의 시공간에서 맞이하는 도전에 창조적으로 응답하고자 하는 작은 무리의 신앙의 동지들이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철저하게 열어 그들을 통해 흐르는 은혜를 나르는 통로가 됨으로써 또한 그 은혜를 특별한 삶의 방식으로 구현함으로써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가를 시사하기 때문이다(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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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방탕한 사역자의 노트 - 신학교 교수, 목사에서 트럭운전사가 되기까지
Chad Bird 지음, 장영 옮김 / 그리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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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인 신학생, 성실한 목회자의 길을 거친 후 31살 나이에 히브리어와 구약성경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가 된 자. 아들과 딸 두 아이의 아빠이자, 사랑스런 아내의 남편이었던 자. 앞날이 창창하던 그가 불륜에 빠진 뒤 이혼, 퇴직, 성직자 사퇴, 예약 강연 취소, 출판 중단 등을 겪으며 삶이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사랑하는 아이들과는 격주로만 만날 수 있게 되었고, 희망처럼 다가온 여인과의 재혼은 7개월 만에 끝나버렸다. 이런 삶을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채드 버드(Chad Bird)는 이 일들을 직접 겪었다. 가족이 모두 떠난 후 트레일러 운전사가 된 그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쓴 글이 <어느 방탕한 사역자의 노트>이다.

저자의 독특한 이력은 이 책에 관심가지기에 좋은 요소 중 하나다. 그러나 그것이 이 이 책의 중심 요소는 아니다. 그의 잘나가던 시절의 영웅담이나 나락에 떨어진 뒤 맞이한 극한의 상황 나열은 이 책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저자는 자기를 설명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간단명료하게 제시할 뿐 이다. 목적이 분명하다.

나의 관점에서 이 책의 돋보이는 점을 세 가지로 정리해보았다.

첫 번째는 바로 최악의 상황에서 그가 경험한 감정, 심리상태에 대한 묘사부분이다.
“우리 삶이 자멸하는 행위로 부서졌을 때, 빛은 우리를 당황케 하고 두렵게 하지만, 어둠 속에서 우리는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안전하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가 한 일들의 충격을 피해 숨을 수 있고, 우리 삶을 여전히 약간이라도 장악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으며,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심지어 어둠을 꾸미기 시작한다(31p).”
“설상가상으로, 하나님은 나를 버리셨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내가 하나님을 버렸구나. 아니, 우리 둘은 서로 상대방에게 질려버렸구나. 이것들 중 어느 것이 진실에 더 가까운지 몰랐다(50p).”
그의 표현들을 읽어가다 보면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삶이 수렁에 빠졌다고 생각했을 때가 있다. 그 순간에 내가 경험했던 그 감정을 저자가 고스란히(혹은 유사하게) 표현해 주는 것을 보게 된다. 나 혼자 그런 생각, 감정을 겪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공감과 위로를 받는다.

두 번째는 삶의 위기의 순간에 성경에서 지혜와 진리를 발견한 저자의 태도였다.
그는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실패자들의 모습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우리 안과 주위 모든 곳에 만연해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성경은 남자들과 여자들의 이야기에서 가면을 벗겨 그들의 참된, 죄 많은 정체를 드러낸다. 그 때문에 우리는 그 이야기들 안에서 우리 자신들을 볼 수 있다(111p).”
또한 저자는 고통을 표현할 방도로 만난 ‘시편’을 통해 예수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탕자의 비유에서 우리의 처절한 회개보다 앞서는 하나님의 용서를 발견하기도 한다.
“나는 시편의 좌절, 두려움, 분노와 공감했다. 옛 말들의 생생한 소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 밤 늦게, 나와 함께 그리고 나의 내면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들리지 않는 음성을 듣기 시작했다(60p).”
“이 완전한 용납의 순간이 회개의 순간이었다. 그 아버지의 포옹은 이 아들의 부활의 날이었다. 아버지의 사랑이 그를 회개하게 했고 회복시켰다(131p).”
고통의 순간, 하나님이 어디에 계신지 수없이 질문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셨음을 그는 삶에서 경험했다.

마지막으로는 각 챕터마다 실패의 순간을 해쳐 나오며 깨달은 바를 다룬 점이다.
저자는 ‘이런 문제에서는 이런 처방이 필요하다’는 식의 해결사적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영혼의 침체기에서 발버둥을 치는데 도움을 주었던 것들을 노트에 필기하듯 담담히 적어나갈 뿐이다. 그것들이 모여 각 챕터마다의 주제가 되었다.
+자기창조를 통해 생성된 우리는 죽고, 하나님의 재창조가 이루어지기.
“나는 나의 자기창조에 무관심해져 갔다. 이것이 우리를 무로 만드는 죽음이다. 우리가 자기창조에 들인 모든 수고가 없어지면서, 하나님은 이제 무가 되어버린 우리로부터 창조하시는 그의 일을 계속 해 나가실 수 있다(43p).”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용서.
“우리가 또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용서는 우리 것이며 또한 여전히 우리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로지 그리스도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80p)”
+애정어린 환대.
“(”왜 엄마를 속이고 바람 피웠어요?“라는 질문을 하는 14살 딸에게 나의 교만, 나의 자아, 나의 부정에 대해 거짓 없이 말했다.) 딸은 나를 용서했고, 나를 포옹했으며, 우리 둘은 함께 울었다. 이렇게 나는, 자유는 내가 나 아닌 어떤 사람인 체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나를 용납하는 어떤 이의 애정어린 환대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배웠다(117p).”
+예수 안에서의 진정한 회개.
“우리는 예수 안에서 자유롭다. 우리는 선한 행위와 용납하실 만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을 달랠 필요가 없으며, 비난, 죄책감, 징계, 분노의 속박에서도 풀려난다(134p).”
+교회 공동체.
“교회 내 결점은 우리 마음의 결점을 반영한 것이라고 여길 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니까 이러한 상한 사람들, 그 달갑지 않은 사람들의 공동체가 정확히 예수께서 사랑하고 용서하려고 일하시는 그 공동체라는 것을 우리가 깨달을 때,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144p).”
(더 많은 내용들이 궁금하다면 책을 직접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잘 읽히게 쉬운 언어로 쓰인 책이지만, 저자의 경험과 다루는 내용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한 사람의 참담한 실패 경험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과, 그 실패를 극복한 경험은 하나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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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이와 나
프란체스카 산나 지음, 김지은 옮김 / 미디어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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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환경의 적응과정에는 두려움이 동반된다. 감당되지 않는 두려움은 새로운 환경을 떠나게 하기도 하고, 수용 가능한 두려움은 적당한 긴장감을 주어 적응력을 높이기도 한다.

그림책 “쿵쿵이와 나”(프란체스카 산나, 2019)는 새로운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이야기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주인공에게는 ‘쿵쿵이’라는 꼬마 친구가 있는데, 이 쿵쿵이는 주인공을 돌봐주고, 새로운 걸 찾아다닐 때면 꼭 붙어 다니는 친구였다. 주인공이 새로운 나라, 새로운 학교에 가게 되었을 때 쿵쿵이는 더 이상 꼬마 친구가 아니라 커지고 더 커져 큼지막해졌다. 그러던 중 슬며시 다가온 한 친구와 친해지고 나서야 그 친구에게도 ‘쿵쿵이’와 같은 비밀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쿵쿵이는 날마다 더 작아졌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자기만의 비밀 친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며 이야기는 끝난다.
‘쿵쿵이’로 표현된 꼬마 친구는 두려움, 불안, 긴장, 염려 등으로 이름 지을 수 있다. 돌이켜보면 새로운 환경에서 생기는 두려움은 어릴 때 일수록 더 심했던 것 같다. 이 책에서는 그런 어린이들의 입장과 상황을 충분히 공감하며 세밀하게 표현한다.
이 ‘쿵쿵이’는 상황에 따라 커지기도하고 작아지기도 한다. 커진 ‘쿵쿵이’는 나를 통제해 더 고립되게 만든다. 하지만 먼저 다가와준 친구와 함께 하면서 ‘쿵쿵이’는 작아지고 내가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두려움은 항상 같은 크기로 있지 않다. 두려움의 크기를 내가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만드는 것도 삶을 살아가는 지혜 중 하나이다.
무엇보다 ‘쿵쿵이’와 같은 비밀 친구가 내게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친구들에게도 있다는 걸 깨달으며 위로를 얻는다. 이런 두려움을 나만 가진 게 아니라 다른 친구들에게도 모두 있다는 것은 동질감에서 오는 위로를 선물해준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자연스럽고 일반적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이 작은 그림책은 새 학년, 새 환경에 적응하는 아이들이 읽고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하지만 성인인 나에게도 위로가 되는 책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해야 할 때 이 책을 한 번 더 읽어볼 참이다. 내게 있는 비밀친구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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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과 성품
스탠리 하우워어스 지음, 홍종락 옮김 / IVP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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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한민국 기독교인들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대부모(godparent)-대자녀의 관계를 배경으로 한다. 친구 새뮤얼 웰스로 부터 그의 아들 로렌스 베일리 웰스(이하 로리)의 대부가 되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대자 로리의 세례 기념일(10월 27일)마다 그 나이에 적합한 ‘덕’을 다루며 쓴 편지를 모은 책이다.

1. 책의 구성

1) 센스 있는 표지 디자인
앞표지를 열면 길게 이어진 뒤표지가 내지를 감싸고 있다, 편지봉투 디자인을 한 이 긴 뒤표지를 열어야 본문을 읽을 수 있다.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로리에게 보낸 편지라는 이 책의 특징을 디자인에서 잘 드러냈다. 책을 펼칠 때 마다 내가 그 편지의 수신인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2) 본문 특징을 충실히 살린 번역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회고록인 ‘한나의 아이’(IVP)를 번역한 홍종락 전문번역가가 이 책을 번역했다. 그는 IVP와 ‘하나님이 내게 편지를 보내셨어요’ 시리즈도 함께 작업했었는데, 그 때 어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편지글 번역에 탁월함을 보였었다. 스탠리 하우어워스를 잘 아는 번역가가 편지글 특유의 따스한 문체까지 살린 책이 “덕과 성품”이다.

3) 미덕이라는 주제
가치 있는 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현대사회에서 신자인 어른이 세례를 받은 어린 아이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점은 무척이나 놀랍다. 그는 현대사회의 어른들처럼 공부 잘하는 법, 성공하는 법, 좋은 대학이나 직장에 들어가는 법을 전수하지 않는다. 다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데 중요한 덕”을 소개할 뿐이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유지·발전시켜나갈 덕을 공유한다.

2. 책의 내용

2003년부터 2016년까지 매해 로리의 세례 기념일(10월 27일)에 보낸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편지에는 ‘좋은 삶을 일구는 핵심 미덕 14가지’가 소개되어 있다. ‘자비, 진실함, 우정, 인내, 소망, 정의, 용기, 기쁨, 단순함, 한결같음, 겸손(과 유머), 절제, 너그러움, 믿음’이 그가 꼽은 14가지 중요한 미덕이다.
이 편지들이 아이인 로리에게 보내지긴 했지만 내용의 깊이는 어른이 이해할 수 있게 쓴 글이다(73p). 이 말을 바꿔말하면 내 자녀에게 이 책을 건네기 전에 내가 먼저 읽어야 한다는 뜻이자, 또 다르게 표현한다면 삶의 다양한 경험과 고민이 축적된 사람일수록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덕’을 강조한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사상이 농축된 이 책은 덕목에 관한 진리들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우선, 각 덕목들은 저마다 고유한 가치와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다.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매해 한 가지의 미덕을 주제로 삼아 그 점들을 꼼꼼히 제시한다. 그리고 각 덕목들은 다른 덕목들을 필요로 한다. 미덕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하나의 덕목이 온전히 그 덕목의 가치를 발현하기 위해서는 다른 덕목의 힘을 의지해야 한다. 더불어, 각 덕목들의 가장 중요한 근간은 하나님의 성품 혹은 하나님의 말씀(성경)이다. 이는 덕목들이 스탠리 하우어워스 사견의 수준을 뛰어넘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눈여겨 본 부분은 덕목마다 함께 하는 좋은 친구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그가 다른 저작들에서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강조해 온 것과 일맥상통한다. “나는 네가 어려움 없는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네가 직면하는 어려움이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가 된 일에 반드시 따르는 어려움이기를 바란다. 그런 어려움을 감당하려면 많은 친구가 필요할 거야. 이 세상에서 친구보다 더 귀중한 선물은 없음을 네가 발견하면 좋겠구나.(49p)” 덕목들이 서로 기대어있듯 우리 역시 친구들에 기댄 존재들이다.

3. 책을 덮으며

이 책은 새 마음으로 시작하는 새해에 최우선으로 읽을 만한 책이다.
스탠리 하우어워스 글을 좋아하는 사람, ‘덕목’의 가치에 관심 있는 사람, 내면을 어떻게 가꾸어가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책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이 편지들에 담긴 덕에 대한 설명이 네가 진리에 머무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구나(213p)”
새해에는 미덕들이 좀 더 함양되는 나날들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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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로 사는 이유
에버하르트 아놀드 지음, 김순현 옮김 / 비아토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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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현대인들의 특징 중 하나인 개인주의. 언제부터인가 ‘인간의 존엄’과 ‘자기결정’의 가치를 중시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나 자신만을 위하는 태도’로 개인주의가 자리잡아 버렸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몸 된 지체를 사랑하도록 부름받은 기독교에도 이런 개인주의가 깊숙이 침투한지 오래다.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뒤로한 채 나만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을 현대 기독교의 큰 문제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이런 작금의 상황 속에서 사도행전 2장과 4장의 모습을 재현하고자 모인 순전한 공동체가 있다. 바로 대표적인 기독교 공동체로 알려진 ‘브루더호프’다. 현재 브루더호프는 20개 이상의 공동체를 유럽과 미국, 호주와 남미 등에 두고 있다. 여러 나라·인종·계층 출신의 구성원들이 모여, 사유재산 없이, 매일 함께 노동, 식사, 기도, 예배, 찬양을 한다.

‘공동체로 사는 이유(에버하르트 아놀드, 비아토르)’는 브루더호프의 창립자인 에버하르트 아놀드가 ‘공동체 생활을 기리며 한 고백’(54p)에 ‘해설’과 그의 ‘전기’ 등을 덧붙인 책이다. 우리는 이 작은 책을 통해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온 브루더호프의 비결을 유추해볼 수 있음과 동시에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책의 각 차례들을 순서대로 따라가 보는 것은 의미 있는 과정이다. 트라피스트 수도회 수사이자 사제인 배질 페닝턴의 「Ⅰ. 머리글」은 ‘공동체로 사는 이유’를 고백한 에버하르트 아놀드와 그의 글을 ‘해설’한 토머스 머튼의 교차점을 통해 이 책의 전반적인 밑그림을 그리도록 돕는다.
「Ⅱ. 에버하르트 아놀드의 생애」는 에버하르트 아놀드의 아내인 에미 아놀드가 썼는데, 아놀드의 짧은 전기를 기초로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역사를 함께 보여준다. ‘믿음과 경제’의 이유로 함께 하던 사람들과 결별을 하기도 하고, ‘게슈타포와 친위대, 경찰’이 브루더호프를 점령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무너지지 않았다.
공동체를 향한 굳은 신념은 에버하르트 아놀드가 쓴 「Ⅲ. 공동체로 사는 이유」에 명백히 드러나 있다. 그는 공동체로 사는 삶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성령의 도우심을 강조한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 자신의 현재 본성만으로는 공동체를 이룰 수 없(57p)”기 때문에, 하나님께 사로잡힌 ‘믿음’이 간절하다. 또한 “성령은 모든 사람에게 서로를 위해 살고 서로를 위해 수고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도록 닦달하신다.(70p)”, “우리는 공동체로 살아야 한다. 기쁨과 사랑의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 가운데 공동체를 갖고자 하는 소원을 늘 품도록 이끄시기 때문이다.(71p)”, “인간이 임의로 결성한 동맹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참 교회, 곧 성령의 교회만이 모든 결속과 일치의 토대이자 근본 요소다.(84p)” 도우시는 성령만이 서로를 온전히 연합하게 한다.
‘공동체로 사는 이유’의 독일어판 편집자가 밝혔듯 에버하르트 아놀드의 언어와 문체는 난해한 편이다. 때론 거친 원석처럼 느껴지는 그의 글이 토머스 머튼의 「Ⅳ. “공동체로 사는 이유”에 대한 두 편의 해설」로 비로소 제대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첫 번째 해설에서는 공동체를 인간의 사랑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 위에 세우는 것에 대해 말한다. “아놀드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공동체는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공동체는 하나님의 작품이며, 공동체의 기초는 친목이 아니라 믿음입니다.(100p)”, “공동체를 우리의 사랑 위에 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 위에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114p)” 두 번째 해설에서는 아놀드가 그 글을 쓰던 시기에 처한 환경(국가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 사이에 끼인 상태)에서의 교훈, 즉 “성령께서 이 두 입장을 초월해 계시니, 우리도 양쪽을 넘어서(119p)” “사랑이 있는 곳에 머물러야 한다.(120p)”고 주장한다. 세상의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 얽매이지 않는 성령을 쫓아 사랑으로 나아가야 한다.
「Ⅴ. 후기」에는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실제 사진과 현재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개괄적으로 소개한다. 함께 사는 지역의 전경, 둘러 앉아 드리는 예배 현장, 결혼 예식, 노동하는 여성들, 놀이하는 아이들 등을 통해 글로만 읽었던 브루더호프의 공동체 생활을 훨씬 가깝게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장은 책을 처음 읽을 때 한번 보고 책장을 덮으며 한 번 더 보면 좋을 장이다.

책 전반에서 확인 가능한 브루더호프의 모습, 에버하르트 아놀드와 토머스 머튼의 가르침은 우리가 공동체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충분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다양한 상황과 여건에 따라 같이 사는 공동체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는 없다. 교회는 생활 공동체를 이루지 못했더라도, 삶을 공유하는 공동체는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교회는 아놀드의 말대로 “하나님 믿기. 서로 신뢰하기.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고 다시 세워질 수도 있음을 알기. 이 모든 것은 우리 삶의 한 부분(112p)”이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십자가로 차별을 분쇄(107p)”하며 부대끼는 공동체, 그런 공동체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교회 공동체가 아닐까?
같이 사는 공동체가 될 마음이 없다고 이 책을 그냥 넘겨버리기에는 이 책이 온전한 교회가 되어가는 데 중요한 본질을 너무 많이 담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진정한 공공체가 되기 원하는 성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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